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97>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2악장] 걸음의 템포, 마음의 리듬… 인생은 ‘안단테’로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2025. 8. 2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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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태생의 독일 화가 에드워드 시어도어 컴튼이 그린 ‘마리아 플라인에서 본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로, 필자는 ‘안단테’와 가장 통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퍼블릭도메인

장소는 필자가 일하는 음악대학 연구실 안. 연구실 중앙에는 그랜드 피아노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 대는 필자가 앉아 있고, 다른 한 대는 제자가 앉아 피아노를 치고 있다. 필자는 음악을 들으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악보에 코멘트를 적고, 중간중간 연주를멈추어 가며 설명도 하고 시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음악대학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수업 장면이다.

지금 수업을 받는 제자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을 가지고 들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 몇 마디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옆에 너무 깐깐한 지도교수가 있기 때문일까. 20분이 넘도록 겨우 몇 마디, 몇 음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뿐이다.

“그건 너무 느린 것 같네.” “아니야, 그건 너무 빠르지.” “조금 급한 것 같지 않니?” “그건 너무 쳐지는 것 같아.”

이렇게 반복되는 필자의 지적에 학생도 아마 속으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일 것이다. 작곡가가 악보에 담아놓은 그 감정, 그 메시지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템포를 찾는 게 매우 중요하다. 템포가 얼마나 적정하냐에 따라 악보에 담긴 수천, 수만 개의 음표가 제자리를 찾아 자신의 생명을 유기적으로 엮어낼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전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이런저런 시도가 잘 먹히지 않아 설명을 바꿔 보았다.

“칠흑 같은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 구름이 걷히고 날씨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화한 날을 떠올려봐. 그날 공원에 산책하러 나간 거야. 눈앞에는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그 강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어. 새 떼도 물 위에 살며시 떠다니고 있고. 그 풍경을 조용히 마음으로 즐기며 걷는다고 상상해 보고 그 걸음걸이 속도에 맞추어 쳐보겠니?”

학생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손을 건반에 올려 연주를 이어갔다. 처지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고, 적정한 템포가 만들어 내는 온화한 분위기, 거기서 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찾아가는 각 음표.

“그래, 이거야. 이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표현하려던 안단테(andante)란다.” 필자도 매우 기쁜 나머지 소리치듯 말했다.

방금 제자가 연주한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2악장 안단테’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비롯해 각종 영화와 드라마, 광고에 수없이 등장하며 클래식 음악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도입부만 들으면금세 알아차릴 정도로 대중적인 곡이다. 모차르트는 이 곡 2악장 악보 도입부에 안단테라고 적어 놓았다.

안단테를 이탈리아·한국어 사전에서 찾으면 ‘적당히 느린 속도’ ‘알레그로와 아다지오의 중간 속도’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적당히 느리다’에서 얼마만큼이 적당하다는 말일까? 그리고 사전에서 ‘알레그로(빠르게)’와 ‘아다지오(천천히)’의 사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리는 게 가장 어려운 템포를 뜻하는 말인 것 같다. 실제로 필자도 학창 시절에 안단테라고 적힌 곡을 가지고 수업을 들어갈 때면 언제나 조금만 느려도 너무 느리고, 조금만 급해도 너무 빠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안단테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동사 ‘안다레(andare·걷다)’에서 왔다. 문자 그대로는 ‘걸어가고 있는’이라는 뜻이다. 17세기 중반 이후 바로크음악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단순한 속도 지시를 넘어 음악의 정서적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걸어야 안단테가 요구하는 적당한 속도의 걸음걸이냐는 점이다.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사람의 한 걸음은 어린아이의 두세 걸음일 수 있다. 심리 상태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본인이 아무리 평범한 속도로 걷는다고 믿어도,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정신없는 환경에선 자연스럽게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2023년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운동학 연구팀은 감정 상태가 보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슬프거나 우울할 때 사람의 걸음 속도가 느려지고 보폭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쁘거나 흥분한 상태에선 걸음이 빨라지고 보폭이 넓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 근거는 많다. 터키 가지대 건축학과 연구진은 2024년 ‘지속 가능하고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한 보행 속도 분석(Decoding Walking Speed for Sustainable and Livable Cities)’이라는 논문에서 나이와 신체 능력, 날씨, 보행 환경, 심리적 동기, 스트레스, 문화 같은 다양한 요소에 따라 걸음 속도가 복합적으로 조율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사이에 북미 주요 도시에 사는 시민의 보행 속도가 평균 15%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바쁜 삶을 사는 필자도 분명히 평범하게 걷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어느 순간 숨이 차오르는 걸 보면 마음이 어딘가에 메여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최근 독일에 들렀을 때 오랜만에 만난 독일 친구와 함께 산책하며 분명 평범한 속도로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걷느냐, 급한 일 있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국 평범한 속도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심리 상태가 만든 상대적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평범한 속도로 걷는다고 믿는 동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2악장,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폴로네즈(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rillante)’, 멘델스존의 ‘안단테와 론도 카프리치오소(An-dante and Rondo Capriccioso)’에 등장하는 안단테와 같은 곡이 담고 있는 온화함, 평온함이 마음에 자리하느냐는 것이다.

적당한 템포 안에 작곡가가 그려 넣은 음표가 자기 자리를 온전히 찾아가듯, 우리 마음의 템포도 적당히 흐를 때 삶의 많은 부분이 우리가 굳이 애쓰고 마음 졸이지 않아도자신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은 삶의 거울이자, 삶은 예술이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2악장 안단테의 여러 음원을 들어보면, 신기하게도 미세한 템포 차이는 있어도 모두 듣는 사람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강요되거나 과장된 평온함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평온함이다. 이는 화음과 멜로디, 리듬, 투명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만들어 낸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비슷한 정서가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 1750)의 차남이자 음악사에서 중요한 음악가로 손꼽히는 C.P.E. 바흐는 각 악곡의 적당한 빠르기를 곡 속 가장 빠른 음형과 진행을 통해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악곡에서 가장 빠른 부분이 흔들림 없이 온화하게 들릴 수 있는 템포를 기본 템포로 설정해야 안단테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안단테는 단순한 음악 용어를 넘어, 삶의 리듬을 돌아보게 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사회가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내가 사는 환경과 패턴을 의식적으로 성찰하면 걸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음악 속 안단테를 들으며 급한 발걸음을 잠시 늦출 수도 있고, 반대로 지쳐서 늘어진 걸음을 조금 더 활기차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C.P.E. 바흐가 음악으로 예를 든 문구를 우리 삶에 역으로 적용해 보면, 더 빠르고 더 급하게가 아닌, 아무리 급한 순간에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대할 수 있을 때 인생은 온화한 안단테로 흐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2악장에서 느껴지는 그 안단테의 걸음과 분위기가 도시 곳곳에서, 우리 삶에서 더 자주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걸음을 함께 걷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도, 우리가 사는 공간도 그 템포를 닮아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조화롭게 흐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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