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28] 레닌과 ‘프라하의 봄’

1968년 8월 21일, 나는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시위 군중 속에 떠밀려다니고 있다. 어젯밤 소련이 조종하는 25만 명가량의 바르샤바 조약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 끝난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대적 배경이 되기도 한 프라하의 봄이란, 1968년 1월 5일부터 8월 21일까지 소련의 위성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공화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뜻한다. 이것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 두브체크와 신좌파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불렀던 것을 보면 기존 사회주의가 비인간적이었다고 고백한 셈이다. 민주(民主)와 인민과 공화(共和)는 없고, 김씨 조선 왕조와 사대부(공산당 특권층), 그리고 그들의 노예들만 존재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까지는 아닐지라도.
하여간 저 운동의 핵심은 ‘공산당 독재와 계획경제의 폐단 비판, 자유화 요구’다. 공산당 정부가 경제난과 공산당 특유의 극단적 관료주의 부패 때문에 위기를 겪는 것은 예외가 없는 바보 짓거리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은 이듬해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Pravda)’를 통해 말했다. “유럽의 경영 기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러시아 공장은 규율과 도덕이 엉망이었다. 레닌이 기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자발성과 창의성은 없었다. 그는 또 말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나쁜 노동자들이다.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레닌은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혁명 전 레닌은 이상적인 경제 현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더랬다.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통제 아래서 모든 사무직, 관리직이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못 받게 하는 게 사회주의 경제의 기본 정신이다.” 이랬던 레닌이 산업 현장에 ‘전문 경영인 시스템’을 적용했다. 러시아와 소련에서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실시된 ‘신경제정책(NEP)’은 확대된 ‘북한 장마당’이었다. 다만, 좌절된 프라하의 봄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그것이 이념 이전에 ‘어쨌든’ 냉혹한 국제 정세에 의한 약육강식이라는 사실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골든타임 놓쳐” 영종도서 쓰러진 60대 女 숨져
- 金총리, 인니 대통령 만나 “AI 등 협력 확대하자”
- 靑 “나프타 충분…종량제 봉투 구매 제한 없다”
- 김영선 “오세훈, 이기는 여론조사 나오면 된다고 했다” 吳측 “명태균과 진술 맞춘 것 아니냐
- 필로폰 투약 후 무면허 운전에 경찰 폭행…50대 男 구속
- “장모가 시끄럽게 해서”... 대구 ‘캐리어 사건’ 피의자에 존속살해 혐의 적용
- 정부 “日 후쿠시마 오염수 19차 방류 2일 시작”
- 인교진 “도박 중독 친구 재워줬더니 내 돈·차 싹 다 훔쳐가”
- 8일부터 공공기관車 ‘2부제’... 공영주차장 민간車는 ‘5부제’
- 기대와 우려 엇갈린 ‘광주 軍 공항 이전’ 전남 무안 주민 설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