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주주 보호냐, 이사회 알박기냐…'집중투표제의 역설'

"소수 주주가 지분을 집중해 다수의 의지를 무시한 채 이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 투자자는 이같은 내용의 '주주 서한'을 앞으로 더 자주 볼지 모른다. 여당은 오는 24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저지하더라도, 다음날 표결 처리가 가능하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여러 표를 특정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소액주주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현재는 회사가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하면 모든 대형 상장사가 도입해야 한다.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이 가능해지면 소액주주, 기관투자자, 행동주의 펀드 등이 지지하는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소수 주주의 목소리가 이사회 직접 반영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넥스트젠의 지분 약 15%를 보유한 창업자(셸던 라진)는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2015년 회사매각 논의를 이사회에 숨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사회의 요구로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전문경영인(CEO) 체제로 회사가 운영됐으나 2021년 창업자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사를 이사회에 추가하려고 하면서 '창업자 대 이사회' 간의 표 대결이 벌어졌다.
이사회는 창업자처럼 소수의 지분으로 장기적으로 이사회에 남을 수 있는 '집중투표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제도 폐지를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렸다. 이사회는 주주 서한에서 "집중투표제를 폐지하면 주주들은 '1주 1표'를 행사할 수 있다"며 "소수주주가 주식을 집중해 과반수의 의사를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집중투표제로 인해 창업자는 자신과 그가 지지하는 이사를 무기한(일방적)으로 재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며 "다른 이사회 구성원의 촉구로 의장직에서 사임하고, 최근 이사회의 견책을 받았음에도 이사회와 주주들은 그를 해임할 실질적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외국 투자자, 행동주의 펀드 등이 연합할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해외 기관 투자가 많은 기업 들은 자체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법안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 중이다. 현재 지분 구조에서 이사회 구성원 7명 중 최대주주 측이 확보 가능한 이사 수는 2~3명뿐이라는 분석 결과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상법이 추가 개정되면 소액주주 보호보다는 행동주의펀드로부터 공격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방어 비용 증가에 따라 기업 경쟁력 하락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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