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사건의 거죽만 훑어서는 누구의 공감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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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철학적 사유가 가득한 작가로 이해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출간 이후 한국에서도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알랭 드 보통은 "지나치게 다이어트된 철학"이라는 평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다른 작가에게선 발견하기 힘든 고유한 감각이 분명히 감지된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글은, 분명히 독자인 내가 한때 느낀 감정이지만 표현해내지 못했던 바로 그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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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철학적 사유가 가득한 작가로 이해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출간 이후 한국에서도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알랭 드 보통은 "지나치게 다이어트된 철학"이라는 평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다른 작가에게선 발견하기 힘든 고유한 감각이 분명히 감지된다.
알랭 드 보통의 고유함이란 뭘까. 여러 해석과 주석이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묘사하는 능력이 아닐까. 동시대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엇비슷하지만, 그 감정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글은, 분명히 독자인 내가 한때 느낀 감정이지만 표현해내지 못했던 바로 그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책 '슬픔이 주는 기쁨'에 실린 한 에세이에는 묘사가 주는 공감에 대한 통찰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담겨 있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것'이라고 느끼며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글쓰기란 대개 '사실의 나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작문에 미숙한 초등학생의 글을 상상해보자. 아이의 글은 이런 식이다. 오늘 내가 어디에 갔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떻게 놀았고, 무엇을 먹었는지에 관한 사실의 나열. 사실과 사실과 사실이 시간순으로 열거되다가 비로소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오늘 참 재밌었다' '즐거운 하루였다' '또 (그것을) 하고 싶다'란 문장으로 끝난다.
하지만 삶을 붙잡는 글쓰기의 힘은 '사실의 나열'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공감은 깊은 감정을 언어로 붙잡는 새롭고 날 선 묘사로부터 온다.
알랭 드 보통을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의 경우 글로 쓴 이야기는 사건의 거죽만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묘사하지 못한 것, 덧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 사라져버린 것이 하루의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보는 것을 나열한 자료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도대체 책을 왜 읽을까. 타인의 삶을 '목격'하기 위해 책을 펼치는 경우는 적다. 타인의 삶이 담긴 책을 펼치면서, 우리는 책을 거울 삼아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알려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짝사랑을 이해하고,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으며 인간의 유한성과 예술의 영원성을 해독하려는 것처럼.
독서는 우리의 세계와, 그 세계에 속한 '나'를 확인하려는 근원적 욕망에서 출발한다. 한 사람의 책장은 그런 점에서 불투명한 거울들의 합이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 그러나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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