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 톺아보기]1971년 그해 남일대 해수욕장 10만 인파

박도준 2025. 8. 20. 20:2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71년 8월 36도의 폭염에 남일대해수욕장 하루에 10만 인파

1971년 8월은 남과 북이 26년 만에 분단의 비극을 딛고 판문점서 만나 서신교환 등 화해의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같은 달 23일에는 실미도사건이 발생해 사회 분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정도의 8월 날씨는 7월 중순부터 34도까지 수은주가 올라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을 예고하고 있었다. 해수욕장도, 수영장도, 유원지도 거의 없던 시절,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여름을 났을까? 예나 지금이나 시대가 변해도 강과 바다 그리고 계곡이 최고의 피서지로 꼽혀 사람들이 역대급으로 많은 사람이 몰렸고, 익사자도 속출했다.
 
 

가마솥더위에 7월부터 잇단 아동 익사사고

1971년 7월 예년에 비해 무더위가 일찍 시작되자 어린이들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인근 강이나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다 익사하는 사고가 부쩍 늘어났다. 초복을 며칠 앞둔 13일에는 부산지검 진주지청 관내에서 6명의 어린이가, 특히 남해에서는 한 마을의 어린이 3명이 물에 빠져 숨졌다. 며칠 사이에 발생한 익사자 30여 명 중 대부분이 어린이들이었다. 더워도 어린이들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3년에 서울에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설 정도였으니 지방의 중소도시나 농촌에 어린이 놀이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주시내의 경우 2만여 명의 아동이 놀 수 있는 놀이터는 단 두 곳뿐이었다. 놀이터 시설물도 미끄럼틀, 회전그네, 철봉, 목마, 모래판 등이 전부였다.

14개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을 하면 어린이들은 부모들의 눈길을 피해 각종 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도로나 강, 바다를 찾았다. 변변찮은 수영장조차 없던 시절이라 가까운 계곡과 강, 그리고 바다는 최고의 피서지였다.

여유가 있는 집 어린이들은 더위를 쫓으려 '아이스케키(하드)'를 입에 물고 극장가나 만화가게를 찾았다.

7월 13일과 15일자에 어린이 익사 사고를 연이어 다룬 본보는 16일자 1면 '봉화대'란을 통해 익사자의 대부분이 10대 소년들이며 10대 이하 아동들도 태반임을 지적하면서 사고 위험지역에 위험표시를 하지 않는 어른들이 '내 자식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는 인식으로 아동사고를 방치하고 있음을 질타하고 있다.
 
 

어른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7월 15일 말복, 농촌에선 바쁜 보리타작과 모내기를 끝내고 촌로들은 시원한 정자나무 아래에 긴담뱃대를 물고 모여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이들은 벌거숭이로 냇물에 뛰어들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시절, 청년들은 등물로 더위를 식혔고, 아낙들은 부채질로 더위를 날렸다.

8월 1일자 3면에는 '무더위 극성, 주말 해수욕장 초만원, 올들어 최고 36도까지' 제하의 기사에서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고 숨이 턱턱 막히는 살인적인 더위를 알리고 있다. 어른들이 가는 피서를 가는 곳은 진양호, 사천의 남일대해수욕장, 남해의 상주해수욕장 등 제한적이었다.

3일자에는 '남일대 피서객, 올해 최대 인파' 제하의 기사에서 '하루 연인원 10만여명 득실, 구정물 해수욕'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수력발전을 시운전 중인 진양호 남강댐에서 초속 500t의 물을 방류하자 댐 아래에는 남녀노소 피서인파로 초만원을 이뤘다. 당시 국내 최대 호수였던 진양호 선착장에서는 시원한 모터보트와 유람선을 타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배를 탈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길이 700m의 반달형 남일대해수욕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대혼잡을 이뤄 개장 이후 사상 최대의 하루 10만 인파가 몰렸다. 이로 인해 정기버스, 마이크로버스, 택시 등의 가격이 두 배까지 뛰는 등 북새통을 이뤘고, 음식점 등 가게는 바가지요금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서부경남에서 갈 만한 피서지가 한정된 데다 1971년 4월 개통된 거제대교를 건너 거제지역 해수욕장까지 가는 데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고, 남해대교는 아직 건설되지 않아 남해지역 해수욕장까지 가는 데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해 남일대해수욕장으로 피서객이 몰렸기 때문이다.
 
 

때 아닌 특수(?), 진주교도소도 초만원

8월 11일자에는 부산지검 진주지청에서는 바캉스 시즌을 맞아 해수욕장과 유원지에 최대한의 경찰병력을 투입해 사소한 폭력행위도 구속을 원칙으로 정하고, 무더기로 구속송치함에 따라 진주교도소는 수용인원을 훨씬 넘어 초만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진주교도소의 경우 수용인원은 600여명인데도 각종 폭력배와 병역법위반자, 절도혐의자 등이 늘어나고, 여기에 해수욕장과 유원지 범법자들이 무더기로 들어오면서 850여명이 수용돼 교도소 직원들이 진땀을 흘렸다. 진주경찰서에서도 사소한 폭력행위도 모조리 구속 송치하는 바람에 유치장 수감 인원이 40~50명이나 되는 초만원 사태가 발생했다. 한편 수감자들의 대부분은 10~20대의 청소년들이어서 자라는 청소년들에 대한 선도책이 절실히 요망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려수도·지리산공원 본격 개발

'바캉스'라는 말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바캉스는 프랑스어로 '휴가'라는 뜻이다. 산업발달로 물질이 다소 넉넉해지자 정신·육체적 휴식을 고민하게 됐고, 여가의 필요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1971년 8월 한려수도 개발과 지리산공원 개발에 착수한다.

8월 27일자에는 1968년 제1호로 지정된 한려해상국립공원 개발 계획에 따라 경남도는 3개년 계획으로 한려수도 연안산지종합개발계획을 마련하고 창원, 충무, 통영, 고성, 사천, 진해, 하동, 남해, 거제 등 가시지역 9400정보의 산지를 총 3억 6800만원을 들여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개발키로 했다.

28일자에는 1968년 제1호 지리산국립공원 지정과 관련 건설부가 지리산공원 개발에 착수해 기초측량을 끝내고 시공단계에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특히 시천면과 삼장면은 대원사, 법계사, 세석평지, 신선너들 등 명승지와 고찰이 많은 곳으로, 이를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주차장, 휴식소, 급수시설, 캠핑장, 숙박시설 등을 설치하기로 하는 한편 천왕봉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 개설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박도준기자
 
 
 
 
 
 

 

Copyright © 경남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