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차’ 촌극까지…한국 만화가 걸어온 길[책과 삶]

한국 만화 트리비아
서찬휘 지음
생각비행 | 420쪽 | 2만원
한국에서 ‘만화의 날’은 11월3일이다. 공교롭게 일본도 날짜가 같은데 ‘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데즈카 오사무가 태어난 날이라고 한다. 한국은 만화가들이 국가 권력의 탄압에 맞서 거리로 몰려나온 날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배경이 사뭇 다르다. 1997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 매체물 규제 등에 관한 법률(청보법)’을 제정하면서 대대적인 만화 단속이 벌어졌다.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졸지에 음란물로 찍혀 작가가 고초를 겪었다.
만화비평가 서찬휘는 해방기부터 현재까지 80년의 한국 만화 역사를 정리한 책을 ‘만화의 날’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에선 전쟁, 독재, 계엄 등 사회 현실 속에서 한국 만화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 왔는지 정리한다. 사건을 통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 위주로 엮어내 한국 만화 안팎의 다양한 일화를 술술 읽을 수 있다.
책을 탈고한 시기는 2024년 10월이었다고 한다. 두 달 뒤 윤석열의 불법계엄은 책에서 다룬 과거사의 독재적 맥락을 현재화했다. 윤석열 ‘폭주’의 전조 같던 사건이 2022년 한 고등학생이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윤석열차’를 둘러싼 촌극이었다. 정부는 행사 주최 기관에 ‘엄중 경고’를 한 데 이어 예산까지 깎았다. “열차가 지나온 곳은 무너지고 있고, 그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허둥대며 쫓겨 다니고 있는데 윤석열은 해맑게 다른 쪽만 쳐다보고” 있는 이 작품은 이후 벌어진 일들의 예고편이었다.
퇴진 집회 현장에 등장한 <슬램덩크> 등장 인물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은 만화와 함께한 이들의 집단적 기억과 현재가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눈요깃거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며 생명력을 이어온 만화라는 장르를 새삼 다시 보게 하는 책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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