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경영 <7> ‘일본 침몰’에서 배우는 경영 전략] 침몰하는 일본 열도를 구한 생존 전략 ‘시나리오 플래닝’

신재훈 리버스톤 자산운용 사장 2025. 8. 2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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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침몰’ 포스터. /KOBIS

기후 위기, 공급망 충격, 지정학적 불안 그리고 기술의 대전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지금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불확실성이 가속화되는 현실 속에서, 기업과 사회는 과연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1973년 고마츠 사쿄의 소설을 바탕으로, 2006년에 히구치 신지 감독이 각색한 영화 ‘일본 침몰’ 은 이 질문에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영화는 일본 열도가 통째로 바다에 잠긴다는 극단적 설정 아래, 위기 발생부터 대응과 복구에 이르는 전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재난 관리, 시나리오 플래닝, 위기 리더십의 관점에서 전략 방향을 생각해 보자.

신재훈 리버스톤 자산운용 사장 -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비욘드 스트래티지’ ‘야구 보는 CEO’ 저자

338일 후, 일본이 가라앉는다

영화는 갑작스러운 지진과 해저 화산의 분화로 시즈오카현이 초토화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잠수정 조종사 오노데라 토시오와 재난 구조대원 아베 레이코는 붕괴된 마을에서 어린 미사키를 구조하며 가까워진다. 이후 일본 전역에서 지진, 화산 폭발, 액상화현상이 잇따라 발생하고, 과학자 타도코로 유스케는 일본 열도가 약 338일 안에 침몰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는다. 그러나 정부는 이 경고를 외면한다. 전략의 첫 관문인 예방·완화 단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못한 셈이다.

정부의 무대응 속에 전국 각지의 화산이 폭발하고, 도쿄만의 해저에서는 거대한 연기가 솟구친다. 불길과 화산재가 도시에 쏟아지면서 도쿄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하고, 병원과 교통망은 마비된다. 오노데라와 아베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대피시키지만, 국가적 재난 앞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하기만 하다. 중국을 방문하던 전세기가 화산재에 휩쓸려 폭발하면서 총리가 사망하고, 직권을 이어받은 총리 대행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며 대응을 늦춘다. 이때 위기관리 담당 장관에 임명된 타카모리 사오리가 과학자, 자위대, 해운 업계를 하나로 아우르며 ‘N2 작전’ 을 추진한다. 드릴선으로 해저에 구멍을 뚫고, 그곳에 핵폭탄급 폭발물을 투하해서 해저의 판 구조를 바꾸는 작전이다. 타카모리는 명확한 목표와 시한을 제시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실행으로 이끌며 위기 리더십의 핵심을 보여준다.

지진으로 무너지는 도쿄, 바다에 잠긴 일본 열도. /넷플릭스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전략은 무력하다

일본 정부의 가장 큰 실패는 위기를 미리 상상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타도코로는 해저의 온도 상승과 지각 활동의 패턴 데이터를 분석해 일본 침몰 가능성을 경고하지만, 정부는 발생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예산과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많은 기업이 단기 성과의 압박 속에서 ‘고위험-저확률’ 사건에 대해 얼마나 무방비한지를 일깨워준다. 예컨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2021년 반도체 공급망 붕괴,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은 모두 기존 전략이 전제하던 조건이 무너졌을 때 조직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이는 하나의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준비하는 전략 기법이다. 일본 정부는 시나리오 플래닝이 없었기에 수많은 인명과 자원을 잃는다.

반면, 타카모리와 타도코로 팀은 N2 작전을 준비하며 여러 실패 가능성과 대안을 시뮬레이션하고, 실행 가능한 경로를 선택해 나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 기업도 변동성이 큰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대응 전략을 마련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재난 이후의 전략과 감정의 재구성

재난이 닥친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난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다. 영화는 오노데라의 희생으로 N2 작전이 성공하고, 일본 침몰이 멈추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오노데라를 잃은 아베, 무너진 도시를 재건해야 하는 국민,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포용하는 리더 타카모리는 위기 이후의 정서적 회복이 전략의 중요한 일부임을 보여준다.

재난 이후 조직이 해야 할 일은 피해 복구만이 아니다. 구성원의 심리적 충격을 보듬고,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타카모리가 일본 침몰이 멈췄음을 선언하며,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애도와 감사를 전하는 장면은 감정을 돌보는 리더십이 위기 이후 전략의 본질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위기 이후의 전략은 단지 수치와 성과로만 평가될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회복을 함께 설계해 나가는 여정이어야 한다.

클라임웍스와 시스코의 시나리오 플래닝

스위스의 기후 기술 스타트업 클라임웍스(Climeworks)는 DAC(Direct Air Capture) 기술을 바탕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기후 위기를 ‘피할 수 없는 미래’가 아닌 ‘이미 도래한 현재’로 인식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클라임웍스는 다양한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기술의 적용 범위와 수익 모델, 정부 규제 변화에 따른 대응 전략을 포함한 시나리오 플래닝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극단적 미래를 외면하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으로 연결하여 사업화와 제도화에 성공한 사례다.

시스코(Cisco)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사무실 없는 시대를 상정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웹엑스(Webex)를 비롯한 원격 협업 도구를 구축해 왔다. 이를 통해 화상회의, 문서 공유, 실시간 협업, 디지털 보안 등 팬데믹 이후 급증할 수요에 대비한 기술 생태계를 미리 설계했다. 타카모리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과학자, 군, 민간을 연결해 N2 작전을 실행한 것처럼, 시스코는 기술, 인프라, 내부 조직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특히 팬데믹 이후에는 직원의 피로와 불안 해소를 위해 심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실행했다.

이는 아베가 오노데라의 희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그리고 작전 성공 후 일본의 생존을 알리는 타카모리의 발표 장면과 연결된다. 거창한 제스처 없이도 그들의 태도는 구성원의 불안을 어루만지는 메시지가 된다. 결국 전략이란 수치와 계획을 넘어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설계를 포함해야 함을 이 사례는 보여준다.

재난은 사건이 아니라 환경이다

오늘날 재난은 단발적 사건이기보다 지속하는 현실에 가깝다. 따라서 기업 전략도 단순한 회피 수준을 넘어, 재난을 전제로 회복 탄력성과 민첩한 대응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전략이란 익숙한 전제를 의심하고, 상상의 경계를 넘어 가능성을 설계하며, 불가능해 보이는 실행을 조직하는 일이다. 하지만 전략이 진정한 힘을 가지려면, 오노데라처럼 목숨을 건 결단이 필요하고, 타카모리처럼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조직의 미래를 이끄는 정치력 또한 요구된다. 그러기에 위기를 견디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전략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고통의 현장에서 실현되는 ‘의지의 서사’다.

전략가는 단지 이론을 세우는 자가 아니라, 절망의 파도 속에서 방향을 잡고 배를 이끄는 조타수다. ‘일본 침몰’은 바로 이 전략의 조건과 윤리를 하나의 재난 서사로 응축해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아베가 미사키를 포함한 생존자를 구출하고 함께 햇빛을 바라보는 장면은 말한다. 전략은 문서 위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다시 시작된다고.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만들어가는 ‘다음 날의 이야기’, 그것이 곧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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