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꽃처럼 작지만 내 삶의 등대 같던 어머니… “고맙습니다”[그립습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철쭉꽃 같은 어머니.
어머니는 맏며느리로서 할아버지 댁을 오가며 모내기, 벼베기, 탈곡기 돌리는 추수철까지 논일 밭일을 감당했다.
동네 이모네들은 어머니 자존심에 상처 내지 않고자 몰래 쌀봉지와 찬거리를 놓고 갔다는 이야기를 훗날에 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새벽 그물을 털고 방파제 등대로 돌아오면, 돈 되는 농어 몇 마리만 골라 고무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철쭉꽃 흐드러진 그 섬모퉁이를 돌아 읍네 어판장을 향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쭉꽃 같은 어머니. 봄이면 외갓집 가는 산모롱이는 온통 철쭉으로 흐드러졌다. 어머니는 철쭉처럼 작지만 속 깊은 연분홍 삶을 살았다. 30년 동안 섬여행에 빠진 나는, 어느 날 풍랑주의보 내린 서해에서 파도를 뒤집어쓴 채, 불빛 돌리는 등대를 찾아 떠났다. 승용차를 운전해 방파제 등대를 근접 촬영하고 돌아서는데, 파도가 덮쳐 승용차 시동이 멈췄다. 해경에 구조된 후 뒤돌아본 등대는 여전히 물보라 속에서 두 눈을 깜박이며 바다를 비추고 서 있었다. 등대는 영락없는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빼빼 마른 체구로 두 아들을 시인이자 언론인으로, 두 딸은 동화작가와 패션디자이너 교수로 키웠다. 아버지는 교육자이자 예술가였지만 가장의 짐은 늘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맏며느리로서 할아버지 댁을 오가며 모내기, 벼베기, 탈곡기 돌리는 추수철까지 논일 밭일을 감당했다. 장수한 할아버지, 할머니 수발도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가 퇴임한 후 외가 바닷가에 집 짓고 수산양식장을 운영했다. 8년 내리 실패의 그늘에 갇히면서 집안은 늘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런 풍진 세상을 헤쳐가는 어머니의 삶은 늘 고단했다. 동네 이모네들은 어머니 자존심에 상처 내지 않고자 몰래 쌀봉지와 찬거리를 놓고 갔다는 이야기를 훗날에 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새벽 그물을 털고 방파제 등대로 돌아오면, 돈 되는 농어 몇 마리만 골라 고무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철쭉꽃 흐드러진 그 섬모퉁이를 돌아 읍네 어판장을 향했다. 적지만 그 금액을 도회지에서 자취하는 자식들에게 보내고 나면 그날 밤만은 두 다리 편히 뻗을 수 있었단다.
어머니는 올해 1월 20일 운명했다. 의사는 어머니의 소화기관이 자동차로 비유하면 수명이 다했다고 말했다. 운명하기 보름 전. 치매가 심한 어머니는 비 오는 신작로를 맨발로 걸어나갔다. 이웃 동네 사람들에 따르면, 빗길을 걷고 걸어와 나와 내 아내, 내 아들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맸단다. 어머니에게 나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얼마 후 고향집 형으로부터 어머니가 통화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전화가 연결됐다.
“엄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요?” 어머니는 대뜸 “지금 네가 나한테 할 소리냐?”라고 버럭 화를 냈다. 어머니는 평소 말씀이 없으시다. 자식들에게 야단을 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고성에 크게 당황했다. 어머니는 퇴직을 앞둔 아들을 걱정했었다.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 아버지가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7년을 보내다가 운명한 모습과 오버랩됐다.
며칠 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부친 장례식장 가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그토록 흐느끼던 일이 반복됐다. 의사는 사나흘이면 운명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그날 밤 어머니 곁을 지켰다. 자정 무렵, 어머니 숨소리가 가빠지며 심하게 몸을 뒤척였다. 그때마다 인공호흡기가 코 밑으로 밀려 내려왔고 나는 호흡기를 다시 조정했다. 그때 어머니가 잠시 눈을 뜨고 “고맙다”고 했다. 이제 안정되나 싶었다. 그러나 날이 밝고, 어머니의 호흡은 멈췄다. “엄마, 저도 고마워요.” “저도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 전하지 못한 마음이 너무 무겁다. 어머니는 사흘 뒤 대전현충원 아버지 곁에 묻혔다.
아들 박상건(시인)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라이프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건희 “남편이 오죽했으면 계엄했겠냐”…구치소 면담서 밝혀
- 임신중절 수술하던 아내의 진실… 옆집 남자 아이였다
- “잘 가라 병신년” 최교진, 박근혜 탄핵 때 막말 논란
- “시어머니에게 싸가지 없이 대들었다”…며느리의 최후는?
- 조응천 “조국 2030년 집권 플랜 짜둔 듯…정청래·조국 과격 언사 정권 독극물”
- 나경원 분노 “‘토사구팽’ 두 얼굴 이재명…노란봉투법=빨간봉투법”
- “아버지가 50살 어린 아내에 납치…” 국민화가 딸의 주장으로 난리난 중국, 실상은…
- 주차칸에 물건 하나씩… 한강공원 주차장 ‘알박기’한 여성
- [속보]이종찬 광복회장 “尹 부친, 명품 소리 나왔다면 회초리 쳤을 것”
- 홍준표, 김문수 겨냥 “초상집 상주라도 하겠다고 ‘속옷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