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관리에 공유도 안 되고 통계도 제각각…정보 없는 자살예방 최전선
[편집자주] 매년 우리나라 국민 1만1000여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011년 자살예방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의 대응에 나섰지만, 'OECD 자살률 1위' 오명은 계속된다. 자살을 막는 안전망은 체계적인 시스템 부재, 예산·인력 부족, 각종 칸막이 탓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살예방 현장에선 "자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한 상태"라는 토로가 쏟아진다. 머니투데이는 현황-원인-대안 3편에 걸쳐 자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자살예방 개선책을 제시한다.

#50대 남성 A씨는 지난 7월 자살을 시도해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첫번째 시도가 아니었다. 주거지 소재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정보도 있었지만 응급실에선 바로 공유받을 수 없었다. 시스템이 달라서다.
국내 자살 관련 데이터는 파편화된 채 관리된다. 자살예방기관별로 데이터 관리 시스템이 달라 실시간 공유가 이뤄지지 못한다. 자살시도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이 취합하는 정보도 외부 공유가 이뤄지지 못한 채 사장된다. 경찰과 통계청의 집계 방식이 달라 자살자 통계가 제각각이다. 자살예방 현장에선 데이터 단절과 통합 관리 시스템 부재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토로가 터져나온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병원 92곳이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 관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자살시도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에게 치료뿐 아니라 초기 상담, 정신과적 평가, 단기 사례 관리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응급실은 환자의 △신체 상태 및 치료 내역 △자살 시도 이력 △정신과적 진단 △사례 관리 동의 여부 및 계획 등을 'SPEDIS'(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시스템)에 입력한다. 환자가 응급실 치료를 마지고 거주지 소재 정신건강복지센터 또는 자살예방센터로 연계되면, 기초센터는 정신건강 사례 관리 시스템인 'MHIS'에 상담 서비스 제공 내역, 심리 상태 등을 기록한다. 응급실은 초기 치료 과정을, 기초센터는 퇴원 후 관리와 경과를 각자 시스템에 기록하는 구조다. SPEDIS와 MHIS 모두 복지부가 총괄하고, 시스템 관리 및 운영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각각 맡고 있다.
하지만 두 시스템이 연동되지 않아 실시간 데이터 공유가 불가능하다. A씨 사례처럼 자살 재시도자의 경우 과거 데이터에 기반해 맞춤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반복적인 자살 시도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응급실은 MHIS, 기초센터는 SPEDIS에 접근할 수 없어 타 기관이 데이터를 찾아 전달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A씨 사례를 관리한 기초센터 직원은 "수많은 사례 중 A씨에 해당하는 기록을 일일이 찾아야 했다. 몇 시간이 걸려 겨우 정보를 찾았지만 이미 늦어 치료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애초에 시스템이 통합됐다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즉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우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은 "자살시도자를 최초로 치료하는 응급실과 치료 이후를 담당하는 기초센터는 관리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기초 단계부터 데이터가 분절돼 긴급 상황에서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며 "환자가 재입원해도 센터에서 정보를 넘겨주지 않으면 어떤 서비스를 받았는지, 증상이 악화하진 않았는지, 재시도 조짐은 없었는지 등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시스템 간 연동은 응급실이 환자 정보를 담은 사례 관리 의뢰서를 센터로 보내는 수준에서만 이뤄진다. 수도권 한 기초센터 직원은 "한 시스템에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것과 응급실에서 보낸 의뢰서 한 장에 의존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며 "현장은 워낙 정신이 없기 때문에 의뢰서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다. 두 시스템이 통합되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자살시도 현장에 출동해 파악한 조사 기록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자살예방법에 근거해 경찰은 시도자의 성명,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당사자 동의 없이 기초센터에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시도자와 가족, 목격자 등을 조사해 파악한 조사 기록은 마음대로 넘길 수 없다. 조사 기록에는 구체적인 자살시도 경위, 사유 진술, 범죄 혐의점 등 사례 관리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된다.
한 경찰관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시도자로부터 파악한 정보를 바로 센터에 전달하지 않는다"며 "기초적인 정보만 전달하고, 이후 센터에서 부족한 부분을 물어보면 아는 범위 내에서 답변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한 센터 직원은 "초기에 확보할 수 있는 정보는 4가지에 불과하다. 이후 필요한 상황은 경찰에 일일이 물어봐야 한다"며 "경찰 조사 내용을 어느 정도 공유받을 수 있다면 시간도 단축하고 상황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니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통계청은 통계법과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국민이 신고한 사망신고서를 기반으로 통계를 작성한다. 경찰은 신고된 변사 사건을 범죄통계규칙에 따라 작성하기 때문에 자살자 수 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통계청과 경찰청 자료는 자살예방정책을 짜는 데 필요한 기초 데이터이지만, 수치가 뒤죽박죽"이라며 "정확하고 통일된 수치가 있어야 예방과 치료 정책도 효과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전년보다 몇 명 늘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자살 원인과 배경 정보를 공유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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