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왕관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2025. 8. 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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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을 내면의 성숙으로 활용
조선선비의 유배 문화도 유사
분노보다 자숙의 계기 삼아야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초년병 기자시절, 광주 비엔날레에 초청을 받았다. 광주에서의 2박3일 동안은 만감이 교차한 시간이었다. 대학시절, 교정 곳곳에 붙었던 무명천에 붉은 글씨의 '남도여! 남도여!'를 선명하게 기억하던 시절이어서 광주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한쪽 명치가 아렸다. 부산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대선배 김탁돈 사진기자가 들려준 광주의 기억과 스무살 시절, 광주출신 학우가 들려준 푸르고 시린 시간의 타임캡슐이 어디선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여정이었다. 

 광주 비엔날레의 문화적 충격은 형언이 어려웠다. 도시 전체가 미술관으로 변해 버린 1995년 가을이었다. 비엔날레와 함께 전남도에서는 전국에서 찾아온 기자들에게 무등산 일대와 광주 근교의 관광지 탐방도 마련했다. 그 때 만난 명승이 소쇄원이다. 지금은 대숲하면 울산의 십리대숲부터 떠올리지만 그 당시는 담양의 소쇄원 일대가 으뜸이었다. 소쇄원(瀟灑園). 조선의 3대 여름별장인 이곳은 입구부터 대나무 숲길이 정적을 강요했다. 어둑하고 서늘한 대숲을 지나면 댓잎 스치는 소리가 '스르륵 소쇄~ 스르륵 소쇄~' 하며 정자의 이름을 알려주는 곳이다. 소쇄는 역사가 500년이 넘었다. 조선 초 담양 창평에 살던 양산보의 작품이다. 조선 후기 고산 윤선도가 지은 보길도의 세연정과 정영방이 공을 들인 경북 영양의 서석지와 함께 '조선 3대 별서정원'으로 부른다. 폭정이나 유배로 정권의 울타리를 찢어버린 선비들의 은거공간이다.

 소쇄원의 사연은 꽤 아프다. 정자의 주인인 양산보는 15세인 1517년 한양 땅을 밟았다. 그의 부친은 당대 최고의 선비였던 조광조를 찾아가 아들을 의탁했다. 양산보는 조선 개혁의 상징이었던 사부 조광조의 눈에 들기 위해 죽을 힘으로 공부에 몰두했다. 주독야독으로 코피를 쏟은 그는 한양 입성 2년만에 현량과 과거에 당당히 합격했다. 열일곱 포효하던 청춘의 출발은 요란했지만 관직에 나갈 순 없었다. 소년급제 직후 조정에서는 기묘사화의 피바람이 불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훈구파의 음모에 개혁의 상징인 조광조가 날아갔다. 당시 국왕 중종이 측근들과 모의한 '친위 쿠데타'였다. 지난 겨울 윤석열의 계엄과 흡사했다. 역적의 상징으로 전락한 조광조는 유배의 길을 떠났다. 열일곱 소년급제로 화관의 꽃잎이 여전히 무성했던 양산보도 낙향했다. 스승의 시신을 거둔 양산보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낙원'을 만들었다. 20년 대역사로 이룬 지실마을의 원림은 남도의 으뜸 정원이 됐다. 

 장황한 기록이었지만 오래전 찾았던 담양을 떠올린 것은 이번 광복 80주년의 최대 수혜자인 조국 때문이다. '일제의 성노예 피해자' 횡령사건의 주인공인 윤미향과 함께 감옥에서 나온 조국은 매일같이 자신의 억울함을 글과 사진으로 세상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사과와 자숙을 요구하는 주장을 향해 "사과한다고 2030세대의 마음이 풀리겠나"라고 되받아쳤고 사면 이후 돌아선 여론을 두고도 "(제 사면은) n분의 1 정도의 영향"라고 응수했다. 여기에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윤석열과 한동훈이) 저와 우리 가족 전체를 짓밟았다. 용서할 수 없다"며 감옥 생활 내내 복수의 칼을 갈았음을 인정했다.

 조국 사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반감을 각오했던 여권이 다급해졌다. 복수의 칼은 은밀하게 갈아야 치밀한 법인데 요란한 쇳소리가 쩌렁대자 낯빛이 변했다. 전현희가 나섰다. "조국 전 대표 사면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며 "이재명 정부 최초로 사면으로 복귀한 정치인으로서,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만큼 조금 신중한 행보를 하시는 게 좋겠다"고 에둘러 충고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대놓고 정색을 했다. "이번 정치인 사면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분이 이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의 복심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진중권도 가세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가) 조국을 사면함으로써 결국 저런 식으로 (자녀가) 대학에 가는 게 정상이 된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바꼈다"며 "참담하다. 한국 사회가 사실상의 신분제 사회라는 걸 확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국 사면 이후 국민 여론은 이재명 대통령에 우호적인 상황에서 반전되는 분위기다. 조국 사면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좀처럼 회복 기미도 보이지 않는 중이다. 여기에 강경파 당 대표의 행보도 불난 집에 장작을 보태는 격이다. 정청래 대표는 지난주 경주 방문 때 찍은 금관과 자신의 얼굴을 일치시켜 SNS에 올렸다가 혼쭐이 났다. "나도 왕이 될 수 있다"는 해석부터 윤석열의 손바닥 임금 왕(王)자 데자뷰라는 이야기까지 염천 더위에 진땀이 줄줄 흐를 온갖 '썰'이 무성하다. 

 흔히 정치인은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순간 망조에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추앙 신드롬'이다. "권력을 가진 자의 가장 큰 고민은 권력을 잃는 것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명언이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길은 어렵다. 그래서 우리 정치는 너무나 쉬운 권위의 말을 타고 국민을 내려다 보며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다. "나는 특별한 존재이고 그런 나를 추앙하면 모든게 이뤄진다"는 주술을 건다. 무지몽매한 유권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줘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발상이다.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과 사지를 경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보낸 시절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만든 대표적 인물이다. 그들이 감옥의 격리를 스스로 사유의 보폭을 넓힌 시간으로 치환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유신의 칼날에 독방에 갇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 생활을 끝내고 나와 "6년 수감생활은 대학생활이기도 했다"는 소회를 남겼다. 독방에서 일상이 된 고독의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로 보낸 고백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쌓았고, 지혜를 넓혔으며 인격의 깊이를 더했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옥중 작업으로 책을 낸 조국은 자신의 부활이 국민의 승리여야 한다고 적었다. 여러가지로 대비가 되는 팔월 마지막 주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