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암각화’ 지키려면…포기해야 할 물 5만톤
대구 등 낙동강 지자체 급수와 얽혀 있어
환경부, 문제 해결 의지…대구 “주도해달라”

“세계유산이 자꾸 물에 잠기면 어떻게 해요? 암각화가 사라지면 어째….”
19일 오전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에서 만난 선현미(55·경기도 용인시)씨는 안타까운 얼굴로 암각화를 바라봤다. 한달 넘게 암각화를 집어삼킨 반구천 물길 너머를 가리키며 “저쪽에 댐이 있는 거죠?”라고 야속한 듯 물었다. 암각화 침수 원인인 사연댐을 말하는 거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한국수자원공사 누리집 ‘마이워터’에 기록된 사연댐 물 높이는 54.85m다. 53~57m 사이에 그려진 암각화 아래쪽 2m가량이 물에 잠겨 있다.
선씨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르는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찌감치 울산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선씨는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 와서 보니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하루빨리 무슨 수를 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울주군 언양읍에 사는 동생네를 핑계 삼아 암각화 구경을 온 강성필(85·서울 종로구)씨는 “물에 잠겼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래도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잘 보이지 않아 많이 아쉽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 들머리의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만 유일하게 손수 방문객 수를 세는데, 이 숫자로 전체 관광객을 짐작한다. 박물관 쪽이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17일까지 집계한 방문객은 1만5883명이다. 올해 전체 방문객(5만5029명)의 28.9%가 최근 한달여 동안 집중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7107명)에 견줘도 갑절 이상 늘어난 숫자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의 ‘반쪽’만 봤다.
반구대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일주일 만인 지난달 19일부터 침수됐다. 한때 만수위인 60m 가까이 치솟았던 물 높이는 맑은 날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약 0.3m씩 낮아지고 있다. 이대로면 약 일주일 뒤 온전한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암각화는 집중호우와 태풍 때마다 위기였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평균 151일 동안 물에 잠겼고, 한국수자원공사와 국가유산청이 암각화 보존 협약을 맺은 2014년 이후로도 침수는 반복됐다.
사연댐 철거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수자원공사는 사연댐 물 높이를 52m 아래로 유지하는 수문 설치 공사를 2030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후에는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암각화가 물에 잠기더라도 하루 안에 물이 모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때 울산시는 하루 약 4만9천톤의 물을 포기해야 한다. 울산 시민이 하루 평균 사용하는 물(37만톤)의 13.5%다. 2021년 6월 울산시는 하루 7만톤의 운문댐 물 공급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대구 물 문제와 얽혀 4년 넘게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운문댐은 대구 시민의 물 26.1%(하루 평균 79만7천톤 중 20만8천톤)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울산시에 물을 양보하려면, 30여년 동안 표류한 낙동강 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울산과 얽혀 있는 대구 물 문제는 1991년 구미국가산업단지 페놀 유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동강 상류에서 페놀이 유출되면서 하류인 대구의 상수도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2009년 구미산단에서 발암물질이 또다시 유출되자 대구 취수원을 구미산단보다 상류인 해평취수장으로 옮기자는 요구가 본격적으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6월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는 대구 취수원을 해평취수장과 공동 이용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다음해 4월 환경부·대구시·구미시 등 5개 기관이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을 맺으며 13년 동안 이어진 취수원 갈등이 매듭을 짓는 듯했다. 대구 취수원을 구미 해평취수장으로 옮기고, 대구시가 구미시에 상생기금 100억원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로 대구시와 구미시의 수장이 모두 바뀌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김장호 구미시장이 협정 재검토를 요구하자,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은 4개월 만에 협정 해지를 공식 통보했다. 대구시는 낙동강 최상류인 안동댐으로 눈을 돌렸다. 안동댐 이전 방안은 지난해 12월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에 정식으로 상정됐다.

이재명 정부 들어 환경부는 물 문제 해결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달 대구시, 경북도, 안동시, 구미시 등 관련 지자체와 첫 실무회의를 열었다. 지난 7일에는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대구 취수원 이전지로 거론되는 안동 안동댐과 구미 해평취수장을 직접 찾았다.
환경부는 대구 취수원을 구미 해평취수장으로 옮기는 2022년 협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대구시도 새 정부 들어 안동댐과 해평취수장 모두 이전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어디로든 취수원을 옮기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안전한 취수원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 대구 취수원 이전을 정부 주도로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대구 취수원을 해평취수장으로 옮기면 대구에서 해평취수장까지 45㎞ 구간에 도수관로를 깔아 하루 30만톤을 공급할 수 있다. 사업비는 5104억원이다. 안동댐으로 옮기면 대구까지 110㎞ 구간에 도수관로를 설치해 하루 46만톤을 공급한다. 여기에는 대구경북신공항으로 공급하는 3만3천톤도 포함된다. 사업비는 1조5280억원이다. 청도 운문댐에서 울산으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물량을 보내기 위한 관로(44㎞) 사업비 3224억원은 별도다.
사업비 등을 고려하면 해평취수장으로 옮기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구미시는 해평취수장에서 10㎞ 떨어진 구미보 상류로 취수장을 옮기는 방안을 건의했다. 안동댐 이전의 경우 인근 상주, 의성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해평취수장 인근도 구미산단 등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다. 구미와 대구시 모두에 맑은 물을 공급하려면 현재 해평취수장보다 상류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새로 들어설 신공항에 공급할 물까지 고려하면 안동댐 취수가 가장 합리적”이라면서도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주성미 김규현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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