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교육생 입소…200명 기숙사에 딱 3명이 들어갔다

한겨레 2025. 8. 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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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의 요즘 조선소 _02
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상용직으로 입사하기 가장 무난한 행선지는 해당 조선소를 보유한 대기업의 기술교육원이다. 조선소는 두달 단위로 교육생을 모집하기에 금방 교육생 모집 공고가 떴다. 7주 교육이며 한달에 훈련비로 100만원 지급. 여기에 타지에서 오면 숙식도 제공한다고 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몇몇 사람이 앉아서 대기 중이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방법은 뭘까. 뱃일할 사람 없다고 난리지만 구직자는 진입부터 쉽지 않다. 온갖 직군이 나뉘어 있고, 고용 형태도 다르며, 업체마다 질 차이도 상당하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서류부터 막 들이밀다간 이상한 회사의 원하지 않던 일을 할 가능성이 크다. 간단히 분류하자면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조선소 게시물이 모집하는 건 사내하청 기업 직원으로, 고용이 보장된 상용공이다. 반면 블로그,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 올라오는 게시물이 모집하는 건 ‘물량팀’으로,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일당직이다. 작가 생활을 병행하기엔 물량팀에 속하는 쪽이 편했다. 몸 아프거나 마감이 급할 땐 출근 안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고됨을 감수하더라도 상용직으로 일하기로 했다. 조선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당직한테 박하게 굴어서’가 아니었다. 하청 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상용직 대우가 엉망이라는 점이었다. 극한투쟁을 벌였던 유최안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또한 상용공 아니던가.

상용직으로 입사하기 가장 무난한 행선지는 해당 조선소를 보유한 대기업의 기술교육원이다. 큰 규모의 제조업 회사는 따로 기술교육원을 둔다. 여기서 교육받고 하청 회사부터 시작하는 방식이 가장 안전하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직업교육의 현실을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몇번이고 지겹도록 떠들고 다닌 말이 있다. “대한민국 전국 팔도 어디든 숙련 기술자는 없어서 난리다. 숙련 기술자가 현장에서 만들어지기만 기다리지 말고 체계를 통해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직업교육은 정말 형편없다. 분야 불문 몇달 동안 실전과 별 상관 없는 어설픈 기초 지식만 배운다. 게임 회사 잠깐 다닐 때 면접만 하루 다섯번 보던 팀장한테 들었던 말이 “직업학원 출신부터 거른다”였다. 조선소에서 하는 직업교육은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기대엔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한국 직업교육은 어떤 분야로 돈이 몰리면 삼류 기관이 우후죽순 쏟아지기 일쑤였다. 반면 한화오션 기술교육원은 갖춘 설비며 쌓인 역사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었다. 역사, 1979년 대우조선 직업훈련원부터 시작해 45년을 운영했다. 설비, 조선소 바로 앞이니 최고 수준의 장비와 재료를 갖추고 있다. 한국에 이 이상 좋은 직업훈련 조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소는 두달 단위로 교육생을 모집하기에 금방 교육생 모집 공고가 떴다. 7주 교육이며 한달에 훈련비로 100만원 지급. 여기에 타지에서 오면 숙식도 제공한다고 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몇몇 사람이 앉아서 대기 중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장소를 이동해 교육장으로 향했다. 한명씩 면접 진행하는 동안 ‘책임’이라는 직위의 정직원이 교육원 사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이산화탄소(CO₂) 용접 부문과 선체 취부 부문을 모집한다.” “용접사보단 취부사가 임금도 더 세고 정규직 전환 가능성도 크다.” “용접 지원자가 10명이고 취부가 6명인데 취부사 생각해봐라.” 물론 아무도 바꾸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기술교육원 지원자 모두 취부가 무슨 일인지 잘 알았다.

취부란 철판을 본격적으로 용접이 가능하도록 형태를 고정하는 작업. 그림으로 비유하면 채색 전 밑그림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선배 세대 때만 해도 취부사의 임금이 용접사보다 적었다. 용접사 선배들 또한 “용접 못 하는 인간들이 취부 하는 거야”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수요 공급 역전이 일어난 이유는 단순했다. 골병드는 일이라서. 취부의 핵심은 철판과 철판 사이 단차가 어긋나지 않도록 하기다. 당연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버티고, 망치로 두드리며, 불로 지져서 변형시키는 등,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단차를 맞춰야 한다. 적응하기 전까지 ‘파스값’ 꽤 깨지는 일이다.

불합격자가 없는 면접이 끝나고 보름이 지난 10월21일, 조선소에 들어섰다. 첫날은 입소식을 했다. 대우조선 출신으로 현재 거제대학교 소속인 교수님의 인솔 아래 16명이 각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외지인은 적었고 거제 사람이 많았다. 모두 조선소에서 이미 일해봤거나 가족이 일하는 이들이었다. 고학력자들이 꽤 많았다. 4년제 대학, 개중엔 부산대, 경상대 출신도 있었다. 연령대는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까지 다양했다.

첫날 이론 수업을 마치고 사내 기숙사로 갈 시간이 됐다. 기숙사는 거제 출신이 아닌 타지인만 쓸 수 있었다. 교육생 중 거제 출신 아닌 사람은 고작 3명. 마산 사람 천현우와 거창 사람인 1999년생 찬, 경기도 사람인 1990년생 배씨였다. 셋이 조선소로 온 이유를 묻고 답하며 걷는 동안 새삼 조선소의 거대한 규모를 체감했다. 교육장이 있는 중앙에서 기숙사가 위치한 동쪽 끝에 도달하기까지 15분이 걸렸다. 10월의 선선한 날씨에도 땀범벅이 됐다. 도착하니 기숙사 사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감은 이용수칙을 열심히 설명하다가 별안간 피식 웃었다. 어차피 3명밖에 안 쓰는 건물이니 술만 반입하지 말라나. 본래 200명이 살 수 있는 규모로 지었고, 부임 당시만 해도 상시 30~40명 정도는 왔지만, 점차 수가 줄더니 이 지경까지 왔다고 했다. 배정받은 방은 2인실이었지만 혼자 쓸 수 있었다. 양쪽으로 데칼코마니처럼 침대, 책상, 옷장이 놓여 있는 구조였다. 문득 궁금해서 열어본 책상 서랍엔 정확히 20년 전인 2004년 용접 기능사 문제집이 들어 있었다. 먼지 냄새 가득한 이불과 담요를 탈탈 털어 널고 멍하니 휴대전화만 보니 어느덧 열한시. 별일 없는 하루를 보냈음에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 안 가 도로 정신이 돌아왔다. 이 굉음은 아마 프레스 소리이리라. 확신이 아니라 짐작인즉 창밖에서 비슷한 데시벨의 소음이 음절만 바꿔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거대한 철판이 들리고, 찍히고, 부딪치고, 옮겨지면서 생긴 소리였다. 아직 해가 서너시간 후에나 깨어날 시간. 초가을의 바람이 방구석에서 나오라며 온몸을 간질였다. 잠깐 짧은 산책을 다녀와 맥주 한잔 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도 앱을 켜서 편의점을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걸어서 30분. 그마저 중간에 검문을 거쳐야 했고 밖에서 다 마시고 들어와야 했다. 병영 생활이나 다름없는 7주가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천현우 | 창원시에서 여러 회사 전전하며 10년간 제조업 노동자로 일했다. 서울 성수동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 등에서 2년 반 일하다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현재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을 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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