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목적은 인민 공동선 실현…파당적 다툼은 정치 아니다

2025. 8. 23. 0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상훈 ‘고전으로 읽는 민주주의’] 루소 『사회계약론』
장피에르 루이 로랑 위엘의 1789년작 ‘바스티유 습격’. 인민주권론을 주창한 루소는 프랑스대혁명 주역들의 사상적 스승이 된다. [중앙포토]
루소는 묻는다. 한 나라의 자유로운 구성원에게 복종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정당한 정치 질서”란 어떤 것인가. 저자는 답한다. 법에 따라야 하는 인민이 그 스스로든 대표를 통해서든 “법의 저자”인 국가에서만 통치는 정당하고 복종은 자유롭다.

책은 짧다. 1권에서는 독립된 주권 국가를 만드는 사회계약을 논한다.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합의를 통해 탄생”한다. 2권의 주제는 일반의지와 입법권이다. 루소는 홉스의 ‘국가 주권론’을 거꾸로 세워 ‘인민 주권론’을 주창했고, 그 요체는 인민의 일반의지를 법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3권의 주제는 정부다. 정부는 국가와 다르다. 국가의 주권은 분열되어서는 안 되기에 대표도 양도도 할 수 없다. 정부는 다르다. 기능에 따라 권력은 나뉘어야 하고, 선출된 대표가 운영해야 한다. 4권의 주제는 투표제도와 시민 교육인데, 루소가 인용하는 사례는 고대 스파르타와 로마 공화정이다. 루소 때는 참조할 사례가 그것밖에 없었다. 이제는 풍부한 현대적 사례가 존재하므로 4권은 읽지 않아도 된다.

급진적 사회변화 혐오한 공동체주의자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인간은 있는 그대로 두고 법은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정치 질서에 정당하고 확실한 원칙이 있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자 한다.” 플라톤 이래 철학자들은 바람직한 국가를 기획하면서 정치의 역할과 교육의 역할을 구분했다. 인격의 형성과 개조는 부모나 교사 같은 교육자의 역할이다. 정치는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 못한다. 정치가는 법을 통해 공동체의 질서를 만들고 지키는 제한된 역할을 한다.

루소는 같은 해 한 달 간격으로 『에밀』과 『사회계약론』을 출간했다. ‘교육론’과 ‘정치론’을 나눠서 낸 것이다. 따라서 위 문장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나는 인간을 바꾸는 교육의 문제는 『에밀』에서 다뤘다. 이 책에서는 정치의 문제, 즉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확고히 구현할 수 있는 주권의 원리에 대해서만 다루겠다.’

만인이 싸우는 홉스의 자연 상태와는 달리 루소의 자연 상태는 평화롭다.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는 공감과 연민의 능력이 있다. 문제는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발생했다. 지배와 탐욕, 오만과 허영심에다가 남을 경멸하고 자기만 아는 편애의 사회상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사회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바로 이 대목이 문제였다. 가톨릭 사제들은 루소가 인간의 원죄를 부인함으로써 신에게 구원을 청할 이유를 없앴다고 분노했다. 사회개혁가들은 열광했다. 애초 인간의 잘못 때문이 아니고 사회를 바꾸면 좋아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의 주역들이 루소를 사상적 스승으로 추앙할 만했다.

그러나 루소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급진적 사회 변화를 혐오했고, 조용하고 소박한 농업 중심의 작은 공화국을 원했다. 루소는 복고적이고 낭만적인 공동체주의자였다. 양편으로 나뉜 광화문 시위에 염증을 느끼거나 도시 텃밭과 자연인에 열광한다면 당신은 루소의 후예다.

국가를 만드는 사회계약은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다수가 동의했으니 따르라는 것도 정당한 합의가 아니다. “최초의 한번은 만장일치의 합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뒤 “의사결정의 행정적 수단으로 다수결”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뜻을 모아 어떤 단체를 만들기로 합의할 때 그때만큼은 참여자 모두가 취지에 찬동해야 한다.

장 자크 루소 (1712-1778) 스위스의 제네바 공화국 출신이지만, 생애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정치철학자다. 작곡도 하고 소설도 썼으며 식물학이나 화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평생 쫓기듯 불행하게 살았지만, 자의식이 강한 글로 자신에게 닥친 운명과 싸웠다. 작곡한 오페라로는 ‘마을의 점쟁이’가 있고, 소설로는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낭만주의 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신 엘로이즈』가 있다. 정치사상 관련 분야 저서로는 『사회계약론』과 더불어 『학문 예술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에밀』 『코르시카 헌법 초안』 『폴란드 정부에 대한 고찰』 등이 있다.


이때의 취지는 참여자 모두의 공동선을 위한 것으로 확고하게 합의한 내용이다. 이것이 일반의지이고 그런 합의가 있어야 함께 단체를 만들 수 있다. 단체를 만든 뒤 운영자와 운영 방식을 정하며 다수결 원리를 적용한다. 그런 다음에도 주기적으로 정기 총회(뭔가 잘못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때는 임시 총회)를 열어 애초의 취지(공동선, 일반의지)에 맞게 단체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심의해야 한다.

국가 형성도 마찬가지다. 홉스를 따라 루소도 국가를 오늘날의 법인(法人)처럼 “가상의 공적 인격”이라 부른다. 국가를 만들기 위한 사회계약은 “각자가 모두와 결합함에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기에 이전만큼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모든 권리를 “완전히 양도”해야 한다. 만들어진 사회계약(헌법)의 내용을 보고 따를지 말지 그때 결정하겠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국가의 설립 목적인 일반의지”의 실현을 위해서는 주권이 필요하다. 주권은 제삼자나 다른 개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 그건 신탁통치이거나 위임통치다. 나눌 수도 없다. 한 국가 안에 주권이 두 개면 곧 내전이다.

만인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일반의지를 천명하지 않고 정치를 한다면, 그건 이미 정치가 아닐 것이다. 정치를 파당적 다툼으로만 보는 사람에게는 공익이나 공동선, 일반의지란 황당한 것일지 모른다. 실존하는 것은 개인 이익과 당파적 의견뿐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동료 시민으로서 공통의 소속감과 책임감은 가질 수 없다. 같은 나라를 사랑할 이유도, 공동체를 공동체답게 만들려는 열정도 깃들 수 없다.

루소는 말한다. “개별 이익의 대립이 정치체의 설립을 필요하게 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개별 이익들의 일치다.” 공유하는 가치나 공동의 목표가 없다면 누구도 같이 살 수 없다. 보수도 진보도, 좌도 우도, 기업가도 노동자도 함께 노력하고 공유해야 할 것이 있다고 믿어야 협력할 수 있다.

입법은 만인을 위한 일반의지에 기초를 둔다.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법은 만들 수 없다. 인민의 주권은 나눌 수도, 양도할 수도 없고 “오로지 인민 자신에 의해서만 대표”된다. 나누고 대표하고 위임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권력과 기능이다. 권력은 분립해야 한다. 법의 집행은 기능에 따라 나뉘어 위임된다. 그런데 최고 행정관인 대통령들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국민주권’을 양도받은 듯이 행동한다. 대선은 행정 수반을 뽑는 선거였다. 국민/인민은 주권을 양도한 적이 없다.

루소는 당대 많은 이들이 칭송했던 영국의 정체에 비판적이었다. 영국에는 시민이 없고 신민만 있다고 루소는 말했다. 1832년 선거법 개정 이전까지 유권자가 20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영국은 공화정도 민주정도 아니었다.

권력 분립·위임하는 정부와 국가는 달라
루소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에도 비판적이었다. 더 많은 인민을 행정관으로 앉히려는 데 급급해, 한편으로는 일반의지를 형체도 없이 분열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가 소수를 통치하게 함으로써, 자연법칙에 반하는 정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루소는 아예 민주정 자체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루소는 반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정부의 통치는 유능한 대표를 선발해 맡기는 것이다. 루소는 이를 민주정이라 하지 않고 공화정이라 불렀다. 그런 뒤 과거 공화정 ‘도시’ 모델을 당대에 맞게 현대화해서 공화정 ‘국가’ 모델을 이론화하려 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정체를 민주 공화정이라 부른다. 실제로 루소 사후 실현된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인민 주권론과 대의정부론의 혼합물이다. 그래서 개념상의 혼란이 발생했다. 루소는 민주정을 인민이 번갈아 행정관이 되어 통치하는 체제라 보았으며, 그보다는 귀족정이 더 우월하다고 말했다.




■ 『사회계약론』

「 장 자크 루소의 대표작이자 저자의 인생을 요동치게 한 책이다. 루소는 루이 14세 사망 2년 전에 태어나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11년 전에 죽었다. 절대왕정 몰락기의 격변이 이 책의 부침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책은 금서로 묶였고 저자에게는 체포령이 발동되었다.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루소는 무관심 속에 생을 마쳤다. 그러다 프랑스대혁명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혁명의 주역들은 이 책을 사상적 지주로 삼았다. 저자의 유해는 “조국(프랑스)이 빚진 위인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시간이 지나 편협한 양극단의 해석이 사그라진 뒤에야 만인의 고전이 되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를 인민주권과 동일시한다. 유능한 소수의 통치자 집단에 정부 운영을 맡기는데, 다만 세습의 원리가 아닌 선출의 원리를 적용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는 루소 이론의 변주곡이다. 『사회계약론』의 저자가 주창한 국가론과 정부론은 역사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았다.

루소의 천재성은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그래서 그의 모든 주장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몰고 다녔다. 칸트는 루소를 칭송했다. 데이비드 흄 덕분에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면, 루소 덕분에 “인간의 도덕적 숭고함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의 제정자들도 몽테스키외와 함께 루소를 존경했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리더였던 볼테르는 달랐다. 그는 루소를 “자식을 버린 위선적 교육 이론가”라고 공개 비난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가리켜서는 “이제껏 누구도 우리 인간을 자연 속 짐승으로 돌려놓으려고 이토록 지성을 발휘한 적은 없다”라고 야유했다. 그런 볼테르가 루소와 함께 팡테옹에 묻혀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그 둘은 지금도 싸우고 있을 것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특유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글을 써왔다. 다작의 작가로 최근엔 『혐오하는 민주주의』 『정치적 말의 힘』 『청와대 정부』 등을 펴냈다. 유명 칼럼니스트기도 하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