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 본 남도 세상 17] 세계자연유산 서해안 갯벌1(고창)




# 만돌마을의 유래
조선시대부터 어업과 염전으로 번성했던 마을은 장차 굴뚝이 만 개가 솟을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만돌(萬突)'이라고 하였다. 바다의 숨결을 품은 갯벌이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왔다. 마을 어귀에는 계명산이 바람을 막고, 세월을 품고 있다.



# 서해랑길과 바람의 공원
만돌마을은 서해랑길 41코스의 일부로, 걷는 이들에게 서해의 풍광을 선물한다. 서해랑길은 서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장대한 도보길로, 고창 구간은 특히 갯벌과 농촌 풍경이 어우러져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의 공원'이 나타난다. 이곳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바람개비와 전망대가 어우러져 있다.
바람의 공원은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지역 주민들이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바람은 사빈의 모래를 운반하고, 갯벌의 생태를 순환시키는 자연의 숨결이다.
# 만돌에서 외죽도까지, 생명의 갯벌
만돌에서 외죽도까지 펼쳐진 갯벌은 생명의 보고다. 칠게, 농게, 갯지렁이, 조개류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며, 이 생태계는 김 양식에도 큰 영향을 준다. 만돌의 김은 갯벌의 영양분을 머금어 향이 깊고 맛이 진하다. 김을 채취하는 어민들의 손길은 갯벌을 어루만지듯 섬세하다.

# 갯벌이 품은 생태적 다양성의 보물창고
고창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받은 이유는 그 놀라운 생태적 다양성에 있다. 이곳 갯벌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풍부한 생태계 중 하나로, '바다의 열대우림'이라 불릴 만하다. 갯벌 위층부터 깊은 퇴적층까지, 각각의 환경 조건에 적응한 수백 종의 생물들이 층층이 서식한다고 한다. 표면에서는 망둑어와 농게가 구멍을 파고, 중간층에서는 갯지렁이와 백합이 영양분을 여과하며, 깊은 층에서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분해한다. 이들은 단순히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촘촘히 연결된 먹이망을 형성한다.

조류의 경우 더욱 극적이다. 갯벌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EAAF)의 핵심 기착지로, 매년 약 85~101종, 19,700~36,000마리 이상의 철새가 이곳을 거쳐 간다고 한다. 봄에는 청다리도요와 민물도요가, 가을에는 큰뒷부리도요와 개꿩이 갯벌을 채운다. 특히 희귀종인 넓적부리도요와 알락꼬리마도요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서식지다.
# 갯벌의 생태계 서비스와 지구적 가치
갯벌은 단순한 생물 서식지를 넘어 지구 환경에 필수적인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갯벌은 연간 약 26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블루카본(Blue Carbon)' 저장한다고 한다. 고창 갯벌 역시 중요한 블루카본(Blue Carbon) 저장소임에 틀림없다.
또한 갯벌의 퇴적물은 천연 정화 시설 역할을 한다. 갯지렁이와 조개류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바닷물을 여과하며, 이 과정에서 오염 물질과 과도한 영양염을 제거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갯벌의 '생태적 복원력'이다. 태풍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후에도 갯벌 생태계는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는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복잡한 생물 간 상호 작용의 결과다.
# 지속가능한 어업과 생태 보전의 조화
만돌마을 주민들은 수백 년간 갯벌과 공생하며 '지주식 김 양식업'을 발전시켜 왔다. 김 양식은 갯벌의 자연 순환을 그대로 활용하는 친환경 어업의 전형이다. 갯벌의 풍부한 영양분만으로 최고 품질의 김을 생산한다.
조개류 채취에는 갯벌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일정 기간씩 휴식기를 두는 방식으로, 생물들의 번식 주기를 고려한 전통 지혜다. 고창 갯벌은 국내 최대 바지락 생산지로 알려져 있고, 조개류의 서식 환경이 우수하다.
# 노을, 갯벌의 심미적 가치
갯벌은 단순한 생업의 공간을 넘어, 심미적 감동을 주는 자연 예술이다. 특히 만돌의 노을은 전국에서도 손꼽힌다. '노을이 아름다운 어촌 마을'로 해양수산부 안심 여행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가 지며 갯벌 위로 붉은빛이 퍼지면, 물결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외죽도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은 하루의 끝을 장엄하게 장식한다.

# 갯벌이 품은 삶의 이야기
만돌마을의 갯벌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품고,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다. 아이들은 갯벌에서 놀며 생명을 배우고, 어른들은 갯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갯벌은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고향'이다.
갯벌의 생태적 다양성은 결국 인간 문화의 다양성과도 연결된다. 수백 종의 생물이 공존하는 갯벌처럼, 이곳 사람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어떤 이는 김을 기르고, 어떤 이는 조개를 캐며, 또 어떤 이는 갯벌을 안내한다. 이 모든 삶의 방식이 갯벌이라는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조화롭게 순환한다.
이곳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남도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갯벌 위에 피어난 생명의 풍경은,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진정한 생태적 다양성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말해준다.만돌마을의 갯벌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교향곡이 연주되는 무대다. 그 교향곡 속에서 인간 또한 하나의 악기가 되어 조화로운 선율을 만들어가고 있다.
*블루카본(Blue Carbon)은 바닷속 또는 연안 생태계(해양식물, 갯벌, 잘피밭, 염습지, 맹그로브 등)에 의해 흡수·저장되는 탄소를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