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영화 '좀비딸'이 인기 있는 이유

2025. 8. 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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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비딸'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3주 만에 473만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이야기는 의미를 만들어 내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격을 이룰 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도 발달"시키는 까닭이다.

재난, 폭력, 파괴로 점철된 소식만 계속해서 접하면 무기력과 허무주의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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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비딸'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3주 만에 473만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이야기는 익숙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가 된 딸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내는 아버지 이야기다. 불확실성과 어려움이 가중되는 시대엔 이런 뜨거운 사랑과 눈물겨운 희생의 이야기가 큰 호응을 얻어왔다. 국가 부도가 난 1990년대 말엔 조창인의 '가시고기'가, 금융위기로 힘들었던 2008년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괴로울 때 힘내게 하는 이야기를 찾는 건 우리 본능 깊이 각인돼 있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지베르니 펴냄)에서 독일 작가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은 우리 삶이 우리가 읽고 보고 듣는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접하고 전하는 이야기가 우리가 돈을 어떻게 벌고 어디에 쓸지, 휴가를 어디로 갈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할지, 어떤 사람을 믿고 사랑할지 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의미를 만들어 내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격을 이룰 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도 발달"시키는 까닭이다.

절망의 이야기는 우리를 망가뜨린다. 재난, 폭력, 파괴로 점철된 소식만 계속해서 접하면 무기력과 허무주의에 빠진다. 심리학에선 이를 '외상 전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아직 겪지 않은 일을 염려하다가 마음이 병든다는 뜻이다. 암, 실업, 살인, 경제위기, 자연재해, 팬데믹, 테러, 전쟁 등으로 이뤄진 이야기에 중독되면, 자기 삶을 개선하려고 애써야 할 이유를 빼앗긴다. 조만간 병들어 죽거나, 세상이 망해버릴 텐데 왜 열심히 산단 말인가. 인간은 희망을 상상하고 떠올리는 만큼만 노력하는 법이다.

위기와 공포의 서사에 빠지면, 모든 게 종말의 신호로만 읽힌다. 망치가 세상 모든 걸 못으로 보듯 말이다. 이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과 같다. 좀비란 되돌릴 수 없는 종말, 회복할 수 없는 절망의 상징이다. 부름프자이벨에 따르면, 지나친 걱정과 염려는 우리를 망가뜨린다. 위기에 중독된 사람은 활기를 잃고 냉담해지며,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상황을 바꾸려는 의욕도 줄어든다.

따라서 나라가 위기라고, 세상이 망조라고 반복해 말하는 이들을 멀리하라. 앞이 안 보일 만큼 괴롭고, 불안이 목을 조여올수록 우리에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상실과 함께 회복을, 절망과 함께 희망을 전하는 이야기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좀비딸'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 어떤 순간에도 용기를 품고 사랑을 지속할 수 있음을 알려줌으로써 이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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