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흐르던 괴담, 따라가니 아파트 단지가 [서늘한 장르 소설]

김봉석 2025. 8. 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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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현대의 괴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변주한다. 전통적인 괴담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집중했다면, 요즘 일본의 괴담은 작은 위화감에서 시작하여 사방에 흩어진 단서를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공포를 창조한다.

※편집자 주: 무덥고 지루한 여름은 장르문학의 계절이다. 일로, 혹은 오랜 취미로 장르소설을 많이 읽는 필자들에게 이 여름에 읽을 만한 미스터리·호러 소설을 추천받았다. 영화·만화·미스터리를 오가는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한 일본 호러 소설을 꺼내들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영화·드라마화한 작품이다. 소설과 영상을 비교해보는 재미는 덤이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반타 펴냄

괴담의 시작에는 ‘장소’가 많다. 〈주온〉은 참극이 벌어졌던 집에 이사를 오거나, 들어서는 사람들이 지박령의 저주에 빠지는 이야기다. 〈샤이닝〉은 유령이 나오는 콜로라도의 오버룩 호텔에 일가족이 묵으면서 시작된다. 장소에는 시간이 묻혀 있다. 인간의 역사만이 아니라 이전의 사건들도. 신기(神氣)가 없는 사람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거나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에 가면 서늘하고 섬뜩한 기운을 느낀다. 피해자의 분노와 슬픔, 원한 같은 감정이 배어드는 걸까. 장소에 깃든 역사, 감정은 괴담의 중요한 수원지다.

세스지의 소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사라진 괴담 잡지 편집자의 행적을 따라가며, 의문의 사건들이 얽힌 하나의 ‘장소’를 파헤친다. 초등학교 여학생이 실종되었고, 기묘한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고, 외부에서 오는 투신자살자가 속출하는 아파트 단지가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비종교 단체의 본거지가 있다. 2층 창문으로 지켜보는 여자, 여행을 갔다가 집단으로 발작을 일으킨 학생들 등 소소한 사건도 이어진다. 일본의 어느 장소를 둘러싼 사건들이다. 서로 연결된 사건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고, 모든 것을 엮어서 하나의 장소를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파고들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기묘했다. 소름 끼쳤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2023년, 일본을 서늘하게 한 소설이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관한 괴담을 소설, 인터뷰, 스레드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전개한다. 2023년 1월부터 소설 투고 사이트 ‘가쿠요무’에 연재를 시작해 금세 조회수 1400만을 넘었고, 그해 8월에는 장편소설로 출간돼 30만 부 넘게 팔렸다. 세스지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SNS에 ‘실종된 동료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함께 올린 URL로 들어가면 ‘가쿠요무’의 연재로 연결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이게 혹시 ‘실화’인가 의심했다. 사건이 묘사하는 비슷한 장소를 긴키 지방에서 뒤져보았다는 독자도 많았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독자가 경험한 괴담을 모으고 정리하여 〈귀담백경〉을 쓰고, 〈귀담백경〉의 한 에피소드에서 출발하여 호러 장편 〈잔예〉를 완성한 오노 후유미는 괴담과 호러 소설의 차이를 직접 작품으로 말했다. 괴담은 기이한 일의 경험이고 체험이다. 근원이 밝혀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알 수 없는 모호함이다.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고 불편하다. 호러 소설은 무지에서 출발하여 근원을 찾아간다.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고 설명하지만, 그럼에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오랜 시간이 쌓인 장소에서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무수한 원한과 고통과 슬픔이 배어 있지만, 모든 것이 저주로 남지는 않는다. 모든 원한이 저주가 된다면 세상은 이미 지옥일 것이다.

올해 8월 영화로도 개봉하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의 한 장면.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현대의 괴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변주한다. 전통적인 괴담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집중했다면, 요즘 일본의 괴담은 작은 위화감에서 시작하여 사방에 흩어진 단서를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공포를 창조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진이나 영상에서 누군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평범하거나 익숙한 풍경인데, 뭔가 의심스러운 모양이나 인물을 발견한다. 인터넷에 ‘뭔가 이상한 것’을 올리면 사람들이 저마다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추가하고 누군가의 목격담이 더해진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점점 확장된다.

유난히 실화 괴담이 융성한 일본에서, 세스지와 우케쓰처럼 유튜브와 SNS 등 첨단 매체를 활용하여 괴담을 재구축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우케쓰는 소설 〈이상한 집〉을 쓰고, 텔레비전 도쿄에서 2022년 방영한 드라마 〈뭔가 이상해〉의 기획과 원안, 내레이터로 참여했다. 우케쓰와 세스지는 단순한 괴담을 넘어 호러의 진화를 열성적으로 이끄는 신진 작가,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괴담이 흐르는 과정을 그대로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스타일의 크리에이터. 우케쓰와 세스지의 소설은 일상에 늘 존재하지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연결점을 보지 못했던 수수께끼를 일상 위로 끌어내 제시한다. 하나씩 단서가 발견되고 모든 것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편함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공포. 하지만 완벽하게 해명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여전히 빈구석이 남아 있어서 무섭다. 끝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언제나 두렵고 불편하다.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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