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아들 사건’의 진짜 사이다 결말 [세상읽기]

한겨레 2025. 8. 2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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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차성안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학대 정황을 발견한 부모가 가해자와 자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도 이런 일이 많아, ①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대신하여 자녀와 다른 사람의 대화 녹음에 동의할 필요가 있고, ② 그것이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객관적·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면, 부모가 아동 대신 녹음에 대리 동의할 수 있다는 판례 법리가 생겨났다. 이른바 ‘부모의 대리 동의 독트린’(Parental Vicarious Consent Doctrine)이다. 한국 대법원도 웹툰작가 주호민 특수교사 고소 사건에서 같은 쟁점을 다루게 되었다. 위 사건은 1심 유죄, 2심 무죄를 거쳐 대법원에 상고되었다.

주호민 사건을 유명인 부모의 특수교사에 대한 갑질로 본다면 항소심 무죄판결은 사이다 결말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성명처럼 특수교사의 교육적 행위를 아동학대와 구별하는 합리적 판단을 내려 교육계 전체에 안도와 희망을 준 정의로운 판결이다. 진짜 그럴까. 항소심 판결은 특수교사의 문제 된 발언이 학대가 아니라고 한 적이 없다. 1심 판결에서 학대로 인정된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얘기하는 거야. (중략)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싫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는 발언이 교육적 행위라는 언급도 없다.

그럼 왜 무죄가 났을까. 증거능력 문제 때문이다. 명백한 범죄 증거가 있어도 증거능력이 부정되면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 항소심 판결도 부모가 자녀 외투에 소형 녹음기를 넣어 보내 이뤄진 수업 내용 비밀녹음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비밀녹음은 대화 당사자 중 한명이 녹음한 경우에는 증거능력이 인정되는데, 주호민 부부는 제3자이므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 그런데 이런 형식적 법리는 중증의 자폐, 발달장애 학생이 학대에 노출될 위험을 높이는 차별적 결과를 가져온다. 비장애 학생은 교사의 부적절한 발언이 반복되는 경우 자기방어 차원에서 스마트폰 등으로 스스로 몰래 녹음할 수 있다. 이는 대화 당사자로서의 녹음이므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다. 반면 심한 자폐, 발달장애 학생은 스스로 비밀녹음 필요성 여부를 판단해 녹음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부모가 대신 녹음하면 증거능력이 부정된다. 진퇴양난이다.

반면 1심 판결은 비밀녹음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① 자폐를 가진 자녀 모습이 평소와 달라 학교에서의 학대 정황을 신속히 확인할 필요성이 있는 점, ② 자녀의 인지능력과 표현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학대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점, ③ 말로 이루어지는 정서적 학대 범행의 특성상 녹음 외에는 밝혀낼 방법이 없는 점을 증거능력 인정 근거로 삼았다. 앞서 본 미국의 ‘부모의 대리 동의 독트린’의 요건과 비슷하다. 이어 1심 판결은 발언 맥락, 피해자의 인식 가능성, 싫다는 부정적 감정 표현의 과격성, 특수교사와 학생의 긴밀한 관계 등을 고려하면 위 발언은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위험이 있는 정서적 학대 행위라고 보았다. 물론 교사의 부적절한 말이 다 학대는 아니다. 법정 설치 기준도 안 지켜 과밀화된 특수학급에서, 대소변 등의 신변 처리 인력 지원도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서 특수교사도 감정 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 학생에 대해서 미움과 짜증을 드러내는 것이 반복되면 정서발달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자폐 아동이 바지를 내리는 등 여러 ‘도전행동’을 보이는 것은 자폐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문성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특수교사가 싫다는 감정을 드러내는 말을 반복해 오히려 자폐 아동의 상태를 악화시킨다면 학대가 될 수도 있다. 주호민은 녹음을 결심한 이유로, 자녀의 위축된 어조의 ‘잘못했어요’라는 답변, 강박적인 반복 어휘의 증가, 대화가 패턴에서 벗어나면 극도로 불안해하는 증상을 들었다.

항소심 판결이 다른 학대 행위 유형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항소심 판결의 예외 없는 경직된 증거능력 법리는 수업 중의 비밀녹음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요양병원의 치매 노인 학대나 어린이집·유치원에서의 유아 학대가 학대 정황을 발견한 보호자의 비밀녹음 덕에 수면에 드러난 일이 적지 않았는데, 그런 것도 모두 불가능해질 수 있다. 대법원은 주호민 사건을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 회부하기 바란다. 교육 행위, 학대 행위 판단 기준과 보호자에 의한 비밀녹음의 예외적인 증거능력 인정 기준이 대법원 판례 법리로 정립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사건의 진정한 사이다 결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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