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손지민 기자 2025. 8. 21. 19: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가장 중요했던 존재는 아무래도 배우를 맡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세달 동안 '햄릿', '줄리엣'처럼 작품 속 인물의 이름으로 불렸고, 배우가 없으면 연습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연습 일정을 짜는 데 있어서도 배려를 받았다.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하냐"며 핀잔을 주거나, "일은 우리 직군이 다 하는데"라는 말로 괜한 자존심을 채우는 말들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손지민 | 사회정책팀 기자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가장 중요했던 존재는 아무래도 배우를 맡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세달 동안 ‘햄릿’, ‘줄리엣’처럼 작품 속 인물의 이름으로 불렸고, 배우가 없으면 연습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연습 일정을 짜는 데 있어서도 배려를 받았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도 관객은 배우들을 기억했고, 배우를 맡았던 친구들도 그 작품을 ‘내 작품’으로 기억했다. 물론 그만큼 책임도 컸다. 연습량도 상당했고, 신경 쓸 부분도 많았다. 소위 ‘주목받는 격무’였던 셈이다.

반면 조명이나 음향, 소품, 미술 등 무대 밖 스태프에 속하는 친구들은 반드시 연습에 참여할 필요도 없었고 공연 1~2주 전 바싹 준비해도 무대에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함께 연극을 만들고 있다는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괜한 오지랖일 수 있지만, 늘 이들이 신경 쓰였다. 연극 연습에 많은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무대 위는 조금 부끄러워서 등 무대 밖을 선택한 각자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연극을 만드는 친구들 누구나 소외감 느끼지 않고 ‘내 작품’으로 여기길 바랐다. 공연을 만드는 데 있어서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간단한 명제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잊힌다. 모두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이 말에 공감을 표현하지만, 자신의 일터에 들어서면 금세 까먹는다. 회사에서, 단체에서, 조직에서 자신이 맡은 일이 중요하다고 느낀 순간, 다른 동료의 역할을 평가절하하고 지나치게 낮게 보는 시선이 생기곤 한다. 특정 직군이 중심인 회사는 더 그렇다. 병원의 의사, 법무법인의 변호사, 언론사의 기자가 ‘배우’를 맡으면 그 외 직군은 눈에 덜 뜨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필요 없는 일은 없다. 병원에는 간호사도, 행정직원도 모두 필요하듯이 말이다. 누군가 자신의 일 외에 다른 업무를 경시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식견이 좁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자세는 나아가 ‘일의 귀천’을 따지는 모습으로 발전한다.

최근 다른 업무를 무시하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무시받았던 주변 직장인들의 말이 자주 들린다.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하냐”며 핀잔을 주거나, “일은 우리 직군이 다 하는데”라는 말로 괜한 자존심을 채우는 말들이다. 이런 사례들에 대해 한 동료는 이런 말을 했다. “서로의 고생을 알고, 업무도 이해하고, 각자 자리에서 모두가 적당히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데 그걸 왜 모르냐”고.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유치원 학예회에서 연극을 하게 된 아이가 너무 열심히 연습하고, 집에 와서 자랑도 하길래 부모는 아이가 중요한 역할을 맡은 줄 알았다. 그러나 부모가 막상 유치원 학예회를 보러 갔더니 아이는 무대 저 뒤에 있는 나무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아이는 열심히 나뭇잎을 흔들며 나무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 아이에게 자신이 지금 주인공인지, 나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는 실망했지만 열심히 나무를 연기하는 아이에게 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그 일을 즐겁게, 잘 하고 있느냐가 가치를 결정한다. 나무를 맡았던 이 아이를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sj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