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군기 잡던 '호랑이 국정기획위원회'는 왜 보고서조차 발간 못하고 문 닫았나[노변정담]

정지용 2025. 8. 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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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정책 멘토 이한주 위원장 필두로 출범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힘 빠진 보고 대회
대통령 예산 부담에 "확정된 것 아니다"
세부 보고서도 일주일 만에 뒤늦게 공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 총망라는 의미
편집자주
주말 아침, 다정하고 친근하게 한국 정치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갈등과 분노가 아닌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럴 거면 왜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했는지 모르겠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 한 위원은 최근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습니다. 두 달 넘게 휴일도, 야근도 마다하고 열과 성을 다해 이재명 정부의 5개년 청사진을 위해 내달렸지만 결과적으로 '용두사미'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게 되자 답답함을 토로한 것입니다.

지난 6월 16일 출범한 국정위는 이달 13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정부 5개년 계획에 대한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고 123개 국정과제와 564개 세부과제를 공개했습니다. 일종의 '피날레'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두 달 동안 고생했는데, 출입 보안용으로 휴대폰에 붙여놓은 스티커 한장밖에 남은 게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국정기획위원회 해단식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진행됐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 제공 뉴스1

"검찰 반성하라" 군기반장 국정위

국정위의 출발은 야심 찼습니다. 윤석열 정부 탄핵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한 이재명 정부인 만큼, 국정위는 사실상의 대통령직 인수위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권한과 역할에 지대한 기대가 쏠렸죠.

박근혜 정부 탄핵으로 역시 인수위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 때는 '국정기획자문회원회'를 출범했는데, 이재명 정부에서는 '자문'을 빼고 '국정기획위'라고 이름까지 달리 지었습니다. '소극적' 자문 역할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소속 위원 규모도 34명에서 55명으로 확대하고, 활동 기간도 50일에서 60일로 연장했습니다.

인물도 화려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멘토'이자 '40년 인연'인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이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부위원장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등 당·정부·대통령실 고위 인사들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임은정 검사, 이찬진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 등 중량감 있는 관료·학계·시민단체 인사도 속속 합류했습니다.

위세도 대단했습니다. 지난 6월 대검찰청 보고를 받다가 30분 만에 중단시키고 돌려보낸 게 대표적입니다. 국정위는 "대통령 핵심 공약 내용은 제대로 분석돼 있지 않고 통상적인 공약 이행 절차라는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검찰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환골탈태할 때가 됐다"(이한주 위원장)고 까지 했습니다. 여권에선 "호랑이 군기 반장 역할"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이한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확정된 정책 아니다" 선 그은 대통령

그러나 점차 힘이 빠지는 분위기가 감지됐습니다. 국정위 안팎에서 "국정위에서 여러 정책을 논의하지만,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는 기관은 아니다"며 점차 말을 아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활동 기간 중 정책에 의견을 표명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왜 확정되지도 않은 걸 얘기하느냐"며 면박을 들은 일도 생겼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슈였던 검찰개혁, 기획재정부 분리 등 '정부 조직 개편안'도 끝내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국정위가 대통령실에 보고했으나, 최종 확정안을 만들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 보고대회를 두고도 뒷말이 나옵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 보고대회 모두발언에서 "국정위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안을 면밀하고 신속하게 검토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이행해 나가겠다"면서도 "국정위 기획안은 정부의 확정된 정책안이 아니다.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고칠 수 있다는 취지인데, '김이 빠진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여권 관계자는 "두 달 넘게 고생했던 국정위원들 입장에선 '지금까지 우리는 뭐한 건가', '이럴 거면 왜 만들었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냐"고 허탈해 했습니다.

특히 대통령실은 대국민 보고대회가 끝난 직후 최교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이찬진 금융감독위원장 후보자 등 무려 6개 부처 기관장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언론 관심의 초점도 '이재명 정부 5개년 계획'에서 '무더기 기관장 인사'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뉴스1

'지키지 못할 약속은 어렵다' 이 대통령 지론

국정위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하지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지론이 작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국정위가 제시한 5개년 계획을 이행하려면 약 21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실로서는 "정부 예산이 한정적이고 정책 환경이 계속 바뀌는데 국민께 이런 약속을 하는 게 맞느냐"며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한 국정위원은 "행정가 출신인 이 대통령은 정치적 구호보다 '정말 할 수 있는 일인가' '투입되는 예산이 얼마인가'를 중요시한다. 일반적 정치인이라면 그냥 하루 발표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대선 기간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4월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매머드급 싱크탱크'로 주목받았던 민주당 외곽 조직 '성장과 통합'이 공식 출범 8일 만에 공중분해 됐습니다. 조율되지 않은 공약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자 이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했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국정위의 구조적 한계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새 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업무를 공식적으로 인수인계받는 인수위와 달리 국정위는 이미 새 정부가 출범한 상태에서 '동시에' 운영됐습니다. 이한주 위원장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관차(국정위)가 열차(정부) 앞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나란히 가고 있어 불안한 상황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고 어려움을 표현했습니다.

국정위에 참여한 한 인사는 "정책 현안에 그립(장악력)을 쥐려는 관료 출신 대통령실 인사와, 이 위원장 사이에 미묘한 알력 다툼도 있었다"고 귀띔했습니다.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공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 국정위 제공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 국정위 제공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한눈에

국정위는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각 부처로부터 108회에 걸친 업무 보고, 8회의 전체 회의, 707회의 분과별 회의, 200회의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얘기입니다. 국정위 위원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입니다.

국정위가 만든 '국정운영 5개년' 보고서는 국민보고대회가 지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20일 총리실을 통해 '예고 없이' 발표됐습니다. 국정위는 지난 14일 공식 활동을 종료하면서 상세한 보고서를 내지 않았는데,"국정위 보고서가 폐기됐다"는 얘기가 나오자 뒤늦게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고서에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AI 고속도로 구축 방안'(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아이 키우기 좋은 출산·육아 환경 조성 방안'(보건복지부) '탄소 중립을 위한 경제구조 개혁방안'(산업통상자원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 실현 여부와 별개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를 총망라 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실용을 표방하는 진보 정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324페이지의 이 보고서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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