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석화업계, 구조조정 본격화…감원 수순 밟나 ‘지역경제 비상’
‘고용안정협약서’ 선언적 수준…노사 갈등 재현 우려
道·여수시·회사, 고용 위기 극복 ‘상생방안 마련해야’

정부가 최근 과잉공급과 수요 위축으로 위기에 직면한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개편안을 발표해 구조개편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는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전남 여수산단 관련 업계의 고용 위기와 함께 지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이는 이들 업계의 노사 갈등으로 재현될 소지도 불거지고 있어 지자체나 회사 차원의 노사 상생 방안 마련 대책도 요구된다.
◇여수 전체 고용 42% 차지하는 석유화학 근로자
24일 업계와 노조 등에 따르면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의 과잉 설비 문제 해결을 위해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을 최대 25% 감축하도록 요구하고 나서 여수국가산단의 관련 업계들도 자구책 마련에 본격 나서는 모양새다.
앞서 정부(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일 열린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주요 기업들이 ▲270만~370만 톤 설비 감축 ▲고부가·친환경 제품 전환 ▲지역경제 충격 최소화 등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협약의 결과는 결국 여수산단 석유화학 업계의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NCC 감축을 통해 10여 개 공장의 통폐합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생산 설비 감축은 전남 동부권 경제의 핵심인 여수지역을 비롯해 울산, 대산 등 3개 산업단지에서 근무하는 약 5만 3천400명 중 1만 명 이상이 직접적인 고용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여수산단 내 석유화학단지 근로자는 현재 약 2만 4천600여 명으로, 이는 여수 전체 고용의 42%를 차지하는 셈으로 그 비중이 큰 편이다.

◇고용안정협약서에도 불안한 '여수산단 근로자들'
여수산단 석유화학 업계 현장에서의 인력감축 우려는 최근 정부의 구조개편안 이후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정부의 구조개편안은 인력 감축의 수순으로 들어갈 경우 노사간의 갈등을 부추길 우려도 제기된다.
여수산단 A업체의 경우 지난달 말 마무리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의 일환으로 '고용안정협약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협약서에는 '회사 측 실적 부진이나 구조조정을 이유로 인력 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지난해 처음 노조가 사측에 요구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해 만들어진 고용안정협약서의 경우 '사측이 의도적인 인력감축을 단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업황 부진이 장기화 되면서 희망퇴직 가능성 등이 언급되자 올해 노조가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요구하면서 희망퇴직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회사로부터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B업체 역시 지난해 첨단소재사업본부에서 희망퇴직을 시행한 이후 연말 임단협에서 고용안정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 업체의 한 직원은 "이는 현재 석유화학 업계에서 고용불안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협약서는 최소한의 장치에 지나지 않을 뿐 법적인 구속력은 없는 것이어서 향후 진행 과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도 최근 성명서를 통해 "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설비 감축과 통합으로 가야한다"며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고용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道, '석유화학 대전환 메가 프로젝트', 고용 대책은 '미약'
전남도는 위기에 처한 여수산단의 석유화학 산업과 함께 광양산단의 철강산업에 대해 '대전환 메가 프로젝트'를 마련해 현재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의 추진 계획이 고용보다는 주로 업계를 위한 지원에 집중돼 있어 당장 시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여수산단 관련 업계 근로자의 안정적 고용 대책에는 극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도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기간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및 '친환경 화학산업 소부장 특화단지' 지정을 정부에 요청했다.
기업 지원의 주요 내용으로는 ▲친환경·저탄소 설비 전환, 설비 현대화, 연구개발 등 직접 지원확대를 위한 보조금 지원 ▲사업재편 및 신기술 도입 기업 투자세액공제, 설비투자 감가상각 특례, 법인세 감면 등 세제혜택 ▲전기요금 특례신설(산업용 전기요금 약 9.3%감면) 등을 통한 전기요금 감면 등이다.
또 여수산단 공용배관망 등 인프라 구축 추진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와 함께 도는 CO2 다배출 업종인 석유화학산업의 탄소감축을 위해 CCUS클러스터 구축 지원도 요청했다.
도는 산업용 전기료 인상에 따른 석유화학·철강산단을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하고 재생에너지 기반 '마이크로그리드 산단'으로 신속 추진도 요청했다.
이외에도 도는 정부에 첫 번째 요청 내용으로 여수지역을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요청했으나 고용노동부가 이미 지난 19일 여수시와 광산구에 대해 '고용위기 선제 대응지역' 1호로 선정한 바 있다.
도 관계자는 "위기에 처한 여수·광양 국가산단을 위해 '석유화학·철강산업 대전환 메가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해 관련 업계와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비 감축 현실화시 협력업체 연쇄 타격 불가피
정부의 이번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안은 '선 자구 노력, 후 정부 지원' 방침을 세우고, 업계가 제출하는 사업재편 계획을 토대로 금융, 세제, R&D, 규제 완화 등 지원 패키지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여수산단의 석유화학 각 업체별 자구책 마련과 자사 이익을 위한 타 업체와의 눈치보기도 현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앞서 정부는 300여 개 석유화학 관련 기업이 입주한데다, 전국 석유화학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있는 여수국가산단이 소재한 여수지역을 지난 5월에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데 이어 최근 '고용 위기 선제대응지역 1호로 지정함으로써 여수지역은 고용유지 지원금, 생활안정자금 융자 등에 대한 요건 및 수준을 달리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역 내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한 분위기다.
여수시는 석유화학산업이 지역 고용의 3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의존도가 높아, 대규모 설비 감축이 현실화되면 협력업체와 서비스업까지 연쇄 타격이 불가피해 지역경제에 직격탄이 우려된다.
정부의 석유화학산업의 구조개편안이 근로자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선 지자체나 업체 차원의 합리적인 상생방안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 대학의 한 관계자는 "인력은 놔두고 설비만 줄이라는 요구도 회사에겐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인력 감축을 최소화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휴인력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한다"고 조언했다.
여수지역 상공계와 노동계에서도 "정부 지원이 단기적 대책에 그쳐서는 안 되며, 구조조정 이후 지역 산업 생태계를 다변화하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수산단 관련 업계 노조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구조개편안이 근로자들의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이어진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노사가 상생방안으로 가야지 인력 감축을 위한 구조개혁이 되어서는 절대 안될 것"이라고 향후 노사간의 대치 국면을 시사했다. 동부취재본부/허광욱 기자 hkw@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