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국가자본주의’로 가는 트럼프의 미국

미국마저도 ‘국가자본주의’(state-managed capitalism)로 가는 것인가.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자본주의 종주국’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끌어왔던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국가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밟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구호로 내걸은 트럼프는 고율의 보복성 관세로 자유로운 교역이라는 전후 경제 성장을 가져왔던 무역정책을 뒤집은 데 이어 국가가 개별 기업 경영에까지 직접 간섭하고 나섰다. 게다가 트럼프는 워싱턴DC 등 주요 도시의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군까지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의 자유 확대’라는 공화당의 전통 가치에 반하는 것일뿐 아니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무후무한 일이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무차별적으로 ‘간섭’하는 것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23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정부가 마치 행동주의 투자자처럼 기업 경영에 직접 개입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전했다. 연방 정부가 US스틸과 MP머티리얼스에 이어 인텔 지분까지 보유하게 되자 미국 경제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국가자본주의’를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다.

트럼프 대통령 체제의 미 연방 정부는 반도체·철강·광산 등 주요 기업에 대해 국가안보나 보조금 지급 등을 이유로 지분을 내놓도록 종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미국이 (반도체 기업) 인텔의 (지분) 10%를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89억 달러(약 12조원) 상당의 지분을 가진 인텔의 최대 주주가 됐다. 지난달에는 국방부가 희토류 기업 MP머티리얼스에 4억달러를 투자해 지분 15%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고, 6월에는 US스틸을 일본에 매각하면서 주요 경영 사안에 미 연방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받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업체에 보조금 지급의 대가로 지분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AMD에는 중국에 반도체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관련 매출의 15%를 정부에 납부토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같은 조치들을 ‘상거래적 합의’(deal)로 부르며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NYT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다른 기업들을 샅샅이 물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펌 ‘시들리오스틴’의 카이 리키펫 기업방어실무 공동의장은 “나와 대화한, 정부 보조금·지원금을 받는 거의 모든 기업이 현재 이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국이 국가자본주의와 유사한 체제로 전환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가자본주의는 국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개인·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통제하는 체제를 말한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꼽힌다.. 16~18세기 유럽 중상주의가 기원으로, 19세기 산업화에 뒤처졌던 독일이 국가 주도로 철강·철도 등 전략 산업을 육성해 국부를 일구기도 했다. 1936년 러시아계 미국 경제학자 바실리 레온티예프가 ‘산업연관분석’ 이론을 내놓으면서 이론적 토대가 마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워싱턴DC AP=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4/dt/20250824103838665auup.png)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11일 “중국이 미국을 닮을 것이란 전망은 ‘희망 회로’ 였을 뿐 실제론 미국 자본주의가 중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국가자본주의화에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트럼프는 중국이 공산당 주도로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거대 공학 국가라면 미국은 민주주의의 비효율에 발목 잡힌 국가라는 게 트럼프의 인식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미국 정부가 기업에 개입한 사례는 있었다. 당시 연방 정부는 씨티 JP모건 GM 등에 구제금융을 주면서 지분을 받았지만 이는 경영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너진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비상조치였다.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연방 정부는 보유 지분을 팔아 재정 수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개입은 과거와 달리 붕괴 직전의 기업을 대상으로 하거나 세계 경제의 파탄을 막기 위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조너선 레비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 교수는 “미국은 항상 공기업과 사기업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다”며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만 예외를 뒀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시실리아 메릴랜드대 교수는 정부가 반도체 중국 매출의 일부를 받기로 한 조치에 대해 “가장 관대하게 해석해도 성공을 위한 강탈”이라고 비판했다. 새러 바우얼리 댄즈먼 인디애나대 교수는 “정부가 한번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나면 그 기업의 의사결정은 더 이상 시장 논리에 좌우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개입했을 때 일반 주주를 보호할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에드워드 록 뉴욕대 교수는 “우리에게는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거액의 보상 패키지를 원하는 경우 이를 처리할 방법이 있다”며 “그러나 예를 들어 정부가 기업의 생산거점 해외 이전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경우 이를 분석하고 처리할 규정은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기업들에 대한 투자는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며 핵심 기업에 대한 지분 확보가 자유시장 경제를 약화한다는 비판을 반박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인텔에 대해 “이 회사는 냄비나 프라이팬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라며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지분 인수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사회주의와 치열한 싸움끝에 승리를 거둔 이후 자유롭게 일하고 기업할 자유를 근간으로 한 자본주의는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경제 시스템이 됐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의 미국은 이와는 정반대로 국가자본주의화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모습이 뚜렷한 국가자본주의는 국가 자원의 동원과 집중엔 어느 정도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결국은 인간의 창의성을 훼손하고 생산성을 저하시킴으로써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또한 이런 국가동원체제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와 연결된다. 트럼프의 이런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지속가능할 것인가. 세계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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