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비가 멈춘 자리에, 인간의 오만만이 남았다

이현남 2025. 8. 2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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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flood)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정성준作 ‘Hey yo! Aren’t you so glad we’re together <작가 제공>
“여섯 날과 일곱 밤 동안 바람이 불고,
홍수와 폭풍이 온 땅을 삼켰다.
일곱째 날이 되자, 폭풍은 더욱 게세졌고,
홍수는 마치 산통에 몸부림치는 여인처럼
스스로와 싸우며 휘몰아 쳤다.”
(‘길가메시 서사시, 제11서판’)

이 구절은 고대 서사의 강렬한 부분을 함축한 것으로 신들의 분노와 자연의 무자비함, 그리고 인류에 대한 심판과 경고를 담고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한 파트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 한 가운데서 등장한 길가메시 서사시 속 대홍수 신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아의 방주 스토리와 매우 흡사한데, 마치 비로 한창 고생한 우리네 이야기 같기도 하다.

찌는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 가운데서 갑자기 내린 큰 비가 말썽이다.

지구 온난화로 형성된 이상 기후 증상이 한반도에 연신 물폭탄을 투하했고 이전까지와는 다른 비의 양이 경악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7월 중순부터 전국적으로 아직 수해복구 현장은 말이 아니다.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는 산사태와 침수, 가옥 붕괴, 농경지 손실, 정전과 대피 등으로 그야말로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 ‘비’, 이제는 더 이상 계절을 말하지 않는다
비가 늘 이렇게 사나운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비는 창가에 앉아 시를 읊게 만드는 존재이며, 비에 젖은 골목은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유리구슬처럼 우산 끝에 매달린 물방울은 잔잔히 내리는 소나기처럼 은은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풍겨낸다.

마치 카렌우드의 작품처럼 비내리는 날 차 속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정적이며 아름답다.
카렌 우드作 ‘Fan(pink)’ <위키피디아 검색>

일상 속 평범한 도시 장면들을 비와 빛의 상호작용으로 화면 속에서 재해석 해가는 카렌우드는 감각적인 리얼리즘을 탐구하는 현대 화가로, 그녀의 작품은 몽환적인 사진을 연상시킨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풍경같지만 작품에는 관객의 내면적 감정을 이끌어내는 힘이있어 비평가들에게 ‘일상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낸다’는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빗방울’이다. 리얼한 물방울 표현과 빗물의 표현은 마치 비 내리는 날 차안에 실재한 것과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특히 밑채색 이후에 겹쳐서 레이어를 쌓아가며 빗방울을 표현하는 화법은, 멀리서 보면 사진을 찍어 놓은 듯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물감자국이 그대로 드러나 흥미로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제 비는 더 이상 ‘계절’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한 끔찍한 수해처럼 더 이상 자연은 인간이 만끽하는 ‘풍경’만이 아니다.

이제는 그간의 설움을 토해내듯 피해자의 이름을 달고서 인간이 자연에 가했던 폭력들을 다시 돌려주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대형 재해는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반복될 것
환경오염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만가고 있는 자원들과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들은 골칫덩어리다.

이런 상황이 도래하게 된 배경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는 작품을 소개해 보자면 바로 윌리엄 터너의 ‘비, 증기, 속도’다. 그야말로 산업혁명시기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 터너作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서부 철도 <위키피디아 검색>

이 작품은 당시 혁신적인 교통수단이었던 증기기관차가 비가 퍼붓는 강 위의 철도를 질주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근대화의 상징성이 잘 드러난 것으로 읽혀진다.

근대문명 상징인 철도는 당시 산업혁명의 메인 키워드로 그야말로 자연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문명 기계 자체였다.

터너는 표현적으로도 선명한 선과 색을 사용하지 않고 흐리고 번지는 기법을 사용해 비주류였던 풍경화를 단숨에 주연으로 바꿔낸 대단한 화가였다.

그렇지만 그가 주목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인한 문명 전환기에서 기차라는 신기술과 자연사이의 충돌을 묘사해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가늠해 보게 한 것과 관련된 일이었다.

2025년 장마와 호우 피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후위기, 특히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인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대기 온도가 1도씩 상승할 때마다 대기 중 수중기량은 약 7%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비의 양과 강도의 증가로 이어지고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집중호우 현상을 발생시킨다.

올해 여름 일부지역에서 시간당 170㎜, 일 강수량 800㎜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전형적인 기후위기의 징후를 보여주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기후 변화로 인한 대형 재해는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반복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두려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로 환경의 가치를 전하는 정성준 작가의 작품을 보자.

도시 속에 멸종 위기 동물들을 유머러스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배치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는 생생한 색채로 표현된 동물들과 달리 무채색으로 표현된 도시 풍경과 사람들이 인상적인데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과 소외를 역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 가득한 메시지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내고 있다.

이를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긍정적인 시선도 함께 살필수 있다.

가뭄의 단비처럼 그야말로 축복이 될 수 있는 비가 또 한순간엔 삶의 터전을 삼켜버린 절망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할 때이다. 또한 지구에 땅을 딛고서 자연과 함께 공존 중인 인간으로서 본연의 역할에도 더욱 충실해질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안타까운 시절이기도 하다.

“자연은 언제나 옳다. 실수를 하는 쪽은 언제나 인간이다.” 볼프강 폰 괴테
<이현남/문화비평·갤러리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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