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패권전쟁…빌 게이츠가 '한국 역할론' 강조한 이유

"차세대 SMR(소형모듈원자로)의 빠른 실증과 확산을 위해 한국 정부의 규제 체계 수립과 공급망 구축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찬을 가지며 이같이 말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미국의 SMR 기업 테라파워의 설립자다. 미래 SMR 산업에 있어 '대한민국 역할론'을 직접 거론한 것이다. 그는 최 회장에게 "앞으로 SK와 테라파워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본다"는 말도 건넸다.

테라파워는 현재 가장 선도적인 SMR 기업이 됐다. 지난해 미국 와이오밍에서 세계 최초로 상업용 SMR 플랜트 건립에 돌입했다. 2030년 가동이 목표다. SMR은 전기출력 300㎿e(메가와트) 이하급의 원자로로, 건설비용은 대형원전의 30분의 1 수준이고, 중대사고 확률은 10억년에 1회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테라파워는 냉각재로 폭발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물이 아닌 소금(나트륨)을 활용하는 4세대 원자로를 지향하고 있어 안전성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다.

SK와 HD현대의 경우 테라파워와 '동맹'을 체결한 대표적 기업이다. SK는 테라파워에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한 2대주주다. SK는 테라파워와 함께 아시아 SMR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게 목표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사업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SMR이 거론되고 있다. HD현대는 테라파워에 약 400억원을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을 바탕으로 '부유식 SMR', 'SMR 추진선' 기술 개발을 노리고 있다. 나트륨 원자로에 탑재되는 원통형 원자로 용기에 대한 공급 계약 역시 체결했다.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 정부의 규제 체계 수립과 공급망 구축'을 거론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SMR과 관련한 구체적인 원칙과 법령을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한 한국에 '속도전'을 촉구한 모양새다. 테라파워는 SK와 함께 22일 산업부 측과 만나 SMR 투자와 기술 개발 경과 등을 설명하면서 △민간 참여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지원 △정부 차원의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선진제도 도입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원전 산업이 국제정치 구도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SMR 프로젝트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 관계 속에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과의 파트너십 아래 'SMR 밸류체인'의 주요 축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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