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의 특이점, 밤 도둑 같이 찾아올 수 있다 [이환석의 알쓸유이]

2025. 8. 21. 04: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AI와 유전공학의 특이점
가속화하는 기술의 발전
윤리적 균형도 고민해야
그래픽=강준구

얼마 전 일본의 한 만화가의 작품 설명이 화제가 됐다. 스스로 꾸었던 꿈의 내용을 바탕으로 예측했다는 미래를 소재로 만들었다는 고백이었다. 1999년 출판된 만화책인데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에 관한 예언이 맞았다고 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 책의 추가 보완판에 2025년 7월 5일 일본에 대재앙이 생긴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 여파로 한동안 국제적으로 일본 여행 취소 소동까지 벌어지기까지 한 바 있다. 실제로 일본 규슈 남단의 도카라 열도에서 단기간에 이례적으로 많은 지진들이 발생하면서 해당 예언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과학적으로는 신뢰하기 어려운 주장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의 만화책과 같은 해 출판된 다른 책에 담긴 미래 예측은 무시할 수 없다. 레이 커즈와일의 '21세기 호모 사피엔스'다. 커즈와일은 미래 예측의 정확도가 높기로 유명한 미국의 미래학자인데 1999년의 책에서 컴퓨터의 기억 능력과 연산 능력이 20년 내에 사람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5년 출판된 '특이점이 온다'에서는 특이점(싱귤래리티·singularity)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2045년이 되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며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간 수명을 무한히 연장할 수 있게 된다는 혁신적 예측도 내놓았다.

당시에는 그렇게 빠른 시기에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라는 회의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비판은 거의 사라졌고 이제는 현실화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특이점이란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그 영향이 깊어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된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기존의 틀로써는 예측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과 비가역성을 가진 전환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20년간 특이점은 늘 이렇게 어려운 설명을 달고 다녔으나 최근에는 챗GPT와 같은 AI기술의 발전을 겪으면서 구구절절 다른 추가 설명이 없어도 바로 이해가 되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커즈와일이 예측하는 특이점은 유전과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도래하게 되는데 유전자와 관련된 분야의 특이점을 유전자 특이점이라고도 부른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특이점이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래픽=강준구

1998년 개봉된 '가타카'라는 영화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개개인의 질병 위험도와 적성 등에 관한 특성을 예측하고 신봉하는 공상 사회를 배경으로 삼았다. 그런데 2004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디자이너 베이비'라는 단어가 등재되고 이를 전후로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에서 착상 전 유전진단 검사를 통해 특정 질환 유전자 변이가 없는 배아를 골라 출산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변이를 가졌는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기술 즉, 읽기 기술만 있었는데 인류는 이제 다양한 유전자 가위들을 통해 원하지 않는 유전자 염기서열을 원하는 염기서열로 편집할 수 있는 기술, 즉 쓰기 기술도 확보하고 있으며 그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편승해서 최근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는 적게는 1,000만 원부터 많게는 1억 원 정도의 비용을 내면 배아의 미래 지능도 예측해주는 '스마트 베이비' 검사들이 성행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검사의 신뢰도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런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우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던 가장 큰 현실적 원인은 그가 상자를 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손이 묶여 있었다거나 처음부터 열리지 않는 상자였다면 상자를 열 수 없었을 테지만 물리적으로 가능한 경우 사람은 호기심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는 커즈와일의 신간 제목처럼 우리는 곧 유전자 특이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경 구절의 묘사처럼 도둑처럼 그날이 온다면, 과연 어떻게 기술의 발전과 윤리적 규제라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환석 한림대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R&D 기획실장·교수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