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영어·프랑스어 발전에 영향력…토착어도 확산

우분투추진단 2025. 8. 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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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국립외교원 교수
김동석 국립외교원 교수 [김동석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지도 [제작 양진규]

"훌륭한 영어네요. 어디서 그렇게 잘 배웠습니까?"

7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 5개국(라이베리아, 세네갈, 기니비사우, 모리타니, 가봉) 대통령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조지프 보아카이 라이베리아 대통령에게 말을 건넸다. 보아카이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희망한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그에게 영어를 잘한다며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다. 보아카이는 당황하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지난 7월 9일 백악관서 아프리카 정상들과 오찬하는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라이베리아는 미국에서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19세기 초에 건너와 세운 나라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영어가 공용어다. 국기는 미국 국기와 비슷하고 수도 몬로비아는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땄다. 인치, 마일, 파운드와 같은 미국식 측정 단위도 널리 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곧 논란이 됐다. 많은 아프리카인은 이 발언이 백인의 흑인에 대한 편견과 무시, 경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영어가 서구 백인의 전유물이라는 생각, 아프리카인은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는 인종차별적 인식이 발언의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반(反)이민 정책, 아프리카 비하 발언, 남아공과 정상회의에서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에게 보인 모욕적인 태도는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한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2천개 이상의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서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와 같은 서구 언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 북아프리카에 있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서는 아랍어와 함께 프랑스어가 널리 쓰인다. 이는 서구 식민 지배가 남긴 유산이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1885년 베를린에 모였다. 이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자기들 멋대로 분할했다. 그 결과 토착 민족과 종족은 여러 식민지로 흩어졌다. 하나의 식민지 안에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개의 민족과 종족이 거주하게 됐다. 식민 지배자들은 자국 언어를 식민지에 강제로 사용하게 했다. 식민 지배자들은 이를 통해 피식민지인들을 자국 문화에 흡수시키고 이들을 정신적으로 예속시키려 했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은 원활한 통치를 위해 종족어와 민족어를 초월한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가 필요했다. 그 결과 식민 지배자의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나이지리아, 가나, 케냐 등 옛 영국 식민지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로 채택됐다.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마다가스카르 등 프랑스 식민지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르완다 등 옛 벨기에 식민지에서는 프랑스어를 쓴다. 앙골라,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등 옛 포르투갈 식민지에서는 포르투갈어가 공용어다.

많은 아프리카인이 여러 언어 사용이 가능한 다중 언어 구사자(multilingual)인 이유다. 필자의 아프리카 출신 지인들도 자국의 공용어는 물론 종족, 지역 언어 서너 가지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것은 민족과 종족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서구 언어를 잘 구사하는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 거주자와 그렇지 못한 국민 간 격차는 오히려 국민 통합을 방해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집단 간 갈등이 폭력 사태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카메룬 서부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권 엘리트 중심의 정부와 영어권 분리주의 무장세력 간 무력 충돌이 심각하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남아공 백인 정부는 영어를 사용하는 흑인들에게 자신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강요했다. 이는 흑인들의 강한 저항을 불러왔다. 전체적으로 컬러드(Coloured)를 비롯한 유색인종이 오히려 백인 인구보다 더 많이 쓰는 아프리칸스어는 지금도 상당수 흑인에게 억압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아프리카 대륙 인구가 늘면서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사용 인구에서 아프리카 출신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영어 구사 인구수에서 미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한다. 프랑스어 사용자의 60% 이상이 코트디부아르, 민주콩고 등 아프리카 국가에 거주한다. 2060년에는 전체 프랑스어 사용자의 85%가 아프리카 출신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앙골라와 모잠비크 인구는 포르투갈 인구의 7배 이상이다. 이는 서구 언어 발전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3대 언어 병기 케이프타운의 이름을 영어, 코사어, 아프리칸스어로 표기한 이정표 [김동석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동시에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토착어를 육성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케냐의 유명 작가 응구기와 티옹오는 영어가 아닌 모어 키쿠유(Kikuyu)어로 작품을 집필했다. 1994년 집권한 남아공 흑인 정부는 영어와 아프리칸스어에 더해 줄루(Zulu)어, 코사(Xhosa)어, 츠와나(Tswana)어, 총가(Tsonga)어 등 9개 민족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또 이들 언어의 사용을 확대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등 동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2억명이 넘는 인구가 쓰는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연합(AU)의 공용어로 채택됐다. 나아가 '세계 스와힐리어 날'(7월 7일)을 기념하는 등 스와힐리어를 아프리카 전체의 보편어로 확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나이지리아, 세네갈을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민족어·종족어 교육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탈식민주의 철학의 대부 프란츠 파농은 서구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화적·정신적 해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구 언어의 영향력을 줄이고 토착어를 확산하는 노력은 서구 식민 지배의 유산을 청산하려는 아프리카의 열망을 보여준다. 이 흐름은 아프리카를 좀 더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 현지어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함을 시사한다. 또 이를 배우고 접할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동석 교수

현 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 부교수, 미국 일리노이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 정치학 박사, 아프리카 분쟁과 평화, 한국의 대(對)아프리카 외교 등 주제로 다수의 보고서 및 논문 작성, KBS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특별생방송 출연 및 자문, 영화 '모가디슈'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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