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88. 나는 춘천의 백석을 만났다

이채윤 2025. 8. 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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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져가는 투명한 색채 춘천의 언어로 물들다
-송병숙 시인
화가 꿈꾸던 방동리 출생 송병숙
국문학과 졸업 후 교직의 길로
시인 이성선 선생 권유 시 관심
출산 후 자연스레 시와 멀어져
오랜 교사생활 교장으로 마무리
마음속에 여며둔 시심 떠올라
2017년 첫 시집 ‘문턱’ 출간
춘천문학상 수상 등 문단 주목
서면문인회 결성 시인 활동 활발

#발견

2024년 8월, 나는 이무상 시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가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넸다. 서면문학 창간호였다. 춘천 서면 출신 문인들이 모여 2023년 10월 3일 서면문인회를 결성했다. 이무상 시인은 서면문인회 회장 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집으로 와 서면문학 페이지를 대충 넘겼다. 신작도 있지만 발표된 작품을 재수록한 것도 있다고 이무상 시인이 귀띔했다.

페이지를 대충 넘기던 나는 갑자기 손길을 멈췄다. 송병숙 시인의 ‘쇠똥구리’와 ‘벼꽃’.

▲ 2024년 춘천문학상 수상 당시의 송병숙 시인

#쇠똥구리, 벼꽃이 던진 파문

시를 읽다 보면 시가 눈에 확 들어오는 시가 있고, 읽어나가면서 그냥 저절로 그 깊이에 빠져드는 시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시가 내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눈에 확 띄었을 뿐만 아니라 그냥 그 울림 때문일까, 왠지 콧등이 그만 시큰해지고 말았다.

“아 아버지, 어머니”라고 나는 탄식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그 이전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를 나는 내면의 동굴을 울리듯 먼 옛날처럼 외쳐 불렀던 거였다. 쇠똥구리는 백석의 시처럼 너무 아득했고 내겐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문득 나였고 내 이웃의 삶이었다.

내가 아버지였고, 당신이 어머니였다. 나는 몇 번이고 이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이젠 쇠똥구리를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미 멸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 어릴 적 그토록 흔하던 우리의 쇠똥구리, 우리의 아버지들이.

또한 그 많은 꽃 중에 벼꽃이라니, 그런데 나는 언제 벼꽃을 눈여겨본 적이 있었던가.

8월 중순부터 피는 벼꽃, 벼 이삭에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그 아리아리한 꽃. 꽃이라기엔 무슨 해충처럼 이삭에 다닥다닥 붙은 그 하얀 것들을 나는 무심코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그 벼꽃이 자마구(꽃가루)이고 밥이고 어머니라는 것을 나는 송병숙의 시를 대하고선 알게 됐다. 그래서 벼꽃이 피는 것을 개화라 하지 않고 이삭이 패는 시기인 출수(出穗)라 하지 않던가.

‘풍우가 대작하여, 벼꽃을 떨어 놓고 씻어 내리면, 벼 이삭은 모두 쭉정이가 되어서, 농사는 그만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라고 국어학자 이희승은 ‘먹추의 말참견’에다 적어 놓았다.

그렇다. 송병숙의 이 시들이 나를 친 것은 내면의 처연함을 지닌 아름다움, 그 거룩함에 있었다.

“해가 저물도록 두엄을 져 나르고 농협 대출계 앞에서 굴삭기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딸의 등록금을 마련했을 아비지, 그 등록금에서는 언제나 소똥냄새가 났다”고, 그리하여 “딸은 소똥에 기대어 날개가 돋는 동안, 반대로 아버지의 속울음은 두엄처럼 뜨거웠을”거라고. 그래서 아버지는 “소똥구리였고 그 소똥구리가 검게 빛나는 두엄탑”이었을 거라는 시인의 말은 차라리 슬픈 메아리였다.

그리고 어머니.

세월이 지나 병든 어머니의 몸을 씻기며 시인은 “텅 빈 넝쿨처럼 마른 등줄기에서 옹이 옹이 박힌 벼 이삭을 처음 보았”노라고, 그동안 “꽃이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캄캄하게 지나쳐 버린 꽃”이었던 어머니. 그 꽃이 바로 벼꽃이었노라고 시인은 담담히 술회하고 있었다.

▲ 송병숙 시인이 펴낸 시집들

#화가가 되고 싶었던 날들의 꿈

송병숙의 고향은 춘천 서면 방동리로 장절공 신숭겸 묘역 아래쪽 동네다. 시인의 집은 방동 초입새 두둑뿌리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춘천 시내로 배를 타고 통학했다.

가을부터 안개가 짙은 날이거나 야간 자율학습에서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아버지께서 배 터까지 마중을 나와주셨다. 늦은 밤 달빛 밟으며 아버지와 걷는 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송병숙의 꿈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는 거였다. 그러나 당시 강원대학교에는 미술 전공 학과가 개설돼 있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사남매 중 외동딸을 도저히 서울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원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자연히 그림과 멀어졌다. 대신 문학에 관련된 책과 시집을 틈틈이 읽었다.

1977년 졸업 후 양양중학교 국어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교무실 바로 옆자리가 시인 이성선 선생이었다. 그는 우연히 송병숙의 시를 보고 나서 아주 좋다며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이성선 선생이 빌려주는 시집을 읽었고 현대문학을 정기구독하기 시작했다. ‘갈뫼’ 동인 활동도 열심히 했다. 1982년 현대문학지에 초회 추천됐다. 설레었다. 그리고 이듬해 결혼했다. 양구에서 첫 아이를 출산했다. 2년 후 춘천으로 발령이 나, 춘천여고와 봉의고에서 고3 담임을 맡게 되었다. 자연히 시와는 거리 멀어졌다.

▲ 어릴 적 꿈이 화가였던 송병숙 시인이 그린 자화상

#퇴직이란 이름의 자유

오랜 교사생활을 교장으로 마감했다. 그로부터 마음속에 여며둔 시심이 열렸다.

우선 그동안 써왔던 시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 정리하니 시집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시집 제목을 ‘문턱’이라 했다. 이제 마악 시심의 문턱을 넘는다는 뜻이었다.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해인 2017년을 시작으로 2, 3년 간격으로 시집을 출간했다.

2019년 ‘‘를’이 비처럼 내려’, 2021년 ‘뿔이 나를 뒤적일 때’, 2022년 시산문집 ‘胎 춘천, 그 너머’, 2023년 ‘모 씨와 모 씨에게’를 펴냈고, 더불어 제17회 강원여성문학상 대상과 강원사랑시 최우수상, 춘천문학상을 받아 춘천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송병숙이란 이름의 시

송병숙 시인은 이제 나이 70이다. 그러나 송병숙은 풋풋하고 젊다. 시심이 그렇고 시가 그렇고 그가 품은 세계가 그러하다. 송병숙의 시엔 춘천의 언어가 고유하게 펼쳐진다. 다른 시인에게선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이미지가 반짝이고 있다.

나는 송병숙의 사계에서 그런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시어를 발견하곤 새삼 시인의 눈과 깊이에 감탄하고 말았다. 송병숙은 아직도 붓으로 수채물감을 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가라는 꿈은 감추었지만 송병숙의 사계엔 그 투명한 색채가 아름다이 번지고 있기에. 여기 몇 줄의 이미지를 발췌하여 펼쳐보자.

“흐드러진 배꽃 눈처럼 날려/뒤뜰 환하게 밝아오는 옛 기와집” ?‘봄’에서

“통통배 물보라 뿜으며 호수 위를 달리면/호랑나비떼처럼 날아오르던 쌍무지개” -‘여름’에서

“외동딸 마중 나온 아버지/달그림자 밟고 손짓하는 날” -‘가을’에서

“떨이도 못한 광주리 되이고 배터에 서면/뱃전을 때리는 겨울강 속울음 소리” -‘겨울’에서

송병숙의 이미지는 그물로 끌어올린 비늘의 물고기처럼 언제나 싱싱하고 사려 깊다. 시인은 말한다.

“시는 내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뿌리이며 기둥이다. 괴팍하고 까칠한 성격이 내 시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송병숙의 언어는 춘천의 고유한 언어를 갈고 닦아서 쓴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송병숙을 춘천의 백석이라 지칭하고 싶다. 송병숙은 춘천에 마지막 남은 말광이요 토박이 시인이기에 말이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인 #송병숙 #춘천 #아버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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