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하고 누가 탐욕스러운가" 고갱의 혜안 [김용우의 미술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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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폴 고갱(1848~1903년)은 아버지를 따라 남미로 떠나는 배를 탄다.
그후 6년 동안 페루에서 성장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고갱은 배를 인도하는 도선사가 돼 바다를 떠돌다 증권거래소 직원이 된다.
고갱은 프랑스 아를에서 함께한 고흐와 무척이나 닮았다.
건강이 악화하고 가족이 해체하는 말년에 고갱이 격은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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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의 미술思 24편
폴 고갱 야만인 이야기
범부와 달랐던 고갱의 삶
경쟁과 생존 틈바구니를
헤치고 다닌 고갱이 말하는 삶
![폴 고갱, 야만인 이야기, 1902년, 132×91㎝, 캔버스에 유화, 폴 크방미술관, 에센, 독일.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4/thescoop1/20250824115417990tpsz.jpg)
어린 폴 고갱(1848~1903년)은 아버지를 따라 남미로 떠나는 배를 탄다. 미지의 세계로 새로운 삶을 찾아가던 가족은 배 위에서 가장을 잃는다. 그후 6년 동안 페루에서 성장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고갱은 배를 인도하는 도선사가 돼 바다를 떠돌다 증권거래소 직원이 된다. 성장 배경이 이러하니 범부凡夫로 살아갈 팔자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30대 중반에 증권거래소 일을 접고 전업專業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하는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서머싯 몸이 만들어낸 고갱의 아바타다.
고갱은 프랑스 아를에서 함께한 고흐와 무척이나 닮았다. 그래서인지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대는 고흐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확고한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둘은 딱 두달 함께하다 갈라섰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고갱은 남태평양 프랑스령 타이티섬으로 떠나고, 고흐는 제 발로 정신병원을 찾는다.
고흐가 아를의 눈부신 햇살을 쫓아 그림을 그렸다면, 고갱은 원시의 자연과 때 묻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고뇌하는 화가의 모습을 글로 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이상과 예술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돈과 물질을 좇느냐'를 두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우리들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고갱의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전업작가 초기, 바느질하는 수잔 발라동을 그린 '누드 습작(1880년 작·1881년 6번째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은 입체감 있게 표현한 형태와 인체를 묘사한 색감이 안정적이다.
그러나 인물의 앞쪽보다 뒤를 넓게 배치한 구도에선 답답함이 보이고, 상체보다 무거운 하체가 거슬린다. 몸과 비례가 맞지 않는 왼손과 왼팔의 볼륨에 비해 왼손보다 더 큰 오른손과 손목은 기초의 빈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초창기 작품으로 열정과 의욕은 참으로 대단하다. 평소 카미유 피사로를 가까이하고 지도를 받았다는 이야기에 신빙성이 간다. 공교롭게도 고갱이 엄청난 걸작을 그려내기 시작한 건 고흐와 헤어진 후다. 1891년 43세의 나이에 타이티섬으로 간 고갱은 원시적인 자연 속에서 때 묻지 않은 주민들의 생활을 고뇌하는 예술가의 손길로 그린다.
2년 후 60여점의 작품을 안고 프랑스로 돌아오지만 인기가 없기는 고흐와 마찬가지였던 터라 1895년 다시 타이티섬으로 간다. 그후 1901년 마르키즈 제도로 옮겨 작업하다가 1903년 그곳에 묻힌다.
![폴 고갱 누드 습작.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4/thescoop1/20250824115419455zabv.jpg)
건강이 악화하고 가족이 해체하는 말년에 고갱이 격은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고갱의 그림엔 신비와 종교, 그리고 원시의 건강한 주제가 많은데, 노후엔 종교적 접근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는 그림에 내면세계와 영적 진리를 담는 '나비파(nabis)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야만인 이야기'는 고갱이 갖고 있는 인간적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인들은 자국의 식민지인을 야만인 취급하면서 함부로 대하는 일이 많았다. 고갱도 다르지 않았는데, 쾌락의 집을 짓고 비도덕적인 일을 일삼았다.
이를 회계하는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야만인 이야기' 속 서구인은 물질적 야심과 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원주민을 대하고 있다. 살기 품은 눈과 탐욕의 발가락은 맹수의 발톱으로 표현했다.
서구인들이 야만인 취급하던 원주민들의 높고 깊은 성찰은 부처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 또한 청순한 여인은 자연을 사랑하는 순결의 화관을 썼다. 과연 누가 선한 인간이고, 누가 탐욕의 동물인가.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과 생존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다녔던 고갱은 정답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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