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의 맥락 보여주는 것, 언론의 실력”

이종규 기자 2025. 8. 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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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총평과 제언
제13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첫 회의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리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13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지난 18일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열린편집위원회는 한겨레신문사가 독자의 다양한 의견을 콘텐츠 제작에 반영하기 위해 2013년부터 운영해온 제도다.

열린편집위원장은 서수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맡는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서 교수는 앞으로 1년간 시민편집인을 겸하며 열린편집위원회를 이끌게 된다.

열린편집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8명으로 구성된다. 첫 회의에는 제이티비시(JTBC) 보도총괄 출신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김영식 한겨레 후원회원, 심창식 ‘한겨레:온’(한겨레 주주·독자 온라인 커뮤니티) 편집장, 이김하롬 한겨레 후원회원, 한겨레 창간주주·독자인 정연 전 영락의료과학교 교장, 황현숙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가 참석했다. 나머지 1명은 개인 사정으로 다음번 회의부터 참여할 예정이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과 신승근 뉴스룸국 뉴스총괄부국장이 참석했다. 이날 첫 회의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서수민 이 자리에 계신 위원님들 모두 한겨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들이신 것 같다. 오늘은 첫 회의이니 한겨레 콘텐츠 전반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해주시면 어떨까 싶다. 앞으로 열린편집위에서 어떤 부분을 다루면 좋을지 제안을 해주셔도 좋겠다.

심창식 지금 평범한 시민들의 주요 관심사는 집 문제와 주식이다. 젊은층은 특히 더한 것 같다. 사람들이 모이면 함께 얘기하고 걱정하는 것들에 대해 언론이 다뤄줘야 한다. 다행히 근래 들어 한겨레에 ‘집 이야기’ ‘돈 이야기’ ‘최종훈의 콕 집는 부동산 콕’과 같이 시민들의 관심사를 담은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띄더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 잠재돼 있는 가장 심각한 갈등이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인 것 같다. 한겨레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20대의 극우화 현상을 진단한 몇몇 기사들은 상당히 유익했다. 젠더 갈등의 저변에는 페미니즘이 자리잡고 있는데,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 사이에 이를 둘러싼 인식의 간극이 매우 큰 것 같다. 당사자 인터뷰 등을 통해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 한겨레가 한국 사회의 잠재적인 갈등 요소를 줄이는 데 기여해주기를 다시 한번 당부드린다.

황현숙 열린편집위 참여를 계기로 정말 오래간만에 종이 신문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발견을 했다. 그동안 계속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매일 뉴스를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신문을 보면서 정말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게 사람들 사이에 공통의 레퍼런스가 없다는 거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다. 다들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의 또래 집단하고만 소통하고 특정 이슈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종이 신문이 갖는 힘이 여전히 있겠다는 걸 알게 됐다. 한겨레가 최근 ‘민주주의 미래 그리는 50개 시선’이라는 기획물을 내보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적엔 성악, 내편엔 성선…이중태도 버려야 민주주의 산다’였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최근 읽은 기사 중 어린이들이 여가 활동 부족과 친구 초대가 어려운 환경에 가장 큰 결핍감을 갖는다는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연구기관의 아동실태조사 결과를 인용한 기사인데, 학습량 등 상투적인 내용을 제목으로 내세운 타사 기사들과는 차별성이 느껴졌다. 이처럼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기사들이 많이 눈에 띄어서 인상깊었다.

서수민 기자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자료를 보고 기사를 쓰더라도 시선이 다르다면 차별성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현장이다. 현장에서 나오는 힘이 있지 않나. 현장에 밀착한 시선이 중요할 것 같다. 칼럼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시선과 함께 현장이 담겨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새로 연재를 시작한 나종호 교수의 칼럼(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권석천 최근 ‘맥락’이라는 관점에 대해 고민을 해봤다. 유튜브가 언론으로 부각된 건 팩트와 팩트 사이의 맥락들을 예능적인 방식으로 잘 짚어주기 때문인 것 같다. 기존 언론이 유튜브화될 것이냐, 아니면 유튜브를 극복하고 다른 차원의 언론으로 성장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측면에서 사안의 맥락을 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관점과 실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 소식을 전하는 한겨레 1면 기사의 제목이 ‘“통합” 내건 조국 사면…논란은 남았다’였다. 제가 보기에 고민이 많았던 제목이 아닌가 싶다. 사실 조국 사태는 제가 현직 기자 시절 겪은 일인데, 한국 언론에 큰 임팩트를 줬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사건인 것 같다. 조국 사태를 돌이켜보면, 검찰개혁의 맥락도 있었고 공정의 맥락도 있었고 진영 논리의 맥락도 있었는데, 그런 맥락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한겨레가 내부 토론을 통해 그런 맥락들을 계속해서 성숙시키고 정리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복합적인 맥락이 있는 사안들을 제대로 다뤄야 한겨레가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영식 권 위원님의 의견에 동의한다. 저도 오랜만에 신문을 읽으면서, 온라인을 통해 뉴스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시대에 종이 신문을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고민해봤다. 실시간으로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신문은 어떤 사실과 사실들이 어떤 맥락과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기자의 질문이 참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기자가 어떤 질문을 갖고 이 기사를 썼을까 하는 관점에서 기사 리뷰를 해볼 생각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유통되는 많은 사실들 중에 어떤 사실은 택하고 어떤 사실은 버릴지와 관련해 기자들 사이에 건강한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예컨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의혹 보도의 경우, 애초에 보좌관의 잦은 교체가 갑질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전수조사를 해보니 유독 강선우 의원실만 그런 게 아니라는 후속 보도가 나왔음에도 한겨레는 이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 그 사실을 채택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내부 토론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떤 보도 프레임이 형성돼 있을 때 균형을 잘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생명·평화·민주 등 진보적인 담론을 한국 사회에 제시하는 일이 여전히 한겨레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기득권에 안주해 진보의 방향성을 잃는 일이 없도록 늘 성찰했으면 한다. 고령화 시대에 맞게 노령층 독자의 관심을 반영하는 콘텐츠도 많이 발굴해주면 좋겠다.

정연 한겨레가 지향하는 바와 그나마 가까운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 한겨레는 오히려 그런 민주 진영의 정권이 들어서면 기사를 쓰는 데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진보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뉴스룸국 내에서 고민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겨레는 어떤 사안에 대해 한번 방향을 딱 정하면 다른 쪽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그 방향대로 계속 몰고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기자들이 다 자기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는 거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겠지만, 회사 차원에서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 언론은 어떤 사고가 터지면 ‘인재다’ ‘누가 잘못했다’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그런 말들만 한다. 그럴 때마다 왜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문제제기를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리 문제점을 찾아내서 대책을 제안하는 일을 한겨레가 해줬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산사태 사고와 관련해 대규모 벌목이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짚은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 오피니언면에 다양하고 현실적인 제안을 담은 글들이 많이 실리던데, 그 글들을 바탕으로 심층 취재를 해서 기사로 발전시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신문을 읽다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드는 난해한 글이 더러 있다. 그런 글은 좀 걸러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기자든 외부 필진이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쓸 필요가 있다.

서수민 조국 사태는 한국 사회, 그리고 한겨레가 여전히 토론해야 할 주제인 것 같다. 조국 전 대표 사면으로 ‘조국 사태 2라운드’가 펼쳐지는 듯한 분위기인데, 어떤 방식으로 토론의 장을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이 자리에서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자. 정 위원님이 말씀하신 ‘친절하지 않은 기사’ 문제도 앞으로 더 집중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연 이김하롬 위원님은 20대 남성이신데, 젠더 갈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이김하롬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된 ‘집게손가락’ 논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터무니없는 주장인데, 일부 보수 언론마저 남성 혐오가 맞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그런 주장에 맞서 대안 담론을 펼쳤던 게 한겨레였다. 집게손가락 모양을 남성 비하라고 몰아가는 것은 분명히 정상적이지 않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해주는 언론이 있어야 한다. 또한 온라인에 만연한 극우적 주장에 맞서 상식을 말하는 언론이 있어야 한다. 한겨레가 그런 역할을 잘 해왔다고 본다. 특히 지금처럼 사람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정보만 파편적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에서는 한겨레 같은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황현숙 한겨레가 혐오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하면서도,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논의의 장을 열어줬으면 좋겠다.

정연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안을 다룰 때는 한 방향을 딱 정해서 계속 몰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한 관점만 갖고서 ‘이게 옳다’는 식의 주장을 해서는 어떤 대안도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김하롬 우리 사회에 잘못된 통념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재계의 주장, ‘주적’이라는 용어, 이주민에 대한 혐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겨레는 그런 통념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계속해서 지적해왔다. 예컨대, 재계는 노란봉투법을 반대하고 있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이에스지(ESG)에 이미 포함돼 있는 내용이라는 점을 잘 짚어줬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잘못된 통념들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김영식 한겨레는 재작년 편집국 간부 돈거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진상조사를 거쳐 ‘한겨레 윤리는 어디에서 실패했나’ 보고서를 펴냈다. 그 보고서에서 법조기자단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공판 중심 보도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김건희 논문 표절 사건과 관련해 대학 사회의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드러났다. 논문 표절을 용인해준 게 교수들 아니었나. 기득권화된 대학 사회의 비윤리적인 행태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서수민 오늘은 첫 모임이라서 자유롭게 난상토론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다음번부터는 주제를 정해서 깊이 있는 토론을 해보도록 하자. 열린편집위의 역할은 뉴스룸국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제약들이 있겠지만, 열린편집위와 뉴스룸국 사이의 피드백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열린편집위원회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7~8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31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영월 나이트’ 기획이었다.

1. 영월 나이트-의료취약지 공공병원 메디컬 드라마 사회부 이문영 기자

한줄평: “무너진 공공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생동감 있는 사례 통해 부각” “의료 문제를 밀착 취재해 현장감 있게 전달”

2. 배달 2시간, 더위에 굴복하자 생각났다…‘라이더들은 어디서 쉴까?’ 사회정책부 남지현 기자

한줄평: “우리 주위에 언제나 존재하지만 목소리는 잘 들을 수 없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체험형 기사라는 틀을 통해 전달”

3. 돈받고 불기소, 수사 막히면 암장…검찰개혁 앞 ‘경찰통제’ 과제 사회부 임재우 이지혜 박고은 기자, 전국부 박현정 기자

한줄평: “여전히 논쟁 중인 경찰 수사종결권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

4. 한학자 “윤석열 밀어라” 지시…통일교단서 대선자금 지원 정황 사회부 김가윤 배지현 박찬희 기자

한줄평: “통일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정황 드러내…후속 취재 기대”

5. “적엔 성악, 내편엔 성선…이중 태도 버려야 민주주의 산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은주 기자

한줄평: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문제의식을 던져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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