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호의 기회와 구조적 위기 동시에 맞은 한국미술판 어디로 가나

장마당 한쪽엔 사람과 돈이 물밀듯 들어오는데, 다른 쪽 마당은 싹 빠져나가 바닥을 드러냈다.
2025년 봄과 여름의 한국 미술판 사정이다. 미술판의 양대 축인 대형 공사립미술관·박물관의 전시회와 화랑·경매사의 작품 시장이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시마당엔 최근 더욱 거세진 한류 열풍과 인스타그램 인증 같은 자기 과시형 감상 트렌드가 대두하면서 엠제트(MZ)세대를 필두로 한 젊은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반면, 미술 시장은 역대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장기 불황에 짓눌리면서 거래가 급감하고 화랑 휴폐업도 속출한다.

올해 봄과 여름 전시판의 가장 극명한 특징은 고미술의 압도적인 강세다. 호암미술관의 겸재 탄생 350주년전(4~6월)과 대구간송미술관의 ‘화조미감’전(4~8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민화전’(3~6월),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의 ‘호림명보’전(2~7월)이 규모와 질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관객 몰이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6월 공개된 이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배경으로 등장한 까치호랑이와 일월오봉도, 무녀도, 갓모자 같은 전통 이미지들이 새롭게 각광받았다. 덕분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대구간송미술관 등에 관객들이 몰려드는 등 고미술 전시는 더욱 각광받는 양상이 이어졌다.

가장 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케데헌’에 등장하는 관련 유산을 다수 소장하고 있고, 문화상품(뮤지엄 굿즈, 이른바 ‘뮷즈’)으로도 판매 중인 박물관으로 관객들이 ‘오픈런’까지 하면서 몰리는 상황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실제로 지난 21일 박물관 쪽은 올해 1월부터 이달 20일까지 총 관객 수가 407만3006명으로, 지난 한해 관객 수(378만8785명)를 이미 넘겼다고 발표했다. 400만명을 넘긴 것은 2023년(418만285명)에 이어 두번째다. 10월 추석 연휴에 무더기 인파가 몰릴 것이란 예상까지 고려하면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우는 것은 물론 사상 초유의 500만명 돌파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박물관 쪽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국내외 관객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대미술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역대급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4월11일부터 7월13일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설치 작가 론 뮤익의 극사실주의 조형물을 선보인 전시회는 하루 평균 5590명의 관객이 몰리면서 개막한 지 90일 만에 관객 50만명을 돌파해 개관 이래 하루 평균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다작하지 못하는 작가의 제작 성향상 나온 작품이 10점뿐이고, 기존에 공개된 작품들이 상당수였는데도 인스타그램 명소로 젊은 관객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상반기 최대 흥행 전시가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관객 쏠림은 뮤지엄 굿즈 구매가 주된 목적인 경우가 다수였고, 국립현대미술관의 ‘론 뮤익’전은 인스타그램 인증샷 위주의 관람 행태가 만연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긴 했지만, 흥행을 주도한 이들이 젊은 관객이었다는 점에서 감상 문화의 저변을 확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외에도 페이스 갤러리의 ‘제임스 터렐’전과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의 앤터니 곰리, 안도 다다오의 건축·조각 협업전 등 국외 대가 거장들의 돋보이는 전시회가 잇따랐지만, 개인전을 제외하고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전망을 짚고 보여주는 기획전은 거의 찾기 어려운 현상이 도드라졌다.

또 하나 특징적인 양상은 부익부 빈익빈처럼 전시의 호황과 반비례하는 양상으로 미술 시장의 불황과 화랑가의 불안정성이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천억원대가 넘는다고 알려진 갤러리케이(K)의 폰지 사기 행각으로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은 국내 미술 시장은 연말에 터진 계엄령 충격으로 국내외 작품 거래에 큰 타격을 받은데다, 돈줄을 쥔 큰손들의 국외 시장 직접 구매 경향이 강해져 대형 작품 거래는 거의 씨가 말랐고, 중소가격대 거래로만 연명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무엇보다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원앤제이갤러리, 서정아트 등 국내 화랑들이 휴·폐업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페레스프로젝트, 브이에스에프(VSF) 등 외국계 화랑들도 경영난에 문을 닫고 철수하는 등 상당수 화랑이 문을 닫는 현상은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양상이다.

경매 시장도 계속 바닥세다. 지난달 23일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내놓은 ‘2025년 상반기 미술 시장 분석 보고서’를 보면, 상반기 국내 9개 미술품 경매사가 연 경매의 총 낙찰액은 약 557억원으로, 호황이던 2022년 1446억원의 절반 아래로 내려갔다. 지난해 같은 기간(663억원)과 비교해 16% 줄었고, 경매 출품작 수도 15% 감소한 1만437점에 불과했다.
다만 올 4월 열린 화랑협회 주최 화랑미술제에 역대 최대 규모인 6만명의 관객이 찾았고, 다음달 3~7일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글로벌 미술 장터인 키아프+프리즈 행사의 사전 예매율이 지난해보다 훨씬 높다는 점 등은 미술을 즐기려는 대중의 갈망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일러주는 징표로 보인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정상회담 코앞인데…미 ‘주한미군·안보·통상’ 청구서 공개 압박
- ‘한덕수, 국무회의 건의해 계엄 선포 도왔다’…특검, 구속영장 청구
- ‘원-하청 교섭’ 20여년 노동계 숙원 풀렸다…노사 상생 모색 ‘밑돌’
- ‘처서 매직’ 없던 주말, 한라산 빼고 전국 폭염…오늘 수도권 강한 비
- 강훈식까지 ‘3실장’ 이례적 미국행…물밑 조율서 ‘난기류’ 불거졌나
- 용인 오피스텔 여성 ‘보복 살해’ 30대 남성 구속…“도주 우려”
- 관봉권 띠지 증발…‘집 지키는 개’ 검찰, 소멸까지도 비루한 [아침햇발]
- 아쉬운 끝맛, 그 뒤로 드리우는… [그림판]
- 전기자전거에 매단 강아지, 피 흘리며 죽었는데…“다이어트 시키려고”
- ‘유퀴즈’ 빌 게이츠 자기님에 악플 세례를? 이유가 ‘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