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안전보장 놓고 ‘동상이몽’… 러시아 “우리 동의 있어야”

이철민 기자 2025. 8. 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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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국이 피해국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주장
러ㆍ우크라 정상회담도 요원…푸틴은 젤렌스키를 “서방 꼭둑각시” “불법 대통령” 무시
트럼프ㆍ푸틴 회담에도, 달라진 것 없이 러시아는 전쟁 지속할 시간 벌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ㆍ러 정상회담과 18일 유럽 정상들과의 백악관 회의 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안전보장을 수용하겠다고 동의했다”며 “매우 중요한 걸음” “러시아의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특사이자 억만장자 부동산개발업자인 스티브 위트코프도 푸틴이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제5조와 유사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는 “판을 바꾸는(game-changing) 양보”를 했다고 말했다.

노벨평화상을 꿈꾸며 “취임 후 지금까지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공언하는 트럼프로선 자신의 우크라이나 평화 중재 ‘성과’를 내세울 이유가 충분하다(트럼프의 7개 분쟁 해결 주장은 그가 해결했다는 다수의 분쟁 당사국들도 반박해, 과장된 면이 크다.)

‘나토 5조’는 나토 회원국 중 한 나라가 무력공격을 받으면 이를 모든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개별 또는 집단적 방위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 5조 스타일 ‘안전보장’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동상이몽(同床異夢)인지는, 2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말로 확연히 드러났다.

라브로프는 “러시아 연방의 참여 없이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은 유토피아이며, 아무런 길이 없다.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중국도 이 안전 보장 논의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는 사실 침공 첫 해인 2022년 3월 말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ㆍ우크라 평화협상에서 러시아가 내놓았던 평화안의 ‘재탕’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영구 중립국으로 만들고, 유엔 안보리 5개국이 안전을 보장하자고 했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 우크라이나는 거부했다.

이 안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재침공하는 러시아에 맞서 ‘집단 방위’ 조치를 결코 취할 수 없다. 한마디로, 침략국 러시아가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푸틴 “젤렌스키, 모스크바로 오라”에, 젤렌스키는 “노”

15,18일의 잇단 정상 회의에서 나온 주요 골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식 ‘안전 보장’과 영토 교환, 러시아ㆍ우크라이나 간 정상회담과 미국이 포함된 3국 정상 회의의 개최다.

18일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유럽 정치지도자 7명과 회담하는 도중에 푸틴과 40분 간 전화 통화를 했다. 푸틴은 당시 트럼프에게 “젤렌스키가 모스크바로 와서 정상 회담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트럼프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젤렌스키는 즉각 거절했다. 푸틴은 전시(戰時)에 젤렌스키가 적진의 수도로 오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 제안했을 수 있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는 분석했다.

사실 푸틴은 젤렌스키를 “서방의 꼭두각시”이자 전쟁 중이라고 대선을 미룬 “불법 대통령”으로 간주하며, 결코 자신의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 침략국과 피해국 간 정상회담은 영토 교환ㆍ안전 보장 조치와 같은 평화의 필수적 선행 조치들이 구체적으로 합의된 뒤에야 가능하다. 라프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푸틴ㆍ젤렌스키 회담은 “충분히 세심하게 준비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분쟁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서방의 안전보장 장치엔 중국도 끼어야” 주장

라브로프는 러시아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은 2022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논의했던 초안이며 “아주 좋은 예”라고 말했다.

이 초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다시 공격을 받으면, 나토 5조처럼 다른 나라들이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안전 보장은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국가 그룹이 제공한다. 결국 러시아뿐 아니라,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기는커녕 계속 음성적으로 지원한 중국이 우크라이나가 향후 서방의 군사 지원을 받는 것도 ‘거부’할 수 있는 구조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재침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당사국이자 애초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게 거부권을 주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는 가짜 보장”이라고 못박았다.

미 RAND 연구소의 러시아 분석가 사무엘 샤랍은 “러시아가 2022년 안을 다시 제시한다면, 이번 회담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러시아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친한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도 “러시아가 생각하는 안보 보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푸틴이 나토의 제5조 스타일 안전 보장을 수용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을까. AP 통신은 “트럼프가 러시아ㆍ중국의 거부권이 제외된 것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군 1만5000명의 우크라 배치 구상에도, 러시아는 반대

현재 영국과 프랑스는 이른바 유럽연합(EU) 국가들로 구성되는 ‘자원국 연합(the coalition of the willing)’을 주도해, 전선에서 떨어진 우크라이나 서부에 1만5000명 규모의 안보군(reassurance force)를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90만 명 규모로 재무장ㆍ강화된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자원국 연합’은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과 상당수 중복된다.

그러나 나토의 집단 방위 약속은 2차대전 이후 70년에 걸친 합동 훈련과 미군의 유럽 배치와 같은 미 군사력, 미국이 제공하는 정보 공유, 공동 계획을 통해 뒷받침됐다. 나토의 위력은 미국 중심으로 구축된 중앙집권적 군 지휘체계에 있다.

트럼프는 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군의 유럽 안보군 참여와 관련해 “내가 퇴임해도 미군은 우크라이나 국경 방어에 절대로 참여하지 않는다. 대통령인 내가 보장한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국 역할은 군사 정보 공유와 공군력 지원 정도다. 물론 이 정도도, 현재의 유럽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우크라이나는 영원히 러시아 ‘세력권’에 있어야

푸틴은 유럽 안보군의 우크라이나 주둔에도 극도로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평화’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병력은 2022년 전쟁 이전인 8만5000명을 넘지 말아야 하며, 장거리 미사일도 보유할 수 없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는 냉전 시절처럼 러시아의 ‘세력권’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틴이 트럼프에게 알래스카 회담에서 재차 강조했던 이번 전쟁의 “근본 원인(root causes) 제거”도 바로 이런 맥락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거나 밀착하고, 친(親)서방 정책을 취하고, 러시아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역사적ㆍ문화적 영향권 하에 있는 것으로 보는 푸틴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앞으로도 최대 18개월은 전쟁 수행 가능

푸틴은 전쟁을 끌수록,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러시아 경제가 둔화돼도 재정적으로 앞으로 12~18개월은 민간 수요를 희생하고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있다. 또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고 군사 물자를 지원하는 인도와 중국이 배신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전장 상황도 러시아에게 점진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된다. 결국 미국의 인색한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는 소모전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 사설에서 “푸틴의 정상 회담은 거대한 사기(a big con)였다. 15일 알래스카 회담 이후 크렘린이 변화를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냐이다. 트럼프가 훨씬 강경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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