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따라 뛰면서 ‘빛’을 본 라이트 랩…엘리트 중장거리 선수 158명 중 24명, 개인 최고 기록 경신

김세훈 기자 2025. 8. 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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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강원 정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라이트 랩 2025 정선에서 장거리 엘리트 선수들이 웨이브 라이트를 따라 뛰고 있다. 대한육상연맹



육상 트랙을 따라 녹색, 파란색, 흰색, 붉은색 불빛이 흘렀다. 트랙에 맞춰 설치된 웨이브 라이트(Wave light)다. 선수들 목표 기록에 맞춰 트랙을 따라 흘러가며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했다.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과 순위 경쟁하기보다는 불빛을 따라가는 데 열중했다.

‘불빛만 따라가면, 그리고 불빛을 추월하면 개인 최고 기록(PB)를 세울 수 있다.’

그렇게 엘리트 육상 선수 158명 중 24명이 이날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23일 밤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미즈노 라이트-랩 2025 : 정선 하이원’ 대회 주인공은 ‘빛’이었다.

정선종합운동장 트랙에는 1m 간격으로 빛을 내는 작은 장치 400개가 배치됐다. 네 가지 색 불빛은 선수들 기록에 맞춰 트랙을 일정한 랩 타임으로 돌았다. 녹색은 가장 빠른 기록, 붉은색은 가장 느린 기록 순이었다. 네덜란드 제품으로 실제로 페이스메이커를 했던 이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제품을 만든 것이다. 이번 대회를 총괄한 김용환 고양시청 육상부 감독은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국가대항전을 빼고 다이아몬드리드 등 거의 모든 국제 대회, 일본에서 지금 쓰이고 있다”며 “우리나라 도입이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국내 대부분 육상 대회는 메달만 다툰다. 자기 기록을 끌어올리기보다는 금,은,동만 가져가면 되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 실업팀 모두 기록보다는 메달 색만 보고 선수들을 대우한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최고 기록이 얼마인지도 모른다”는 웃지 못할 말도 있다.

정선 대회는 오직 개인 기록 달성만이 목표인 대회다. 선수들 모두 불빛을 따라가기 위해, 따라잡기 위해 끝까지 사력을 다했고 다수가 자기 기록을 깨는 기쁨을 누렸다.

여자 5000m 1위는 임예진(충주시청)이 차지했다. 기록은 16분6초27. 자신의 기존 최고 기록은 2018년 세운 16분15초09였다. 무려 7년 만에 9초 가까이 당긴 엄청난 기록이다. 임예진은 한국여자마라톤 대표다. 임예진은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면서 경쟁자가 없었는데 불빛이 페이스 메이커가 됐다”며 “오랜 만에 내 기록을 깨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임예진이 지난 23일 강원 정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라이트 랩 2025 정선 여자부 5000m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다. 대한육상연맹



남자 5000m에서 실업팀 선배들을 제치고 3위에 오른 이영범(배문고 2년)은 기존 최고기록을 14분54초94에서 이날 14분48초18로 당겼다. 이영범은 “불빛을 따라가면서 페이스를 느끼면서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며 “개인 기록을 세우는 데 불빛이 70%는 기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배문고는 출전 선수 7명 중 5명이 개인 기록을 세웠다. 조남홍 배문고 감독은 “400m를 동일한 랩 타임으로 돌면서 자기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한 게 개인 기록을 깬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천안 쌍용고등학교 1학년 이은성은 개인 기록을 무려 33초 이상 단축했다. 이날 세운 기록은 15분26초79이었고 본인 기존 최고 기록은 16분00초62였다. 이은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며 “나도 기록을 세우는 데 불빛 페이스메이커가 70%는 공헌한 것 같다”고 말했다. 30세 베테랑 이정국(코오롱)은 “이런 대회가 활성화하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록도 크게 향상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인으로 5000m 남자 부문에서 우승한 안은태는 15분54초24를 기록, 본인 기존 기록인 16분17초대를 크게 앞당겼다. 안은태는 “작년에 내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했는데 모두 실패했다”며 “오늘은 불빛만 보고 달리자는 생각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영천시청 박재우가 지난 23일 강원 정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라이트 랩 2025 정선 남자 5000m에서 웨이브 라이트를 따라 뛰고 있다. 대한육상연맹



남자 1500m에서는 김본규(고양시청)가 개인 기록을 깨며 1위에 올랐다. 기존 기록은 3분56초49였는데 이날 기록은 3분53초77이었다. 김본규는 “불빛만 따라가면 기록도 세우고 1위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뛰고 또 뛰었다”며 “그동안 노력을 많이 하지 않은, 레이스 도중 늘어진 내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대회 조직위원장인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이 웨이브 라이트를 설명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 웨이브 라이트를 이용해 열린 최초 공식 대회다. 대한육상연맹이 이번 대회 기록을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는 후원사가 됐고 미즈노, 하이원이 대회 개최비를 지원했다. 대회 주관은 베가베리가 맡았다. 대회 조직위원장인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은 “라이트 랩(Light Lap)으로 브랜딩된 이런 대회가 국내 육상 경쟁 패러다임을 순위 중심에서 기록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내년에는 정선 등 전국 여러 곳에서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정선 |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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