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 사회, 천천히 같이 위(we)를 [.txt]

한겨레 2025. 8. 2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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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는 그저 차에 타고 있었을 뿐이다.

가족 여행 중에 난 사고로 자동차는 바퀴를 잃고 수지는 다리를 잃었다.

모두가 위를 보자, 수지도 웃는 얼굴로 위를 본다.

수지는 내려다보기만 하던 거리에서 누군가와 함께 위를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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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책을 만날 때
위를 봐요! l 정진호 글·그림, 현암사(2014)

수지는 그저 차에 타고 있었을 뿐이다. 가족 여행 중에 난 사고로 자동차는 바퀴를 잃고 수지는 다리를 잃었다. 그림책은 창밖을 내려다보는 아이를 살짝 위에서 바라보는 구도다. 원고지처럼 보이는 보도블록 깔린 길 위에 까만 머리만 보이는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위에서 보니 계란 프라이를 닮았다. 아이들과 강아지가 노는 모습도 보이고 비가 오면 우산의 행렬도 생기지만 수지는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속도감의 표현인지 눈물이 맺혀 번져 보이는 건지, 사람들 머리가 하나둘 번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커먼 냇물처럼 변한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그때 기적처럼 한 아이가 위를 본다. 사정을 들은 아이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눕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동참한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사물도 눕는다. 삐죽 튀어나온 대파가 보이도록 장바구니를 뉘어 둔 여성이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도 수지가 자전거를 잘 볼 수 있게 눕혀 준다. 산책하던 강아지도 배를 드러내고 눕는다. 한 커플이 누운 채 양팔로 커다랗게 하트를 만든다.

모두가 위를 보자, 수지도 웃는 얼굴로 위를 본다. 추락과 하강이 아닌 상승과 도약의 방향, 턱을 치켜들었을 그 작은 움직임이 뭉클하다. 바닥에서 시선을 든 아이는 파란 하늘과 환한 빛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자 검기만 하던 책의 마지막 장에 비로소 색깔이 피어난다. 수지가 있던 창가에는 새싹이 돋은 화분이 놓였고, 꽃이 활짝 핀 가로수 아래 수지의 휠체어가 보인다. 수지는 내려다보기만 하던 거리에서 누군가와 함께 위를 보며 웃고 있다.

어린 시절을 종일 병원에서 보냈다는 정진호 작가의 이 책은 약 10년 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과 더불어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 장애 아동을 위한 좋은 책으로 선정되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라고 조상님들이 알려주신 기간이지만 그동안 장애인 처우는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수지는 ‘궁금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이 궁금하지 않을 리 없다.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가 롤모델인 내향인들도 평생 집에만 있으라고 하면 싫어한다. 모든 인간은 이동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런데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지하철에서 10분 발이 묶인 사람들이 10년 이상을 갇혀 산 사람들을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새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행사에는 장애인을 초청해 놓고 정작 휠체어석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휠체어를 탔던 지체장애인 김순석은 서울시장에게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1984년 34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이에게는 작은 턱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 세상으로 넘어오지 말라고 그어 놓은 결계다. 나는 유아차를 밀고 다니던 시절에 턱턱 막히는 그놈의 턱을 증오하다가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턱 놓았다. 내가 어떤 이유로 나중에 휠체어를 타야 한다면 그놈의 턱보다 내 몸 편하다고 마음을 턱 놓은 내가 더 미울 것 같다. 과속하는 사회는 기억을 빨리 흩뜨리고, 모두를 조급하고 병들게 한다. 천천히 같이 가면서 위(we)를 돌아보고, 함께 위(up)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위로하기 위해 위를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가까이서 보고 함께 위를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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