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퇴직연금을 ‘코스피 5000’의 땔감으로 쓰지 마라
기금화해 주식에 투자하면
손실은 여당이 책임지나?
국민의 노후 걱정한다면
퇴직연금 들쑤시지 말고
국민연금부터 개혁을

더불어민주당이 퇴직연금 제도 전반을 바꾸려고 한다. 시선을 끄는 다른 일이 많아 대중의 관심을 덜 받고 있지만,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다음가는 ‘노후 보장 통장’과 같다. 원칙적으로 모든 근로자가 법에 의해 퇴직금을 받거나 퇴직연금 혜택을 받도록 되어 있다. 노후에 받게 되는 국민연금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퇴직연금이 보완적 역할로 중요한데, 2005년에 도입된 이 제도가 20년 만에 큰 변화의 칼날 앞에 서 있는 셈이다.
퇴직연금 제도를 바꾸려는 여당은 퇴직연금 수익률이 표면적으로 너무 저조하다는 점을 명분으로 삼았다. 제도 도입 이후 1년 단위로 환산할 때 퇴직연금 수익률은 2%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좀 높아져서 작년 수익률이 퇴직연금 유형에 따라 4~5%대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작년 수익률은 15.3%였다. 다른 금융 자산과 비교해 봐도 퇴직연금 수익률은 높지 않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퇴직연금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여당이 내놓은 해법은 ‘기금화’다. 들어오는 돈을 한데 모아 국민연금처럼 덩치를 키우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퇴직연금 기금화는 이재명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규모만으로는 부족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작년에 양호한 수익률을 보인 국민연금은 세계 3대 기금이고 주식시장의 큰손이다.
그런데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해야 한다. ‘수익률이 꼭 높아야 하는가’이다. 국민연금을 예로 들어보자.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높다고 가입자가 받을 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연금을 계산하는 식이 수익률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익률이 높으면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 늦춰지긴 한다. 따라서 기금 전체의 관점에서 수익률이 높은 것이 좋지만,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은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개개인 입장에서 수익률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에서 절반 정도 차지하는 유형(확정급여형)은 국민연금처럼 받을 돈이 정해져 있다. 회사가 책임지고 주도록 되어 있다. 퇴직자에게 약속된 금액을 지급하기 때문에 초과 수익이 나면 그건 회사 몫이다. 그렇다고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자칫 손실을 보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리스크를 모두 감당하고 근로자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유형이다.
나머지 반을 차지하는 유형(확정기여형, 개인형)은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 후 받을 돈이 달라진다. 어떻게 운용할지는 근로자의 선택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우리나라 전체 퇴직연금의 83%가 원금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원금 보장과 수익률 추구가 같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원금이 보장되려면 주식 투자처럼 공격적으로 운용될 수가 없어 수익률이 낮기 마련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외 주식이 반 정도고 대체 투자도 많이 한다.
즉,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았던 건 수익률보다 원금 보장이 선호됐기 때문이다. 이는 퇴직연금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정한 소득이 없어지는 시기에 버팀목이 될 퇴직연금이 원금마저 불안한 상황에 처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회사들이 퇴직연금 지급을 책임지는 유형에서 대거 이탈했고, 연금이 실적에 연동되는 비중도 크다. 그러다 보니 주가가 급락하면 연금 생활자들의 불안이 대서특필되고 자살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여당은 처음에는 모든 퇴직연금을 기금으로 돌릴 기세였는데, 현재 논의되는 안은 기존의 유형들을 유지하고 기금이라는 선택지를 추가하는 쪽으로 물러났다. 그나마 다행이다. ‘도대체 누가 원하는 제도 개편인가’ 의아하던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대될 퇴직연금 기금이 코스피 5000 구호의 땔감으로 쓰일까 걱정스럽다. 주식시장에 안정적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만으로 주가는 어느 정도 오를 수 있지만 거품이라면 결국 사상누각이다.
요란하게 제도를 도입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생기면 퇴직연금 손실을 정부가 책임질 것인가? 책임져도 문제, 책임지지 않아도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은퇴 후 생활 안정은커녕 불안감만 키울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답답한 점은, 근로자의 은퇴 후를 진심으로 챙긴다면 앞으로 40년도 걸리지 않아 기금이 소진될 국민연금 개혁이 우선이라는 사실이다. 정부도 그걸 모를 리 없는데 퇴직연금만 들쑤시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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