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지휘자에 ‘웃참 챌린지’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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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지휘자를 ‘운동선수파’와 ‘발레 댄서파’로 분류한다.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을 이끄는 지휘자 백윤학(50) 영남대 음대 교수는 후자에 속한다. 지휘대 위에서 스텝을 밟고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드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댄서다. 최근 만난 백 지휘자는 “검색을 해보면 저 말고도 춤추는 지휘자가 많다”며 웃었다. 자신의 지휘 동작이 특별할 게 없다는 투다.
그가 지휘하는 영상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유튜브에서 인기가 높은데, 오펜바흐 ‘천국과 지옥’ 가운데 ‘캉캉’ 쇼츠는 600만을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표정이 역력하다. ‘알라딘’ 오에스티(OST) 메들리 지휘 쇼츠도 200만회를 넘어섰다. 지난 4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가 ‘포디움 위의 댄서’가 된 것은 오래전부터다. 2012년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가운데 ‘트레파크’를 연주하는 영상에서도 그는 춤을 춘다. “춤으로 한번 떠보려고 한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는 “계획을 세워 춤을 춘 게 아니라 곡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추게 됐다”고 설명한다. 지휘할 때마다 항상 춤을 추는 것도 아니다. 아주 느리거나 박자 변화가 급격한 곡은 춤추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스트라빈스키 ‘병사 이야기’를 지휘했는데, 변박자가 워낙 심해 춤을 출 수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면 전교생 앞에 나가 춤을 추곤 했지만 춤을 배운 적도, 나이트클럽에 가본 적도 없다. “모든 동작에 음악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게 아닌 동작은 거의 없어요.” 그는 “청중은 제 춤이 아니라 음악을 들으려고 오신 분들”이라며 “지휘자는 음악 해석과 교통정리 양쪽에 한발씩 걸치고 계속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라고 비유했다. 연주자들 교통정리가 잘되면 음악 해석과 표현에 치중하는데, 그럴 때 춤추는 동작이 나온다는 얘기였다.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공학도 출신이다. 과학고 시절엔 전국 수학·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직업적 음악인이 될 생각은 아니었는데, 대학 합창단 활동이 인생 항로를 바꿨다. “원래 지휘는 음대생 몫이었는데 음대생 명맥이 끊기자 제게 요청이 왔어요.” 그는 “피아노를 좀 치고 음대 수업도 좀 듣고 합창단에 애정도 있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라고 기억했다. 처음 지휘한 프랑스 작곡가 포레(1845~1924)의 레퀴엠이 그에게 전율을 안겼다. 가족의 반대 등 우여곡절 끝에 공대를 졸업하고 음대 3학년으로 편입했다. 이후 미국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템플대 오페라 코치 과정도 마쳤다.
“카라얀이 빈 공대를 다녔고,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취리히 공대를 졸업했어요. 피에르 불레즈, 에르네스트 앙세르메는 수학을 전공했고요.” 그는 공학·수학을 공부한 지휘자들의 이력을 꿰고 있었다. 그는 “나이 들어선 거의 움직임이 없던 유명한 지휘자들도 젊은 시절엔 동작이 컸다”며 카라얀과 첼리비다케를 사례로 들었다. 그에게 ‘나이가 들면 춤을 추지 않을 거냐’고 묻자, “아직 모르겠다. 곡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제 몸에 장착돼 있으면 그걸 최대한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요즘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에 빠져들고 있다. 그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는 게 꿈이다. ‘바그너는 춤을 추기 어려운 곡 아니냐’고 묻자, “내가 춤을 추려고 지휘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저를 춤추는 지휘자로만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오만한 얘기겠죠. 청중 1천명 가운데 1%라도 (제 춤 때문에)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춤추는 지휘자’란 타이틀이 꼭 득만 되는 건 아니다. “진지하지 않은 지휘자로 보일 수도 있죠. 무명 기간이 좀 길었어요.” 그는 “그래도 저 때문에 행복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시합창단이 오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여는 ‘여름 가족 음악회’ 지휘봉을 그가 잡는다. 첫 곡인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는 그가 대학 합창단에서 베이스 성부를 담당하며 불렀던 곡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지휘를 배운 존 마우체리는 지휘자들의 동작을 재미있게 비유한다. ‘연착되는 기차를 기다리느라 살짝 짜증이 오른 사업가’(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언제나 입을 벌리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와 한판 전투에 열중하는 듯한 모습’(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보통 사람보다 관절이 두배는 많은 듯 정신없이 팔을 흔들며 고개를 까닥이는 사람’(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손을 사용하지 않고 바지 지퍼를 열려고 애쓰는 사람’(레너드 번스타인). 마우체리는 “음악의 맥동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지휘자들의 지휘 동작은 춤사위처럼 보이는데, 이 모든 동작이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영향을 준다”고 저서 ‘지휘의 발견’에 썼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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