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과 ‘차이나 드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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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재중동포) 대다수는 재외동포라는 민족적 동질성보다 한국에 돈 벌러 온 이주노동자라는 인식이 짙다.
그렇게 한국으로 온 조선족은 환대와 냉대를 동시에 경험하며 한국 사회 최대의 이주노동자 집단을 형성했다.
대다수 조선족에게 한국은 노동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공간, 옌볜은 휴식과 소비와 재충전의 공간이다.
그러나 조선족 신흥 부유층의 시각에서는 이제 한국이 소비와 휴식의 장소, 옌볜은 노동과 수익 창출의 공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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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재중동포) 대다수는 재외동포라는 민족적 동질성보다 한국에 돈 벌러 온 이주노동자라는 인식이 짙다. 그들은 값싸고 유용한 노동력인 동시에 한국인들과 경쟁하는 존재로 차별과 소외를 겪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그러나 조선족을 포함한 한인 디아스포라는 우리 근대사의 안타깝고 슬픈 산물이다. 그들은 한국인과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만연한 차별과 멸시의 눈길이 당혹스럽다. 특히 미등록 이주자의 체포와 추방 같은 가혹한 정책을 보며 자신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는 굴욕감을 느낀다.
‘이주, 경계, 꿈’은 인류학자인 권준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새크라멘토 캠퍼스 교수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간 중국 옌볜을 오가며 진행한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후 7년간의 보완 연구와 집필 기간을 거쳐 2023년 미국에서 영어로 쓴 초판이, 다시 2년 뒤에야 한국어판이 나왔다. 연구를 시작한 지 대략 20년 만이다. 이 책은 2024년 미국동아시아인류학회(SEAA)에서 프랜시스 엘(L). 케이(K). 쉬 저술상 수상으로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 사이 한국은 물론 중국도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 시차를 넘어 “가깝고도 먼 조선족 이야기를 2025년 시점에서 다시 읽고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과거를 재현하고 분석하는 학술적 작업일 뿐 아니라 그때의 목소리를 지금 어떻게 다시 들을 수 있을지를 끈질기게 묻는 윤리적 청취의 작업이자 지금 여기에서 다시 말을 거는 에스노그라피(민족지학)의 현재형 실천”(한국어판 서문)이다.

1990년대 초 옌볜에 ‘코리안 드림’이라는 집단적 열망이 불어닥쳤다. 중국 조선족 200만명 중 72만명이 일자리와 부를 찾아 한국으로 이주했다. 옌볜이라는 소수민족 변경 지역은 편안하게 머물고 싶으면서도 떠나고 싶은 복합적 욕망의 공간이 됐다. 그렇게 한국으로 온 조선족은 환대와 냉대를 동시에 경험하며 한국 사회 최대의 이주노동자 집단을 형성했다. 옌볜의 조선족 공동체는 갈수록 ‘송금 경제’에 의존하게 됐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드리웠다.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는 큰 변곡점이 됐다. 한국 원화의 폭락과 경제 불황으로 이주노동자 송금액도 반토막이 난 반면, 중국 경제는 국가 차원의 부양책과 환율 방어에 힘입어 호황기를 맞았다.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한국 이주노동)이 한풀 꺾인 자리에 ‘차이나 드림’(중국에서 창업)이 피어났다. 조선족 부자 상인들은 서울의 고급 백화점 모피 코트 매장에서만 수천만원을 쓸 만큼 ‘큰 손’으로 통했다. 이는 한국-옌볜 관계의 공간적 의미가 역전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다수 조선족에게 한국은 노동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공간, 옌볜은 휴식과 소비와 재충전의 공간이다. 그러나 조선족 신흥 부유층의 시각에서는 이제 한국이 소비와 휴식의 장소, 옌볜은 노동과 수익 창출의 공간이 된 것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교차점이자 두 개의 꿈이 경합하는 변경 지역인 옌볜을 지난 30년간 지배해온 욕망, 즉 ‘머무르기 위한 떠남’과 ‘떠나기 위한 머묾’이 이제는 재검토, 재평가돼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꿈은 늘 현실보다 훨씬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법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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