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ON-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 (18) 마산 영화의 재발견 ‘우리들에게 내일은 있다’

차상호 2025. 8. 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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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섬 산업체 부설학교 한일여실
학생의 눈물겨운 실화 바탕으로 제작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는
산업전사들 참모습 담아 1976년 개봉

공장·학교·기숙사 생활 사실적 묘사
경남영화사에 반드시 남겨야 될 기록

학생들 고향 잔디로 조성한 ‘팔도잔디’
아직도 학교 운동장서 푸르름 뽐내


1967년 1월 25일 열린 한일합섬의 준공식. 한일합섬은 마산수출자유지역과 마산의 산업화를 선두에서 이끈 쌍두마차였다./경남신문DB/

1967년 1월 25일 열린 한일합섬의 준공식. 한일합섬은 마산수출자유지역과 마산의 산업화를 선두에서 이끈 쌍두마차였다./경남신문DB/

◇경남영화사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영화

이 연재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소개했지만, 이번에 우리 지역 영화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영화 한 편을 발견하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낀다. 그 영화는 바로 마산한일여자고등학교가 주 배경이 된 ‘우리들에게 내일은 있다’(1976년 12월 10일 개봉. 110분)이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포스터.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포스터.

필자는 영화연구가인 이승기 선생이 집필한 ‘마산영화 100년사’를 감수했고, 2007년 마산문화원 부설 마산영화자료관 개관에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지역 영화의 태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략의 영화 역사를 알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늘 소개하는 이 영화는 지역 영화사 어디에도 거론된 적이 없고 포스터 한 장 간직한 이가 없어 영화 관계인들은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당연히 ‘마산시사’, ‘경남도사’, ‘마산영화 100년사’ 등에도 단 한 줄의 언급도 없다.

당시 마산 강남극장에서 상영한 것으로 기억한다. 몇 해 전, 그 기억을 토대로 한일여자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으나 역시 아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기억의 오류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하고많은 영화 중에서 왜 이 영화가 필자의 기억 창고에서 사라지지 않고 숨 쉬고 있었을까?

70년대는 학원 영화의 전성기였다.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 , 이승현의 얄개 시리즈와 전영록, 임예진, 이덕화가 중심이 된 하이틴영화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만난 지역 소재 영화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검색창에 제목이 뜨지만 몇 해 전만 해도 검색되지 않았고 유사한 제목의 일본 TV드라마 ‘폭풍눈물~우리에게 내일은 있다’(44부작)가 뜰 뿐이었다. 1967년 아서 펜 감독이 제작하고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주연을 맡은 미국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제 Bonnie and Clyde)가 제일 유명하다. 이후 나온 비슷한 제목들은 이 영화의 오마주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정작 필자가 원한 영화는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김복근 시인과의 대화 중에 이 이야기를 꺼내었는데 수원 한일전산여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김경옥 시조시인에게 연락을 취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김경옥 시인을 통해 이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됐다. 김경옥 시인은 “이 영화를 상기시켜 주어 매우 고맙고, 학교를 거쳐 간 교직원은 물론 동창생들도 흥분해 있다”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영화의 기본정보는 KMDB(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일합섬 초창기 모습.

한일합섬 초창기 모습.

◇우리는 자랑스러운 산업역군이다

‘이 영화는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는 산업전사들의 참모습을 그린 영화로 ‘제10회 전국모범청소년상’을 받은 한일합섬 방적2부 소속 이혜련 양의 눈물겨운 실화 수기이며, 불우한 소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고 내일의 꿈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영화 첫 화면엔 위와 같은 자막이 뜬다. 글에서 느껴지듯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띤 문화영화 혹은 계몽·홍보영화에 가깝다. 한진흥업 제작, 최훈(1922~2005년) 감독 작품이다. 최훈 감독은 1948년 ‘아시아영화공사’를 설립했고, ‘모녀’(1957년), ‘얄개전’(1965년) 등을 감독한 원로 영화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출연진은 호화진용으로 짜였다. 이사장 겸 교장 역할은 김진규, 교감은 이순재, 규율을 중시하는 작업현장 호랑이 계장은 신성일, 이를 부드럽게 조화시켜주는 사감 선생은 박원숙, 중견 간부 역할은 마산 출신 이대엽이 맡아 열연했다.

앞서 말했듯 한일합섬 산업체 부설학교로 개교한 한일여자실업학교에 다니던 이혜련 양의 수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주인공은 한정아(한유정)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그녀는 강원도 산골에서 마산으로 온 근로 청소년이다. 직업과 학업을 병행하고 기숙사에서 생활을 보장한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스템이었기에 전국 팔도에서 온 소녀들은 7000명에 이르렀다. 그녀들은 어쩌다 시내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면 부러움에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진실로 배움이 절실했고, 학교가 그리웠다. 향학열에 개교를 손꼽아 기다리며 묵묵히 공장 일에 최선을 다했다.
당시 한일합섬 기숙사, 소녀공들의 모습이 보인다.

당시 한일합섬 기숙사, 소녀공들의 모습이 보인다.
단체 귀성을 하고 있는 한일합섬 직원들.

단체 귀성을 하고 있는 한일합섬 직원들.

드디어 1974년 3월 30일 ‘제1회 한일여자실업학교 입학식’이 개최된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며 가슴을 당당히 폈다. 카메라는 공장과 학교, 기숙사 생활 등을 사실적으로 비춰준다. 잘 갖춰진 구내식당, 기숙생 합동 생일잔치, 자동화 시설, 양식 먹는 법 배우기, 첫 보너스 받는 장면 등 70년대 치곤 선진화된 공장과 학업 환경을 자세히 조명한다. 한 방에 6~7명이 생활했으니 사감 선생의 관리하에 엄격한 규율을 유지했다. 지금 보면 열악해 보이나 당시로서는 전국 최초, 최고의 모범사례였다.

출연진 각각의 캐릭터에 따라 당시 시대 상황과 개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단체 생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에피소드가 생긴다. 한정아는 애써 받은 월급을 고향집에 다 보내고 친구들 옷을 세탁해 주고 생활용품을 얻어 생활하는 등 매사에 성실한 학생이다. 카메라는 이런 분위기를 세세히 비춰준다.
한일합섬 산업체 부설학교로 1974년 개교한 한일여자실업학교(현 한일여고)의 1979년 아침조례 광경./한일여자고등학교/

한일합섬 산업체 부설학교로 1974년 개교한 한일여자실업학교(현 한일여고)의 1979년 아침조례 광경./한일여자고등학교/
1980년대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현 한일여고) 전경.

1980년대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현 한일여고) 전경.
1977년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

1977년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

◇마산, 산업화의 두 얼굴

그렇다고 해서 밝은 면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기숙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도난사건으로 도둑으로 몰린 학생, 유흥업소에서 큰돈 벌게 해준다는 은밀한 유혹에 넘어가 술집으로 나간 소녀, 오일쇼크로 전전긍긍하던 회사 분위기 등등 옛날 기억을 소환한다. 그로 인한 조업 축소로 사원 감소 의견이 대두되지만, 이사장은 특유의 철학과 뚝심으로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과의 약속은 변함없이 지켜야 한다고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남들은 공순이라 허지만, 우리만 아니면 되지 않것어? 암만, 그라지라잉!” 음향 상태가 좋지 않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여러 지역 토박이말이 다 나온다. 끝나갈 무렵에 등장하는 기차역은 마산역인듯한데, 화질이 신통치 않아 정확하진 않다. 당시엔 신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 등 3개의 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통상 신마산역을 마산역으로 불렀다. 가끔 보이는 바닷가도 높은 건물이 없어 한적한 어촌인 그때의 마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동창생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리마스터링한 깨끗한 음향과 화질로 다시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해본다.

이 영화는 70년대 산업화와 안보역량 강화 등 국가 시책을 홍보하는 목적도 분명 있다. 새마을노래가 2번이나 나오고, 중역 회의에서도 직장 새마을운동으로 오일쇼크를 극복하자는 훈시를 한다. 이 외에도 이면지 쓰기 운동, 교련복을 입은 학생들의 일사불란한 집체훈련과 의장대 사열, 유비무환의 자세로 총력안보태세를 강화하자고 다짐하는 모습, 군가에 맞춰 행진을 하는 등 권위주의 시대의 풍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은 마산의 산업화를 선두에서 이끈 쌍두마차였다. 이를 계기로 전국 7대 도시로 성장하였고 수출 전진기지가 되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산업화 열풍은 많은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했다. 마산은 환경오염과 인권 사각지대로 인식되기도 했다. 폐수가 흐르던 삼호천은 붉고 푸른 물이 흘렀다. 합포만은 낮에도 노을빛을 띠었고, 생명이 살지 못하는 상징이 된 쓰라린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이 어찌 그녀들의 탓일까. 이 영화는 극명한 두 관점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권위주의 시대, 영화를 통한 통치 이념을 주입한다는 비판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어려운 시절 배우면서 일하고자 하는 소녀들의 향학열과 미래를 향한 꿈을 응원하는 긍정적 시각이다. 오늘날 OECD 국가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까지 그들 산업역군의 역할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마산에서 전 장면을 촬영한 최초의 영화이기에 사료적 가치면에서도 중요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학생들이 각자 고향의 잔디를 가져다 조성한 ‘팔도잔디’./한일여자고등학교/

당시 학생들이 각자 고향의 잔디를 가져다 조성한 ‘팔도잔디’./한일여자고등학교/

◇학교 운동장엔 아직도 ‘팔도잔디’가 푸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제10회 전국모범청소년상’을 받은 한정아가 서울에서 시상식을 마치고 내려와 학교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것으로 마감된다. 이 영화를 위해 카드섹션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촬영 당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환영에 답하는 말을 통해 이 영화 제작의 모든 이유를 말한다.

“저희에게 훌륭한 직장과 배움의 전당을 마련해 주시고, 산학협동의 기회를 주신 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학우 여러분, 우리는 모두 똑같은 환경 속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왔습니다.…이 상은 여러분을 대신해서 받은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외롭지도 않고 부럽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이 학교 졸업생들이 영화의 재발견으로 기뻐하는 것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삶을 향한 의지를 다지던 청소년 시절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3교대 근무로 일하면서 공부한 시간은 개인의 성장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한 발자취이기도 하다. 역경을 딛고 공부한 그녀들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주인공인 한정아, 아니 이혜련 학생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학교 운동장엔 지금도 초록빛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당시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잔디를 가져다 심었는데 이를 ‘팔도잔디’라 부른다. 역사관에는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많은 자료와 사진이 있어 졸업생과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다.

한일여자고등학교(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서8길 50)는 1974년 학교법인 한효학원으로 설립인가(초대 김한수 이사장 취임)를 받아 1974년 개교했고,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등 몇 번의 교명 변경 끝에 현재에 이르렀으며 2025년 49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달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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