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5만t → 10만t’… 韓, 국제사회 쌀 원조량 줄인다

윤희훈 기자 2025. 8. 2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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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급 상황 및 재정 상황 고려한 듯
李 “납득가지 않는 사업 많다”
ODA 예산 대폭 감액 예상돼

정부가 기아 해소와 난민 구호를 위해 국제기구에 공여하는 쌀 지원 규모를 줄인다. 올해 15만톤을 지원했지만, 내년에는 10만톤으로 5만톤 줄이기로 했다. 쌀 수급과 재정 상황을 고려해 공적개발원조(ODA)를 축소한 것이다.

21일 관계부처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국제사회 쌀 공여 관련 예산을 대폭 감액하기로 했다. 올해 15만톤을 지원했던 규모를 10만톤으로 줄이면서, 관련 예산도 약 600억원가량 삭감될 전망이다. 올해 쌀 공여 예산은 1901억 원이었다.

그래픽=손민균

◇ 작년엔 쌀 남았는데… 올해는 쌀 공급 부족 우려

국내 쌀 수급 불안이 공여량 감축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국내 시장에선 추수기를 앞두고 쌀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산지 쌀값과 소비자 물가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현지 쌀 값은 80㎏ 한 가마에 21만1600원으로 집계됐다. 산지 쌀값이 21만원을 넘은 것은 2023년 10월 5일(21만7552원)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추수기 산지 쌀 가격은 17만원대에 머물렀다.

산지 쌀값 상승은 소비자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7월 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6%(전년 대비)로, 2024년 3월 이후 처음으로 7%대를 기록했다.

2024년 4월 17일 전북 군산항에서 트럭에 실린 쌀을 배로 옮기는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선박에 실린 쌀은 로힝야 난민 영양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윤희훈 기자

정부는 쌀 수급 안정을 위해 지난 11일 정부양곡 3만톤을 대여 방식으로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보유한 양곡을 임도정업체에 공급하고, 내년 3월까지 올해 수확한 쌀로 되돌려 받는 방식이다. 정부가 대여 방식으로 시장에 쌀을 공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2023년까지 국제사회에 쌀을 5만톤씩 공여해오다, 지난해 10만톤, 올해는 15만톤으로 확대했다. 국제사회 기여 확대라는 명분과 함께, 국내에 남는 쌀을 해외로 이전해 처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쌀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기존 공여량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 “ODA, 없어지는 돈”… 李 재정관 반영

여기에 예산 절감도 쌀 공여 축소의 이유로 꼽힌다. 내년도 예산안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편성하는 정규 예산이다. 앞서 2025년도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확정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지출 구조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AI 분야 투자와 에너지고속도로 등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를 실행하기 위해선 대규모 지출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 사업 예산도 부족한 상황에서 ODA 사업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긴 어렵다는 게 예산당국자의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연간 수조 원이 들어가지만 납득가지 않는 (해외원조) 사업이 많다”라면서 “국위 선양과 외교 목적에 맞는지 정리해서 보고하라”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도 ODA 사업에 대한 재정 지출 확대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아프리카에 100억달러씩 원조할 돈은 있으면서, 동네 골목에 폐업하고 이자 못 내서 카드론 빌리러 다니고 이러는 것 안 보이느냐”며, 재정 우선순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ODA 예산에 대해 “없어지는 돈”이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베트남 국적 벌크선 '민쟝호'에 실린 쌀. 민쟝호는 쌀 1만5000t을 싣고 방글라데시로 출항한다. /윤희훈 기자

◇ ‘수원국 → 공여국’ 전환, 韓 ‘세계 유일’

한국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을 계기로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원국이 공여국으로 전환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식량원조는 2018년부터 시작됐으며, 정부는 식량원조협약(FAC)에 가입해 매년 5만톤 규모의 쌀을 지원해왔다. 이후 2024년 10만톤, 2025년 15만톤으로 지원 규모를 확대했다.

쌀 공여는 국내 잉여 쌀을 국제기구에 현물로 직접 기부하는 방식은 아니다. 정부가 공여량을 결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분담금을 세계식량계획(WFP)에 납부하면, WFP가 해당 금액으로 정부관리양곡을 구매해 수원국에 운송·배급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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