[경남시론] 매미- 김은영(경남도립남해대학국제교류센터 교수)

knnews 2025. 8. 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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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도로변에 제법 그늘이 깊은 벚나무 가로수 길이 이어져 있다. 한여름에도 볕을 피할 수 있어 산책하기 마침맞은 곳이다. 며칠 전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다가 문득 귀를 찢을 듯한 매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구나, 8월이구나. 나무마다 큰 가지와 잔가지 사이에 꽤 큼지막한 매미들이 들러붙어 맴맴 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렇게나 시끄러운데, 바쇼(芭蕉, 1644~1694)는 어쩌자고 ‘적막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이라 썼을까.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삼킬 듯 울어대니, 오히려 적막하다고 느꼈던 걸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미를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다. 맑은 이슬만 먹고, 탐욕 없이 잠시 울다 사라지는, 청렴하고 올곧은 군자의 상징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선비의 다섯 가지 덕(五德)을 두루 갖춘 표상으로서 숭상했다. 매미 머리에 있는 줄무늬에서는 갓끈의 지혜(文)를, 나무 수액만 먹고 사는 모습에서는 맑음(淸)을, 곡식을 축내지 않음에서 염치(廉)를, 집을 따로 짓지 않음에서 검소함(儉)을, 계절을 지켜 나타나는 모습에서는 믿음(信)을 보았다.

당나라 화가 염입본(閻立本, 601~673)이 그린 ‘역대제왕도(歷代帝王圖)’에도 매미의 상징이 등장한다. 그림 속 황제들의 면류관에 하나같이 매미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매미처럼 청렴하고 고결하게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군주의 최고 덕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궁금해졌다. 매미가 정말로 이슬만 먹고 사는 걸까.

매미는 곤충 치고 꽤 긴 생애주기를 가졌다. 암컷 매미는 대개 나무껍질에다 알을 낳는데, 이 알은 다음 해 여름에 부화하여 애벌레가 된다. 그리고는 바로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나무뿌리 수액을 먹으며 5~7년 정도, 미국 중서부지역에서 서식하는 주기매미의 경우 17년 동안, 땅속에서 지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 우화한다. 성충이 된 매미는 그러나, 짧게는 일주일, 길어야 한 달 남짓밖에 살지 못한다. 이 시기에는 거의 먹지 않고 울며 짝을 찾고 알을 낳는다. 땅속에서 7년, 나무 위에서 7일. 엄혹하고 장렬한 삶이다. 옛 선비들의 생각처럼 매미가 이슬만 먹고 산다는 것도 영 그른 말이 아니다. 그들이 매미의 맑음과 절제를 귀히 여긴 까닭을 알 것 같다.

호주 작가 숀 탠의 그림책 ‘매미’는 이 곤충의 생애를 현대적인 비유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매미는 회색 빌딩에서 인간 동료들과 함께 데이터 입력 사무원으로 근무한다. 집도 없이 사무실 벽 틈에 살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맡은 일을 마무리한다. 톡톡톡! 성실하게. 그러나 인간 동료와 상사는 그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바보 취급할 뿐 아니라 때리고 괴롭히기까지 한다. 17년 후. 드디어 은퇴하는 날이 왔다. 파티도 악수도 없이, 상사는 책상을 치우라고 말한다. “이제 안녕을 고할 때다. 톡톡톡!” 매미는 홀로 빌딩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제 껍질을 벗고 찬란한 성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이야기는 차별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다 마침내 자유를 얻는 매미의 이야기를 그린다. 17년의 묵묵한 인내 끝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곤충 매미의 생애와도 겹쳐진다. 아마도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말레이시아 출신 이민자로서 차별받고 살았던 부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8월이 가고 있다.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여름도 끝자락이다.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매미 허물은’. 바쇼의 또 다른 시 구절이 떠오르는 시간. 7년, 혹은 17년간의 땅속 생활을 마치고, 7일간의 찬란한 생을 불태우고, 매미의 울음도 마침내 끝나갈 것이다. 그 짧고도 장엄한 울음 끝에서, 우리 역시 남은 삶의 계절을 어떻게 채워 가야 할지 스스로 묻게 된다.

김은영(경남도립남해대학국제교류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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