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광천수가 아닌 정화수?…유럽 뒤흔든 ‘네슬레 게이트’ [특파원 리포트]

이화진 2025. 8. 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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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천연 광천수'는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보주산맥과 지중해 인근의 깨끗한 수원지에서 온 '천연 광천수'는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의 자연과 순수함을 상징해 왔습니다.

프랑스는 전 세계적인 천연 광천수 생산 강국으로, 현재 약 100여 개의 자연 취수처가 있으며 시장 규모는 약 87억 달러, 직간접 고용 인원은 4만 명 이상입니다.

■ 천연 광천수라더니 정화수…'전체 판매 물량의 1/3 연루'

그러나 최근 이 '순수함'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자연 속 신선한 광천수를 그대로 병입한다던 '네슬레 워터스'가, Perrier 페리에· Vittel 비텔 ·Contrex 콩트렉스·Hépar 에파르 상품 등에 수년간 불법적인 정수 처리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프랑스 파리 검찰 조사 결과 발표문 中 (CJIP, 2024)
"notamment la microfiltration à 0,2 μm, les lampes UV et le charbon actif, traitements non autorisés par la réglementation applicable aux eaux minérales naturelles."

"특히 0.2 마이크로미터(μm) 초미세 여과, 자외선(UV) 처리, 활성탄 여과 등 천연 광천수에 적용되는 규정에 허용되지 않은 처리 공정이 이뤄졌다"

프랑스에선 유럽연합 지침에 따라, '천연 광천수'로 홍보하는 모든 생수는 어떤 인위적인 처리 없이 원수 그대로 병에 담겨야 합니다.

반면 '일반 생수'는 염소 처리나 여과 등 특정 정수 과정이 허용되는 대신, 가격도 저렴하고 소비자들의 신뢰도 덜합니다.

그런데, 페리에와 비텔 등 천연 광천수 브랜드가 다른 일반 생수와 같이 미생물이나 미세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자외선(UV) 소독 및 활성탄 필터를 몰래 사용해 왔다는 겁니다.

1년 전 프랑스 유력 언론인 '르 몽드'와 라디오 '프랑스앵포'의 공동 탐사 보도를 통해 이런 사실이 드러난 건데, 프랑스 전체 생수 판매 물량의 약 1/3이 불법 정수 과정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환경적 요인으로 생수 취수처의 땅과 수질이 오염됐기 때문인데, 결국 '네슬레 워터스'는 지난해 300만 병을 폐기했고, 올해에는 수십만 병을 폐기했습니다.

■ '에비앙' 제조사 다농 측 "올해 정부 현장 점검 마쳐…소비자 규정 준수 유지"

이 과정에서 유명 천연 광천수 브랜드인 '에비앙'과 '볼빅' 제조사 다농(Danone) 또한 프랑스 정부와 언론의 집중 점검 대상이 됐습니다.

프랑스 다농 측은 에비앙 등도 이런 의혹을 받아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올해 상반기 프랑스 상원 조사단이 공장을 직접 방문해 필터링 절차를 정밀 점검했고 또 점검 중이라면서, "다농은 소비자를 위한 규정을 모범적으로 준수하고 있다"고 27일 KBS에 밝혀 왔습니다.

다농 측은 또 "현재까지 불법 정화 공정 적발이나 제재는 '네슬레 워터스' 소속 브랜드(페리에, 비텔 등)에만 내려졌다"면서, KBS와 프랑스 국회가 '네슬레 워터스 게이트'를 함께 조사하면 좋겠다고도 전했습니다.

■ 불법 정수 처리 알았는데도…프랑스 정부의 '묵인'

광천수가 사실은 정화수였다는 보도는 프랑스 정부의 '묵인'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발표된 프랑스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부와 재무부 산하의 부정경쟁·사기 방지총국(DGCCRF)은 이미 2021년 9월 '네슬레 워터스'의 불법 정수 처리 행태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업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공급망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이들 기업이 약 2백만 유로 벌금을 내고 불법 관행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도 밝혀졌습니다. 이 조사의 책임자였던 상원 의원 알렉상드르 위지예는(Alexandre Ouizille) 이번 사안을 "설명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는" 기업-정부 유착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프랑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신뢰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했다"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법 대응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윤리 문제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 위기로 확대된 겁니다.

■ 천연 광천수 브랜드를 흔드는 '환경 윤리'

천연 광천수 브랜드의 위기 원인은 단순히 수질뿐만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은 '순수·깨끗·친환경' 등, 브랜드 마케팅 뒤에 숨은 기업의 환경 윤리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2023년 1월 국제 환경 단체들은 에비앙 제조사인 다농(Danone)을 상대로 "플라스틱 오염 및 환경 문제 해결 노력이 부족하다"며 파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23년 10월에는 미국에서도 '탄소 중립' 주장이 허위 광고라는 내용으로 집단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지난 2월 제조사 다농은 향후 플라스틱 사용량 공개 및 감축 정책 강화, 2025~2027년 소비자와의 연례회의 참여 등을 약속했지만 시장의 분노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동안 천연 광천수라는 이름으로 깨끗한 물을 팔아왔던 기업이, 막상 '깨끗한 환경'을 위한 노력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수질'과 '환경 윤리'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신뢰를 시험받고 있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천연 광천수 브랜드인 산펠레그레노(San Pellegrino) 역시 친환경 포장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EU 차원에서 음료 포장재의 재활용률 규제 강화 논의에 휘말리며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순수함'을 팔던 프리미엄 생수가, 이제 자신의 순수성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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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진 기자 (hosk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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