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차오르는 기 눈에 보이모 이미 늦은 기라, 그 전에 퍼뜩 토끼야지”

최상원 기자 2025. 8. 2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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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극한호우에 대비한 주민대피 훈련에 참여한 경남 김해시 이동 3통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대피해 있다. 최상원 기자

“물 차오르는 기 눈에 보이모 그때는 이미 늦은 기라. 그 전에 퍼뜩 토끼야지. 짐 싸고 머 챙기고, 그라모 안돼.”

임묘덕(85)씨는 “작년 물난리 때 나는 그 전날 저녁 일찌감치 마을회관에 대피해서 누워 잤다. 며칠 뒤 집에 돌아가서 보니까, 방 안에까지 물이 찼더라”고 말했다. 임씨가 가리키는 집 담장에는 어른 어깨높이쯤에 기다랗게 얼룩이 져 있었다. 지난해 물난리 때 침수됐던 흔적이었다.

지난달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당했던 경남도는 지난 2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이동 3통 마을에서 극한호우에 대비한 주민대피 훈련을 했다. 김해시 이동 3통에서 주민대피 훈련을 한 것은 홍수에 매우 취약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서낙동강 지류인 조만강을 끼고 있어, 지난해 9월19~21일 집중호우에도 조만강 범람으로 13가구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봤다. 이번 훈련도 집중호우로 조만강에 홍수 경보가 발령된 상황을 가정해서 진행됐다.

훈련의 핵심과제는 스스로 대피소까지 걸어가기 어렵고, 휴대전화를 통한 정보 소통에도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어떻게 신속히 대피시키는가였다. 지난달 16~20일 집중호우 때 경남 산청군에서만 15명의 인명피해가 났는데, 당시 2명을 제외한 13명이 60대 이상 고령자였다. 이동 3통에는 21가구 38명이 사는데, 다른 시골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70대 이상 노인이다. 현재 3명은 요양시설에 있다. 절반가량은 홀몸 노인이다.

김해시는 실제 대피하는 상황에 놀랄까 봐, 훈련 전날인 19일 주민들에게 훈련에 관해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또 훈련 당일인 20일엔 훈련 시작 1시간 전부터 주민들을 마을 공터의 그늘 천막에 모아서 대기시켰다. 낮 최고기온 35도로 폭염경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노인들이 개별적으로 대피소로 가다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후 2시57분이 되자 ‘조만강에 홍수 경보가 발령됐으니, 이동 3통 주민들은 마을회관으로 즉시 대피하라’는 내용의 주민대피 명령이 휴대전화 알림톡으로 발송됐다. 걷기 어려운 노인들은 마을회관까지 준비해둔 차로 실어 날랐다. 김해시 자율방재단도 주민 대피를 도왔다. 오후 3시부터 마을 방송도 반복해서 나왔다.

“이 더번 날 머 하는 기고?”라며 구시렁거리면서도, 주민 모두 공무원 지시에 따라 마을회관으로 설렁설렁 걸어갔다. “나는 문자를 안 받았는데, 가도 되나?”라고 이웃 주민에게 물어보며 따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움직이기 힘들다며 일찌감치 마을회관에 가서 누워있던 주민도 있었다. 김해시는 지난해 물난리 피해를 본 주민 13명에게만 대피명령 문자를 보냈는데, 마을회관에 대피한 주민은 28명이었다. 재난문자 수신 여부와 상관없이 마을에 있던 주민 모두가 훈련에 참여한 것이다. 대피소에선 수박을 나눠 먹는 등 훈련은 훈련일뿐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경남 김해시 이동 3통 마을의 지난해 9월19~21일 집중호우 때 물에 잠긴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 김해시 제공, 최상원 기자

하지만 지난해 물난리를 겪었기 때문에 홍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주민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이동 3통 주민이면서 자율방재단 단원인 윤명희씨는 “작년 물난리 때 차량 통제하는 일을 맡았는데, 사람들이 진짜 말을 안 듣데요.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려도, 꾸역꾸역 들어갔다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되니까, 그때야 차를 버리고 몸만 빠져나온 사람도 있었어요”라며 “노인들은 재난문자를 잘 보지 않는다. 대피하라고 마을방송을 시끄럽게 계속하는 것이 효과적이더라”고 말했다.

최용기(66) 통장은 “미리 대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통장 혼자서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마을마다 나와서 주민들을 대피시킬 수도 없다”며 “나이가 좀 많더라도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자동차 운전도 하는 사람은 모두가 나서서 주민 대피를 도와야 한다. 이런 장난 같은 훈련이라도 평소에 해두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순덕(79) 노인회장은 “작년 물난리 때 물이 차오르기 전날 밤새도록 주민 대피를 도왔다. 그래서 김해시장 표창장도 받았다”며 “미리미리 대피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라고 말했다.

훈련을 참관한 박명균 경남도 행정부지사는 “대피소로 지정된 마을회관이 침수되거나,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이 끊겼을 때를 대비해 2차 대피소도 준비하고 주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겠다”고 강평했다.

앞서 지난달 16~20일 집중호우로 경남은 사망 14명, 실종 1명 등 15명의 인명피해와 5177억원의 재산피해를 봤다. 같은 기간 전국에서 발생한 인명피해(24명)의 62.5%, 재산피해(1조848억원)의 47.7%가 경남에서 발생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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