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미술래잡기] 정원, 치유와 지속가능성을 심는 공간
무성한 풀숲에 선 인물 그려
자연을 마주 보며 숨 고르고
새출발할 힘 얻는 순간 포착
정원은 멀리 있는 공간 아냐
작은 식물 하나 가꾸는 일도
변화 이끄는 시작될 수 있어

집에 작은 화단을 가꾸고 있지만 여전히 실패가 잦은 초보 정원사인 필자가 얼떨결에 '홋카이도 가든 가도(街道)' 여행을 다녀왔다. 주로 미술관만 다니던 사람이 그저 꽃과 나무가 가득한 자연을 실컷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찾아보니 최근에는 초록빛 공간에서 휴식하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산지 특산물을 소비하는 '그린 투어리즘'이 새로운 여행 형태로 떠오르고 있단다. '홋카이도 가든 가도' 역시 농촌 지역에 조성된 정원들을 하나의 여정으로 묶어, 설국으로만 알려진 홋카이도의 이미지를 확장하려는 관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이 부러웠다.
우리에게는 경치를 빌려 즐기는 '차경(借景)' 전통이 있었듯, 서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자연을 가까이 두고 누리려는 문화가 이어져왔고, 특히 근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정원 활동이 왕성해지며 예술가들을 포함한 많은 이의 일상 속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은 너무나 유명하고, 카유보트도 원예에 조예가 깊어 자신이 직접 기른 희귀한 식물을 모네에게 자랑하곤 하였다. 19세기 말 화가들은 영국에서 시작한 '야생 정원' 이론에 영향을 받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라는 꽃과 풀을 다듬으며 영감을 얻었다. 20세기의 클림트와 마티스도 정원을 직접 꾸렸고, 칸딘스키는 텃밭의 양상추와 딸기까지 세심하게 기록한 열성적인 농부였다.
여행을 다녀온 기념 사진을 보고 친구가 "그림같이 예쁘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르누아르의 '양산을 쓰고 정원에 있는 여인'이었다. 한창 인상주의 기법을 실험하던 시기, 르누아르가 거친 붓질로 들판의 꽃과 수풀을 표현하고, 그 안에 두 인물을 희미하게 배치한 예쁜 그림이다.
지평선이 드러나지 않아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꽃밭 속에서 여인은 강한 햇살을 피하려는 듯 레이스 양산을 쓰고 서 있다. 또 다른 인물은 허리를 굽혀 풀을 다듬는 정원사로 보이는데, 어쩌면 꽃을 꺾어 여인에게 건네려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얼핏 야생의 예쁜 황야처럼 보이는 이곳은 사실 르누아르가 몽마르트르에 새로 마련한 작업실 뒤뜰이었다. 그는 창밖으로 펼쳐진 무성한 풀숲에 매료돼 그곳을 작업실로 삼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이 작품을 보며,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격동의 시기에 저토록 한가로운 장면을 그렸다는 사실이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인상주의 기법을 이용하기 위해 억지로 그런 장면을 골라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의상은 달랐지만- 필자 역시 땡볕을 가리고자 양산을 쓰고 꽃밭을 오랜 시간 거닐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 속 여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조용히 세상과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어도, 19세기 말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변혁의 고통을 겪던 시기였을 터인데,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순간, 그것이 정원에 서는 행위의 의미였던 것이다.
정원은 단순히 꽃을 감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연과 자신을 마주하는 곳이다. 주로 도시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도심의 작은 정원은 그렇게 치유와 휴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해주게 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도심 속 작은 공원은 시민들에게 심리적 회복을 주는 동시에 탄소 저감과 환경 복원에 기여하는 실질적 역할도 한다. 아파트의 작은 화분이나 베란다의 초록 식물조차 미미하나마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를 줄여주며 에너지 절약에 기여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의 첫걸음으로 높이 평가해주면 좋겠다.
식물을 키우는 행위 자체가 개인에게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지속가능성을 키우는 투자가 될 수 있다. 이번 여행이 가르쳐준 또 다른 교훈은 정원이 꼭 멀리 있는 특별한 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꽃다발을 화병에 꽂고, 화분 하나를 키우는 우리의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부터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눠보고자 한다.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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