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보다 무서운 건 외로움…17살 학도병이 의지한 마지막 병원 [따만사]
병원에서 전쟁 영웅들의 손을 맞잡은 순간

1950년 6월 25일 새벽, 17살 김영태는 학교 갈 준비를 하다 사이렌 소리에 놀랐다. 라디오에서는 북한군 남침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해 8월, 김영태 씨(92)는 작은 몸으로 군의학교에 입대해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됐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눈앞에서 전우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서야 ‘작은 총알에도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92세가 된 그는 여전히 눈빛이 단단하다. 그러나 또 다른 싸움은 ‘외로움’이었다. 폭우로 지붕이 무너져 집 안에 비가 들이쳤고, 낡은 에어컨은 고장이 잦아 켤 수도 없었다. 지원금은 명예수당 45만 원과 기초연금 30만 원이 전부였다.

곁에 남은 건 늙은 강아지 한 마리뿐. 외로움은 또 다른 짐이었다. “얘네들은 몸에서 냄새가 나. 따뜻한 냄새.” 그의 농담에 NGO 굿피플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굿피플은 유공자들에게 여름 물품이 담긴 무궁화 선물함을 전달하며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부산 사상구 보훈단체 정한용 회장은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린 시절을 ‘고아 아닌 고아’로 보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혼자 견뎌낸 그는 이제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 한 번 마음껏 틀 수 없는 국가유공자들과 전쟁 후유증으로 거동이 힘든 이들을 매일 지켜본다.

참전용사들의 버팀목은 부산 보훈병원이었다. 아버지가 참전용사였던 이정주 원장은 매일 아침 의료진에 메시지를 보낸다. “유공자를 내 몸같이.” 404번째 메시지도 같았다.
2년째 이어온 ‘보훈 의학 열린 마당’에서 그는 하루 100~200명의 환자와 보호자를 직접 만나 건강 교육과 상담을 챙긴다. 어느 날 강연을 마치고 돌아설 때 한 환자의 보호자가 눈물로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원장 선생님… 우리 아저씨가 고엽제 후유증 때문에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치매까지 있는데 신경과 접수가 안 됩니더…”

이 원장은 아직도 그 보호자의 얼굴이 선하다고 했다.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꼭 붙잡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이 원장은 즉시 접수를 진행하며 말했다.
“멀리서 오신 분들이 오늘 진료 못 받고 돌아가면 그 황망함을 생각해보셨습니까? 우리는 당일 접수와 마감 없이 모두 진료합시다.”

40년 넘게 이어진 병원 오픈 시간도 40분 앞당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루에 의사 1인 당 100~200명의 환자를 진료해도, 다음 날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계속 쌓였다.
밤 12시까지 진료를 해도, 다음 날을 위해 다시 준비해야 했다. 전쟁 후유증으로 대부분이 이명이 있고, 나이대가 높은 복합 질환 환자가 많아, 한 명의 수술이 곧 전쟁이었다.
전문의 67명과 전공의 5명뿐이지만, 의료 대란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환자를 지켰다. 하루 24시간 진료 체계를 유지하며 수술, 외래, 응급실 당직까지 빈틈없이 이어졌다.

지난해에만 외래 환자 48만 4758명, 입원 환자 14만 9329명이 병원을 찾았다. 67명 의사들이 1인당 평균 마주하는 환자의 수는 대학병원 의사의 10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의료진은 흔들리지 않는다.
“월급은 적지만, 사명감으로 수술도 하고 외래 진료도 하고 응급실 당직도 합니다. 그런 점이 참 고맙습니다.”
이러한 의료진의 노력 덕에 부산 보훈병원은 전국 6개 공공기관 병원 중 고객만족도 1위를 기록했다.

병원 복도에는 베트남 파병 장병들의 사진전이 열려 있다. 십자성부대, 백마부대, 맹호부대 깃발 앞에서 환자들은 묵념하며 옛 전우를 떠올린다.
김은정 공공의료복지실장은 20년 넘게 이곳에서 참전 유공자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중년에서 노년, 다시 초고령으로 변해가는 그들과 함께했다.
“이제는 혼자 계시거나,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병원에 와서 얼굴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병원에 약을 받으러 오는 일은 단순한 진료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 무슨 일 있었나요?”, “식사는 잘 챙기셨어요?” 같은 짧은 안부가 오가며, 옛 전우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환자들은 약을 타러 왔다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처음엔 거칠고 까칠했던 환자들도 시간이 지나며 달라진다. 김 실장은 “진심이 통하면 결국 마음이 열린다”며 “자연스럽게 환자들을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를 때, 환자들 역시 마음을 놓는다”고 말했다. 손을 꼭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가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보훈병원은 코로나 시절 시작한 비대면 진료를 이어가며, 병원 방문이 어렵거나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자를 돌보고 있다. 또 경찰·소방관 등 제복 근무자에게는 의료진이 직접 현장을 찾아가 상담하며 건강을 살피고 있다.

“그분들이 나라를 믿고 몸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입니다.”
이 병원은 단순한 의료시설이 아니다. 참전 유공자와 국가사회 기여자들이 잠시 기대고 쉴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의료진과 환자들은 오늘도 서로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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