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예능 좀 만들어주세요"…왜 일본은 한국에 손을 내미나? [IZE 진단]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장면1. 일본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이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역사상 일본 내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지난해 tvN에서 방송된 배우 나인우·박민영 주연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 아니다. 일본 배우들이 출연하고, 일본에서 방송됐지만 제작 주체는 한국의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이다.
장면2. '현역가왕 JAPAN(재팬)'이 지난 7월 BS 닛테레와 일본 최대 방송콘텐츠 디지털 플랫폼 TVer을 통해 일본 내 모든 지상파 방송에 서비스됐다. 일본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일본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그 제작 주체는 한국의 '불타는 트롯맨', '한일가왕전', '현역가왕 1, 2' 등을 배출한 서혜진 PD가 이끄는 크레아 스튜디오였다.
이처럼 한국 제작진이 일본 주요 방송사와 OTT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현지 작품을 제작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한국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일본이나 다른 나라 제작진이 만드는 경우가 있을까? 없다. 그래서 위의 두 사례는 꽤 상징적이다. 한국의 유명 배우나 가수 뿐만 아니라 이제는 크리에이터들이 수출되는 세상이 열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국내에서 성공한 드라마의 리메이크 판권을 수출하는 데 그쳤다. 이후 대본 작업부터 캐스팅, 촬영, 편성 등 모든 과정은 판권을 수입한 이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제작 과정에는 한국 제작사와 크리에이터가 깊게 관여했다. 일본에 정서에 맞도록 각본은 '1리터의 눈물'로 유명한 오시마 사토미 작가가 썼지만, 연출은 '더 글로리'·'비밀의 숲'으로 잘 알려진 안길호 감독이 맡았다. 한국판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성공을 이끈 스튜디오드래곤 손자영 PD와 CJ ENM 글로벌콘텐츠제작팀 이상화 PD도 책임 프로듀서(CP)도 힘을 보탰다.

콘텐트 제작사 SLL이 일본 방송사 TV아사히와 공동 기획·제작한 드라마 '마물'이 또 다른 사례다. 여성 변호사와 살인 사건 용의자인 유부남의 사랑을 그린 스릴러인 '마물'은 일본 배우 아소 쿠미코와 시오노 아키히사가 출연한 일본 드라마다. 하지만 '옥씨부인전'을 성공시킨 한국의 진혁 PD가 제작에 참여했다. 이 외에도 '괜찮아, 사랑이야', '우리들의 블루스' 등으로 유명한 김규태 PD가 이끄는 한국 제작사 지티스트는 일본 드라마 '소울 메이트'를 제작했다. 서울과 도쿄, 베를린 등이 배경이며 가수 겸 배우 옥택연이 주연을 맡았다. 한국 배우와 제작사가 참여했지만 '소울 메이트'는 엄연히 일본 드라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들은 전 세계 제작 환경을 바꿔 놓았다. '오징어 게임'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 감독·배우들이 만든 K-콘텐츠로 분류되지만, 이 작품의 국적은 냉정히 말해 미국이다. 넷플릭스가 자본을 대고, 모든 지식재산권(IP)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미국 로컬 시상식인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다. 즉, 콘텐츠의 제작 주체 및 판권을 둘러싼 물리적 국경과 정서적 장벽을 모두 허문 셈이다.
예능은 또 다른 영역이다. 드라마의 경우 정해진 대본대로 연기하고 연출한다. 하지만 예능의 경우 즉흥적으로 대화를 주고 받고, 돌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언어의 소통 및 정서적 교감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를 보고 평가를 주고 받고, 생방송 무대도 펼치는 '현역가왕 재팬'을 한국 제작사인 크레아 스튜디오가 만든 것은 더욱 이례적 사례로 손꼽힌다.
이런 합작은 한일 방송사와 제작사가 다수의 관련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쌓은 신뢰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트롯걸즈재팬' 준우승자인 우타고코로 리에가 MBN '한일가왕전', 일본 후지TV '일한가왕전' 등에 출연해 인기를 끌며 일본 내에서도 한국의 트로트에 대한 관심이 상승했다.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K-팝의 인기가 높은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도 상승했고,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던 BS넷테레가 다수 오디션을 성공시키고 한일 교류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크레아 스튜디오에 손을 내밀었다는 후문이다.

'현역가왕 재팬'의 경우 출연자만 일본인일 뿐, 한국 제작사가 기획·대본·연출을 모두 맡는다. 반면 방송 송출과 일본 내 콘서트 등의 부가 사업은 현지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진행한다. '콘텐츠 제작'은 한국, '사업'은 일본이 나눠 맡은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 방송사와 제작사는 왜 한국 크리에이터에 손을 내밀까? 이는 제작비와도 연관이 있다. '일본에서 제작하면 무조건 싸다'는 판단은 섣부르다. 몇몇 스타들의 출연료는 일본이 더 낮지만, 일본의 전반적인 인건비와 장비 및 시스템 이용료는 한국 못지않게 높다. 관건은 '완성도'다. 같은 제작비를 쓰더라도, 한국 크리에이터들이 더 양질의 결과물은 낸다는 뜻이다. 기술과 감각, 숙련도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 통하는 콘텐츠를 제작해본 한국 크리에이터의 경험은 돈주고도 살 수 없다.
이런 흐름 속에도 향후 한국 크리에이터의 해외 진출, 한일 양국 간의 협업 사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콘텐츠 제작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 속에서 유명 크리에이터와 제작사들은 일찌감치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외국 시장도 기꺼이 한국 크리에이터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있다.
아직 한국은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플랫폼을 채울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역량을 가진 크리에이터는 풍부하다. 그들은 향후 더욱 많은 러브콜을 받게 될 전망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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