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 인문학을 입힌 한국 첫 세계 100대 골프코스 선정위원
"이야기 없는 콘텐츠는 재미없다"
40일간 유럽 40개 골프코스 돌아
골프채 들고 韓·英 골프순례 목표

서울 마포는 시간탐험하기 좋은 곳이다. 1970~80년대 분위기부터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8월의 어느 더운 날, 한때 매일 갓 태어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졌을 산부인과 건물을 찾았다. 오상준 아시아 골프인문학연구소 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굳이 다른 편한 곳도 많은데 이곳을 원한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여기서 태어났어요. 어머니가 산부인과 원장님이셨거든요. 한동안 비어 있던 곳이었는데요. 제가 건축을 전공하기도 했고, 제게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골프 설계 건축가가 만든 사무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산부인과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수술 장비나 병원 시설이 있을 법한 자리에는 골프채와 골프공, 그리고 전 세계 골프장에서 수집한 몽당연필 수십 자루가 대신했다. 골프연구소 느낌이 스멀스멀 풍기는 순간이다.
"원래 뉴욕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2001년에 9·11 테러가 터지면서 취업비자 수속이 마냥 늦어지는 겁니다.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뉴저지의 퍼블릭 골프장에서 골프를 시작했죠."
첫 단추를 끼우기가 힘들지 막상 시작하고 나면 일사천리다. 오 소장에게 골프도 그랬다. 우연히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미국 내 골프 리조트와 관련한 연재를 하게 됐고, 이때 본격적으로 골프를 학문적으로 접근했다.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려 골프코스 설계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골프 원조국인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에든버러대학에서 연구에 매진했다. 당시 보낸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준 의미 있는 순간이다.
"골프는 1400년대 스코틀랜드 바닷가에서 양을 키우던 목동으로부터 시작해요. 양이 들판에 나가 풀을 뜯어 먹다 보니 아무래도 그 자리는 평평해지잖아요. 그냥 심심풀이 삼아 나무막대기로 돌멩이를 쳤는데 그게 토끼굴에 들어간 겁니다. 다시 돌멩이로 몇 번 쳐서 넣고, 또 넣고 그러다 게임으로 발전한 것이죠."
골프가 태어난 '의외의 역사'는 꽤 흥미로웠다. 이후 돌멩이가 가죽공이나 고무공으로 바뀌고, 홀 직경은 108㎜, 총 18홀로 정해지는 등 점차 룰도 생겨났다. 자연에 길을 닦고, 공이 들어갈 구멍에는 깃발도 꽂았다. 무엇보다 자연을 해치지 않았다. 그래서 절벽이 있는 페블 비치나 독특한 벙커가 인상적인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가 세계 최고의 골프 코스로 손꼽히는 이유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골프와 인문학이 '우리 제법 잘 어울려요'라고 노래할 만큼 보기 좋았다. 이야기가 없는 콘텐츠는 재미없는 법이니 말이다.
"골프 인문학을 떠올린 건 뉴욕에서 건축공부를 하며 다져졌던 '사고'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를 비롯해 스티븐 홀 등 당대 최고의 건축가에게 가르침을 받았죠. 건축뿐 아니라 예술, 철학, 미학 등 다학문적 사고의 전환을 경험했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이때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 소장은 한국인 최초 세계 양대 골프매체인 골프다이제스트와 골프매거진의 '세계 100대 골프코스 평가위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CJ그룹에 재직하며 나인브릿지 포럼을 기획해 전 세계 골프계 리더들과 골프의 미래를 논의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가 느낀 점은 골프 인구의 지속 가능성이다.
"'골프를 꼭 쳐야 하나' 묻는다면 '아니요'로 답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골프만큼 변수가 많은 스포츠는 없거든요. 자연에서 하다 보니 바람 등 날씨나 누구와 치느냐에 따라도 다르고요. 특히 상황에 따른 동반자의 성향을 보며 인생도 배우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니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죠."
골프의 매력을 한참 소개하던 그가 잠시 숨고르기를 했다. 단편적인 접근으로는 2% 아쉽다는 뜻에서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골프와 인문학의 연결, 그리고 골프 순례다. 실제로 오 소장은 직접 자신이 골프 순례자로 나섰다. 무려 40일 동안 유럽 내 40곳의 골프 코스를 답사한 것이다. 이때의 이야기를 담은 책 '40/40'도 지난 15일 출간했다.
"40이란 숫자는 성서에서 완전함, 새로운 시작 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40곳의 코스를 다니려고 목표를 세웠어요. 프랑스의 숲속, 아일랜드의 해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만난 때 묻지 않은 자연 등 이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오 소장은 앞으로 골프 문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또 한국부터 영국, 스코틀랜드까지 골프 실크로드를 탐방하는 여정을 영상으로 담는 것도 또 다른 목표라고 밝혔다. 대신 좀 더 색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1930년대 이전 골프를 처음 시작한 이들이 한 골프를 '히코리 골프'라고 해요. 히코리 나무로 만든 샤프트를 사용한 클럽으로 라운드를 하거든요. 웬만큼 정확히 치지 않으면 홀컵에 가기 힘들지만 '내려놓음' '인내' 등 초창기 골프로 돌아가는 매력이 넘칩니다. 현재 한국히코리골프협회 회장도 맡고 있는데요. 히코리 골프도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언제나 환영입니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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