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잿빛으로 변한 재선충 피해목 현장’ 포항시 내단리 가보니
전문가 “재선충병 단기 대응 불가…중장기 전략·체계적 방제 절실”

내단리 일대는 지난 2004년 포항 지역에서 최초로 재선충이 발견된 곳으로 초창기 집중 방제가 이뤄지면서 한때 사라졌으나 수년 전부터 다시 발생했다.

이로 인해 통상 재선충 피해목은 솔잎이 붉은색으로 변하지만 내단리 피해목들은 잿빛으로 변해 붉은빛을 띤 올해 피해목과 뒤섞인 채 고사목이 됐다.

31번 국도와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따라 포항에서 기계쪽으로 가다 보면 내단리로 향하는 길목부터 풍경은 달라진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 숲은 사라지고, 산등성이를 따라 올해 피해목과 오래된 피해목들이 뒤섞인 채 잿빛으로 변했다.
숲으로 다가가면 마치 재를 덮어쓴 듯 희뿌옇게 변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선 채 솔잎은 바람에 부딪치며 바스라 질 듯 메말라 있다.
겉모습만 보면 다른 원인을 의심하기 쉽지만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이승민 연구사는 "재선충병 감염 초기에는 붉게 변하지만, 1년 이상 지나면 자외선으로 색소가 파괴돼 잿빛으로 보인다"라며 "내단리 고사목 역시 재선충 감염 후 최소 1년 이상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재선충병 여부는 외관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이 연구사는 "최근 포항 지역 고사목 가운데 40% 이상이 재선충으로 확인됐다"라며 "과거 표준지 조사에서는 감염률이 66% 이상에 달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방치된 고사목이다.
비단 내단리 뿐만 아니라 동해면과 구룡포 등 재선충 우심지역 대부분이 제때 피해목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잿빛으로 변해가는 상황이다.
내단리 일대 산등성이 역시 이미 회색으로 변한 피해목들이 제때 손길이 닿지 않았다.
내단리 주민 이영주(71·여)씨는 "재선충병이라고는 하는데, 원인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잘 모르죠. 다만 산이 이렇게 변해가는 걸 매일 보니까 마음이 안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산림 관리의 공백은 현장에서 고스란히 체감되고 있다.
경북 산림의 33%를 차지하는 소나무는 약 16억 그루에 달하는 데다 포항·경주 지역 대부분의 산들이 재선충 피해를 받고 있지만 이를 관리한 손길이 턱없이 부족한 때문이다.
경북 도내 80여 명에 불과한 산림보호 인력으로는 드넓은 산지로 퍼진 재선충병 관리는 한계점에 달했다.

그는 "좁은 과수원에서도 매년 병해충이 발생하는데, 광활한 산림을 소수 인력이 관리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라며 "예산이 충분하다면 자연 고사목까지 모두 제거하지만 예산과 인력이 모두 부족하니 우선순위를 정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단리 숲에서는 소나무 외 다른 수종을 찾기 어렵다.
이 연구사는 "경북 지역 기후상 소나무가 아니면 버티기 힘든 환경"이라며 "재선충 피해가 심한 지역은 수종 전환이 필요하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소나무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회색으로 변한 내단리 숲은 재선충병의 흔적이자 관리 한계의 단면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승민 연구사는 "재선충병은 단기간 대응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중장기 전략과 체계적 방제가 병행되지 않으면 산림 황폐화가 불가피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고사 확산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소나무뿐 아니라 참나무 등 다른 수종도 영향을 받는다"라며 "2070년쯤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더 따뜻한 지역에도 소나무는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