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감춘 갈치와 때아닌 멸치, 기후위기 ‘한 치 앞’ 모를 제주 바다

김찬우 기자 2025. 8. 2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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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위기의 산업현장] ⑥ 기후·물가·어업협정 ‘3중고’에 흔들리는 수산업
19일 오전 제주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에서 진행 중인 경매. 한 중도매인이 갈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날 갈치는 평소보다 많이 잡힌 가운데 때아닌 멜 소식이 화제가 됐다. ⓒ제주의소리

"이야, 오늘 모슬포서 멜 6000말(1말=4kg) 잡혔댄 마씸."

질 좋은 제주산 은빛 생물 갈치 경매가 한창인 위판장에 때아닌 '멜(멸치)' 소식이 들려왔다. 

조업을 마치고 방금 입항한 어선에서 막 내려놓은 신선한 갈치를 사들이기 위해 중도매인들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진 '갈치 1번지'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서귀포수협) 위판장. 

19일 이곳에 전해진 다른 수협의 멜 위판 소식은 마치 특별한 소식인 듯 '호외'처럼 다뤄졌다. 그만큼 수십 년 바다와 호흡한 수산인들에게도 흔치 않은 소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어선 입항을 기다리는 동안 수협 경매사는 취재 중인 기자에게 "원래는 이맘때쯤 멜이 안 났는데 지금 나고 있다. 6월쯤 마무리되는데 때아닌 8월에 멜이 터졌다"고 귀띔했다.

또 한동안 갈치가 잡히지 않다가 이달 들어 잡히기 시작한다며, 갈치들이 멜 먹으러 제주 연안으로 가까이 오면서 많이 잡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때아닌 멜'이다.

문제는 멜이 아니라 변화가 당연해진 바다 환경이다. 원래도 예측할 수 없는 존재지만, 기후위기 시대 바다는 더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수산업계 '풍속(風俗)'마저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이하 수과원)에 따르면 제주 대표 특산 어종으로 어업생산량 1위를 차지하는 갈치는 최근 들어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제주 주변 연안복합 어선의 갈치 어획량은 2006년 8149톤(t)에서 2024년 3957t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 '어황 변화에 따른 연근해어업 영향 분석 및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제주해역에서 생산되는 품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갈치다. 47.7%의 비율로 2위인 참조기 7.4%와 차이가 크다. 그만큼 제주 어민들에게 갈치는 생명줄과 같다. 
경매가 끝난 갈치에 얼음물을 붓고 있는 작업자. ⓒ제주의소리
신선한 은빛을 뽐내고 있는 갈치. ⓒ제주의소리

# '군산'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제주' 은갈치? 

경매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곳곳에 흩어져있던 중도매인들이 모여들어 물건을 살폈다. 배에서 내릴 때부터 일찌감치 상태를 확인했던 이들은 거침없이 가격을 써냈다. 

경매는 찰나의 순간 끝났고, 중도매인들은 업체명이 적힌 종이를 갈치에 붙이고는 곧바로 다음 입찰에 뛰어들었다. 그사이 낙찰된 갈치에는 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얼음물이 부어졌고 그 덕에 갈치는 생생한 은빛 자태를 더욱 뽐냈다.

제주 연안에서 건져 올린 은갈치는 신선도가 남달라 맛 좋고 은빛이 선명하다. 특히 서귀포수협의 갈치는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은갈치를 제주 연안이 아니라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서 건져서 가져오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천남선 서귀포시어선주협회장은 "한일어업협정이 결렬된 이후 조업 장소가 줄어들면서 가뜩이나 갈치가 잡히지 않아 힘들다"며 "오죽하면 군산 앞바다에 갈치 어장이 형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부터 어선들이 조업하러 간다"고 하소연했다. 

군산 앞바다로 간다는 천 협회장의 말은 최근 수과원이 발표한 '제주 연안 갈치 어장 변화 원인 분석' 자료에서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갈치 주요 조업 시기인 8월, 제주 바다 수심 20m 수온이 27~29도로 높아질 때 어장이 약화, 분산되면서 어획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심 20m 수온 분포 및 어장 형성 자료를 살펴보면 2017년에는 어장이 제주를 중심으로 형성됐고 또 어획량(Catch)도 제주 연안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2024년에는 어장이 심각하게 약화되고 어획량도 크게 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비단 이 같은 문제는 갈치뿐만 아니라 다른 어종도 마찬가지다. 이날 위판장에 나온 한치는 상자당 가격이 평소보다 4만~5만원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그러자 중도매인이 귀에 댄 전화기 너머 소매인이 평소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2017년과 2024년 제주 인근 바다 수심 20m 수온 분포. 27도 이상 고수온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확연히 보인다. 사진=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2017년과 2024년 제주 인근 바다 갈치 어장 분포. 사진=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 3중고 시달리는 어업인들 "이익은 무슨, 현상 유지도 감지덕지"

천 협회장은 최근 들어 갈치가 조금씩 잡혀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선주 80%는 파산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2년간 갈치 어획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갈치 생산량이 가장 많은 서귀포수협의 2023년 위판량은 8307t, 심지어 2024년에는 6948t으로 더 줄었다. 

그는 "갈치가 안 잡히면서 선주들이 빚을 내서 인건비와 조업비를 댔다. 보통 2년 흉년이면 다음 2년은 풍년이 찾아오기 때문에 손실분을 메우곤 하는데 올해는 시작부터가 걱정"이라며 "지금은 손해 본 건 접어두고 현상 유지만 겨우 하는 수준"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2016년 한일어업협정이 결렬되면서 조업 장소가 크게 줄었다.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을 못 하기 때문"이라며 "경계선에서 겨우 조업하고 있으면 중국 어선이 와서 우리 어장을 다 빼가면서까지 자리를 빼앗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가 지난 2016년 6월 한일어업협정을 중단하면서 현재 제주 어선들은 서귀포 남쪽 일본 EEZ 해상에서 조업을 못하고 있다. 대신 경계선에서 조업하며 중국 어선과 갈등을 빚거나 한참 떨어진 대만 인근 해상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 EEZ 해상에서 조업을 못하면서 피해가 발생하자 한일 선망업계는 사상 최초 공동 건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지난 5월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20회 제주포럼을 찾은 주한일본대사에게 한일어업협정 재개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천 협회장은 "조업 장소가 줄면서 경쟁은 심해지고, 또 멀리까지 나가야하니 경비도 많이 든다. 그 와중에 물가도 많이 뛰었지 않나. 심지어 인건비는 3~4배 올랐다"며 "이 와중에 갈치가 나지 않으니 아주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작년에는 가격이 좋아서 버틸 수 있었다. 이마저도 수협이 많이 사들여주니 가능한 것"이라며 "계속 이러니 조업을 포기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올해 이미 어선 3척이 경매에 올라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막 잡아온 은갈치를 배에서 내리고 있는 선원과 작업자들. ⓒ제주의소리
위판장에 막 올라온 제주 은갈치. ⓒ제주의소리

# 기후변화 탓, 안 잡힌 건데…해수부 'TAC' 축소 "상처에 소금"

천 협회장은 어족자원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하는 '총허용어획량(TAC)' 제도와 관련해 해수부가 제주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수량을 정했다고 답답함을 표출했다. 상대적으로 갈치가 없었던 지난해 어획량을 올해 TAC로 설정한 탓이다. 

올해 갈치 생산량이 얼마일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얼마 잡히지 않은 지난해 어획량이 기준이 된 것. 천 협회장은 TAC를 늘려줘도 많이 못 잡으니 줄여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제주 TAC가 2만1974t이었는데 올해는 1만3222t에 불과하다. 작년에 갈치가 안 났다고 줄여버린 것"이라며 "서귀포수협만 해도 배가 148척인데 TAC를 나누면 1척당 80t 정도다. 인건비 빼고 출항 경비도 안 나오는 수준으로 다 죽으라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어선 1척이 순익 없이 현상 유지할 수 있는 어획량이 150t 정도다. 해수부가 결정한 올해 TAC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준인지 알 수 있잖나"라고 되물은 뒤 "찾아가 항의도 했지만, 필요하면 나중에 여유분을 늘려주겠다는 답변 뿐이었다"고 말했다.

또 "2년간 빚을 내고 손해를 봐가면서 지금까지 어선을 끌어왔으니 갈치를 많이 잡아야 빚도 갚고 밥도 먹을텐데 이렇게 물량을 줄이면 되겠나"라며 "또 채낚기 어선은 그물처럼 싹쓸이도 아니고 낚시로 하는 조업이니 자원 고갈과도 큰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천 협회장은 "아무래도 갈치 어선들은 기후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다. 갈치는 해류 온도에 따라 돌아다니는 회유성 어종이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기후가 변하면서 제주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 나중에는 강원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이미 제주도에서 잡히지 않았던 어종인 참치(참다랑어)가 많이 잡히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는 위판까지 할 수 있게 됐다"며 "이렇게 갈치 어장도 북상하기 시작하면 제주산 갈치의 경쟁력도 점점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한 낚시어선 선장이 보내온 사진. 기후변화 여파로 과거에 자주 잡히지 않던 아열대 어종이 꽤 잡힌다고 했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