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병뚜껑·물티슈…바다에 버린 쓰레기 줍고 다양한 예술품도 만들고
빗질하듯 쓰레기 긁어모으며 해변 청소
여름 저물고 피서객 떠난 지금이 적기
한시간만 돌아도 봉지에 온갖 물건 가득
수거한 물건들 깨끗이 씻어 작품 재료로
체험관서 모빌·브로치·장식품으로 재탄생
“나만의 작품 만들고 환경 보호도 실천”

바다 하면 튜브와 물안경 끼고 뛰노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피서객이 떠난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이 머릿속을 스칠지도 모른다. 다만 씁쓸해하긴 이르다. 이 해양쓰레기에 새 생명을 주는 이들이 있으니. 그래서 가봤다. 다들 떠난 바닷가에서 멋진 후일담을 쓰는 이들을 만나러.
“세상에 버릴 거 하나도 없어요. 병뚜껑은 장난감 자전거의 바퀴가 되고, 물티슈는 인형의 웨딩드레스가 되죠.”
강원 고성 송지호관망타워에서 만난 전향숙 작가의 첫마디였다. 고성 출신인 그는 6년 전부터 비치코밍(beach-combing)을 이어가고 있다. 바다(beach)와 빗질(combing)을 합친 단어로, 말 그대로 해양쓰레기를 빗질하듯 긁어모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활동이다. 비치코밍은 여름이 저무는 이맘때가 제철이다. 피서철 직후라 버려진 쓰레기가 많기 때문이다.
“타워 뒤편 바닷가로 가볼까요? 대부분의 해수욕장은 개장 기간에 군청에서 쓰레기를 수거하지만, 관리 대상이 아닌 이런 해변엔 버려진 쓰레기가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비치코밍의 첫 단계는 바로 쓰레기 줍기다. 재료를 모아야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터. 이때 주의할 점은 작품에 쓸 만한 쓰레기만 모으면 안된다는 거다.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 전 작가는 폐현수막으로 만든 쓰레기 봉지를 나눠줬다. 50ℓ쯤 되는 봉지를 각자 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새하얀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졌다. 언뜻 보기엔 깨끗하기만 했다.
“오, 여기 노다지네요!”
두어 걸음 걸었을까. 전 작가가 물고기 모양 낚시찌 3개를 발견했다. 날카로운 바늘이 여럿 달려 있었다. 밟으면 크게 다칠 듯했다. 주변에 서핑을 하러 온 이들이 맨발로 다니는 걸 보고 서둘러 주웠다. 전 작가는 “낚시하다가 줄이 끊기면 찌는 그대로 바다에 남는다”며 “이런 줄과 찌가 높은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찌 외에도 깨진 유리 조각, 테니스공, 기저귀, 약병, 링거줄 같은 생각지도 못한 쓰레기가 모래에 묻혀 있었다.

해양쓰레기는 크게 두가지 경로로 발생한다. 피서객이 버리거나 먼바다에서 떠밀려 오거나. 일본어나 중국어가 적힌 과자봉지는 물론, 쉽게 보기 힘든 북한 ‘단물’ 음료수 라벨도 여기선 종종 보인다. 부서진 부표나 스티로폼도 많다. 전 작가는 “큰 쓰레기는 줍기 쉬운데 작은 스티로폼 조각은 다 챙길 수 없다”며 “이 조각을 삼킨 물고기나 거북이는 몸이 떠올라 잠수하기 어렵다더라”고 안타까워했다.
정신없이 줍다보니 봉지가 묵직해졌다. 해안가에 나온 지 30분도 안된 시간이었다. 두명이 주워도 이 정도라니. 고성 주민들도 매주 모여 해변가를 청소한다. 2023년부터 함명준 고성군수를 중심으로 ‘비치 플로깅’이 열려왔다. 카카오톡 단톡방 ‘맨발행복’에서 신청받는데, 많을 땐 50명도 넘게 모인다. 이들이 한시간만 쓰레기를 주워도 100ℓ들이 봉지 10자루는 거뜬히 생기곤 한단다.

이제 쓰레기에 숨을 불어넣어볼까. 비치코밍 전시·체험관이 있는 관망타워로 돌아와 쓰레기를 꺼냈다. 30개 넘는 낚시찌부터 그물·약병·장난감·기저귀·물티슈·병뚜껑까지 온갖 물건이 모였다. 깨끗이 씻은 뒤 말리면 작품의 재료가 된다. 모빌이나 브로치뿐 아니라 꽃·개구리·부엉이·쥐 모양 장식품도 만들 수 있다. 전 작가는 “생명을 덧입히는 일”이라며 “체험객들이 작품을 만들다 안 풀리면 저에게 들고와서 심폐소생술 좀 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웃었다.
기자가 도전한 건 모빌이다. 다듬은 재료를 모양·색상별로 나눠놓으니 색색의 물감을 짠 팔레트 같았다. 모빌에 달 재료를 고르는데 내심 욕심도 생긴다. 예쁜 낚시찌·조개껍데기·유리조각을 고르는 데 고민을 거듭했다. 바다를 닮은 푸른 모빌을 만들어 볕 드는 창문에 걸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평일인데도 전시·체험관은 북적였다. 7월까지 벌써 1000명 이상이 작품을 만들었다. 한 관람객은 그냥 꽃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꽃잎이 조개껍데기인 걸 알고 놀라기도 했다. 골똘히 작품을 감상하던 두 자매도 비치코밍 체험에 참여했다. 충남 홍성에서 온 이서진양(15)은 “평소 바다 구경을 좋아하는데 해양쓰레기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언니와 함께 달려왔다”며 “방학에 바다를 지키는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느새 체험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전 작가가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맑고 깨끗한 바다를 사랑한다면 비치코밍도 한번 해보세요. 의미 없던 쓰레기도 당신이 줍는 순간 보물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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