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세사기’ 악몽 2년 만에 벗어났다···피해금 전액 회수, 탄탄주택협동조합의 기적
‘피해자 조합’ 해결 국내 첫 사례
“다시 누군가를 믿을 수 있게 돼”

“한번 더 누군가를 믿을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기 화성 동탄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이제야 전세사기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2년전 전세사기로 전재산인 1억3000만원을 모두 잃을 처지에 놓였다. 앞날이 보이지 않던 시절, 같은 처지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조합을 결성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최근 A씨는 조합을 통해 피해금액 대부분을 돌려받았다.
동탄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피해 회복을 위해 결성한 ‘탄탄주택협동조합’이 출범 2년여 만에 사기 피해금을 사실상 전액 회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이 조합을 결성해 대응에 나선 것도,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도 모두 국내 최초 사례다.

20일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지난 5월 기준 전세사기 피해 조합원 21명(총 피해금액 29억3000만원)에게 전세 보증금 및 조합 출자금 반환을 완료해 최종 93.57%의 피해복구율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복구되지 못한 6.43%는 최초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해당 주택의 매매가 보다 보증금이 높은 이른바 깡통전세 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금액으로, 조합을 통해 회수 가능한 금액은 모두 돌려받은 셈이다.
조합은 전세사기가 큰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 2023년 5월 12일 출범했다. 당시 동탄지역에서도 170억원대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층이었다. 피해자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집을 이전받든가, 언제 확정될지도 모르는 정부의 대책을 기약없이 기다려야하는 처지였다.
이때 한국사회주택협회가 피해자들을 모아 협동조합 방식의 전세사기 피해 복구를 시도했다. 조합이 피해자 대신 임대인으로부터 주택 소유권을 이전받아 기존 전세를 ‘반전세(전세+월세)’로 전환한 뒤, 여기서 발생하는 월세 수익으로 피해를 복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피해자 21명이 참여한 탄탄주택협동조합이 탄생했다.

반전세를 통해 얻는 월세 수익이 크지 않은 탓에 당초 조합은 피해 복구까지 10년가량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조합 결성 소식이 전해진 뒤 도움과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사회적기금과 지역신협 등으로부터 저리 융자를 받을 수 있게 됐고, 융자받은 돈을 기반으로 예정보다 훨씬 이른 2년여 만에 피해복구에 성공했다.
조합 소유로 남은 오피스텔 21호는 앞으로 시세보다 저렴한 ‘사회주택’으로 운영된다. 기금 등에서 융자받은 금액은 이 사회주택에서 발생하는 임대수익으로 차차 갚아갈 예정이다. 조합 관계자는 “융자 상환 이후 추가 발생하는 수익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조합을 통해 경제적 피해 회복은 물론 “사회적 치유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들을 괴롭힌 건 경제적 막막함뿐만아니라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 여기서 비롯되는 깊은 절망도 있었다.
피해자 B씨는 “같은 상처를 받은 분들이 함께 힘내고 있다는 생각에 일상을 지킬 수 있었다”면서 “언젠가 저도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전세사기 피해 회복의 새로운 ‘전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도 전세사기 주택을 매입해 경매에 부친 뒤, 여기서 나온 수익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피해복구에 나서고 있다. 이 방식을 통한 피해복구율은 약 80%로, 조합의 피해복구율이 더 높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직접 해당 주택을 낙찰받는 방식에 비해서도 조합 방식이 거주나 이주 등에 있어 더 자율성이 높고, 부동산 시세 변동 등에 따른 위험요소가 적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얻게되는 ‘사회적 치유’의 효용성은 다른 방식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성과다.
최경호 탄탄주택협동조합 감사는 “탄탄주택조합 출범 이후 이를 벤치마킹해 임대인들이 전세사기 예방의 차원에서 모인 ‘안심주택임대협동조합’이 출범하기도 했다”면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협동조합 모델을 시도하고 검증한 만큼 이젠 국가가 나서서 이를 확대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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