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시점주의 〈From you〉 끝] 당신이 묻는 서구는?…변천의 풍경, 세대가 간직한 발자취

이순민 기자 2025. 8. 2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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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면 인천 편입 후 30년 새 인구 급증
내년 행정체제 개편…검단구 분리 앞둬
신도시 조성도 한창…'상전벽해' 실감
현재 65만명 거주 '거대 자치구' 탈바꿈

한두 세대 전만 해도 '개건너'로 불려
인천 시내 오갈 수 있는 '인천교' 설치
꾸준한 성장 … 국내 첫 경제구역 지정도
인구 소멸과 달리 행정·도시 진화 지속
▲ 내년 7월 행정 체제 개편을 통해 '서해구'와 '검단구'로 분리되는 인천 서구 전경. /사진제공=서구

"인천 어디에 가장 큰 추억과 애정을 갖고 있나요?"

인천일보는 지난 5월 말 '독자시점주의'로 처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연령대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과 같은 물음을 이어갔습니다. 독자들의 시점을 따라 맞춤형 기사가 변주되고, 주제를 달리하는 독자 중심 뉴스 실험이었습니다.

동구부터 시작해 지난 석 달간 '우리 동네' 이야기들을 키워드로 엮었습니다. 각자의 삶과 관심사를 따라 선택하고, 조합되는 장면들로 '당신이 묻는 인천'을 펼쳤습니다.

서구를 끝으로 지면 연재를 마칩니다.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당신의 시점으로 따라가는 여정은 온라인에서 계속됩니다. 이제 완성된 그림 속에서 인천을 기록하는 문장의 중심은 바로 당신입니다.
▲ 서구와 내년 7월 신설 예정인 검단구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인아라뱃길. /사진제공=인천관광공사

▲만날수록 낯선, 너의 이름은

어느덧 잊힌 이름이 있다. 서곶. 처음부터 그렇게 불리진 않았다.

반달처럼 생겨 '모월곶', 돌이 많아 '석곶'이라는 지명이 쓰였다. 바다 쪽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였으니 '곶'이었고, 그 바다가 서해였다. 일제강점기부터 반세기 가까이 행정 업무를 맡은 출장소 앞에도 '서곶'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1988년 서구가 북구에서 나뉘었을 때 '서곶구'로 부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였을까. 행정체제 개편을 앞두고 지난 3월 새로운 서구 명칭 선호도 조사가 진행됐는데, '서곶구'는 21.6%의 지지만을 얻으며 탈락했다.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검단. 신에게 제사하는, 으뜸가는 마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검단은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인천 내륙에서 가장 많이 모여 있을 만큼 오래된 동네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구석기 유물도 출토됐다. 검단신도시 조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1995년 경기도 김포군에서 '검단면'이 인천으로 편입되고 30년 새 인구는 급속도로 늘었다. 행정체제 개편으로 내년 7월 '검단구' 분리도 앞두고 있다. 오래되고도 새로운 동네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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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로이 불리는 이름이 있다. 청라. 엄밀히 따지면 서북부 연안에 존재했던 '청라도'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청라도 주변 갯벌은 1984년까지만 해도 '인천 연희동 및 경서동의 두루미 도래지'로 지정된 천연기념물이었다. 청라도와 인근 섬들을 잇는 간척 사업은 곶과 만으로 이뤄졌던 서구 해안선도 일직선 형태로 바꿨다. 바다를 메운 '동아매립지'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수도권매립지와 청라매립지로 나뉘었다. 청라매립지는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다.

이제 사라지는 이름도 있다. 서구. 1988년 인구 15만명을 넘어선 서구는 북구에서 독립했다.

서해를 접하고 있으니 '문제적' 지명은 아니었다. 다만 동구 위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지명과 무관하게 서구는 팽창을 거듭했다. 1995년 검단 편입으로 인천에서 내륙 면적만 따지면 가장 넓은 자치구가 됐다. 인천도시철도 1·2호선은 모두 서구를 향한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과 폐막식은 연희동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렸고, 프로야구 홈구장도 2028년부터 '스타필드 청라' 돔구장으로 바뀐다. 서구는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다.

서곶으로 불리던 동네는 65만명이 사는 거대 자치구로 탈바꿈했고, 신도시가 조성 중인 검단은 '상전벽해'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갯벌과 섬을 품었던 청라는 국제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어쩌면 '어색한 동거'였다. '서구'라는 이름으로 가두기엔 성장세가 너무 빨랐다.
▲ 1970년 인천교 확장 공사 모습. /사진제공=인천시

▲지금 여기, 당신으로부터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서구는 '개건너'로 불렸다. 갯벌을 건너야 갈 수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물론 인천 시내 중심적인 시각이 담긴 지명이었다. 1961년 서구 가좌동과 동구 송림동 사이를 가로지른 갯골 위로 '인천교'가 놓였다. 나루터에서 배를 타야만 인천 시내를 오갈 수 있던 서구는 그제야 도심과 연결됐다.

확장 도시 인천에서도 서구는 눈에 띄는 변화를 경험했다. 서구 인구수는 1995년 29만9940명에서 지난 6월 기준 64만4376명으로, 지난 30년간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 최초 경제자유구역에 이어 인천에서 첫 번째 정부 주도 신도시도 조성됐다. 해안 매립은 인천 지도마저 바꿨다.

인구 소멸로 행정구역 통합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인 다른 지역과 달리 서구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원래 서구는 출장소만으로도 충분한 곳이었다. 인천 인구가 50만명에 다다른 1968년 구제가 실시되면서 중구·동구·남구·북구 등 4개 구청이 생겼다. 당시 '서곶출장소'는 북구에 속했다. 1988년 서구가 분리되고, 7년 뒤 검단이 편입되면서 '검단출장소'가 설치됐다. 서구는 내년 7월이면 경인아라뱃길을 경계 삼아 2개 자치구로 나뉜다. 광역시 체제가 출범한 1995년 이후 전국에서 자치구가 신설되는 건 처음이다.

도시는 기억을 안고 성장한다. 가정동 미나리꽝을 지나다녔던 중학생들은 어느덧 30대 직장인의 눈으로 '루원시티'를 바라본다. 서경백화점 앞에서 만나자던 약속은 2호선이 오가는 거리에서 추억의 발길을 붙잡는다. 검단신도시 개발로 사라진 동네에선 아버지 술심부름을 다니던 마을길이 모습을 감춘 채 그 시절로 돌아간 꼬마를 맞는다.

확장은 지금도 계속된다. 도시의 이야기 또한 이 순간에도 새로 쓰이고 있다. 어쩌면 서구, 아니면 검단, 그리고 인천과 마주한 당신으로부터.
▲ 1993년 서구청 주변 연희2지구 개발 현장. /사진제공=서구

<미리보기>

바닷가 마을에서 청라국제도시·검단신도시로 확장을 거듭한 서구를 여섯 개 이야기들로 만난다. 상전벽해를 상징하는 공간들을 중심으로 세대의 기억을 연결한다. 사라진 섬들 위에 들어선 신도심, 전통시장이 밀집한 원도심이 공존하는 서구로 초대한다.
▲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전경. /사진제공=인천경제자유구역청

<확장도시의 '인구세컷'>은 서구 인구수가 급등했던 세 번의 결정적 장면들에 주목한다. 검단 편입 이후 도시 개발이 궤도 위에 오른 2004~2005년, 청라국제도시로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한 2011~2012년, 검단신도시 입주가 본격화한 2022~2023년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 인천, 그중에서도 최대 자치구로 부상한 서구지만, 이 시기를 제외하면 인구 증가율은 1% 수준에 그친다. 이들 결정적 장면이 서구 확장세를 견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1969년 경인고속도로 종착 구간 개통식. /사진제공=인천시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에서는 1967년 인천과 서울을 20분 이내로 연결하는 교통망으로 건설된 경인고속도로를 되짚는다. 물류 동맥으로 기능한 경인고속도로는 서구 산업 발전도 견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심 단절의 상징이 됐다.

"경인고속도로는 서구 원도심을 반으로 뚝 잘랐다. 도시가 나뉘면서 발전에도 한계가 생겼다."
▲ 지난 6월27일 신검단중앙역에서 열린 인천 1호선 검단연장선 개통 기념식. /사진제공=인천시

<'공철'에서 'GTX'까지>에서는 도시철도 사각지대였던 서구의 대중교통 변화상을 들여다본다. 환승과 광역버스에 의존했던 서구 교통 체계는 광역급행철도(GTX) 신설까지 가시화하며 격세지감을 들게 한다.

"2014년 이전까지 공항철도 검암역이 유일했던 서구 철도망은 10여년 만에 인천 1·2호선에 서울 7호선까지 총 4개 노선, 22개 정거장으로 늘었다."
▲ 인천 서구 가정동에 위치한 정서진중앙시장 입구.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서구 주민은 전통시장 VIP> 이야기는 정서진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는 50대 주부의 동선을 따라간다. 대형 마트 때문에 가게들이 문을 닫는 다른 시장과 달리 몇몇 점포는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 서구에는 정서진중앙시장 외에도 5개 시장이 더 있다.

"서구 주민에게 시장에서 장보기는 익숙한 일이다. 주민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인지 서구 전통시장은 아직 활기를 띤다."
▲ 1990년대 청라도 마을과 창영초등학교 청라도분교. /사진제공=서구

<사라진 섬들 위에서>는 대규모 매립으로 해안선이 달라진 서구의 도시 개발 과정을 조명한다. 산업화 물결과 함께 간척 사업은 서구 연안을 따라 이어졌다. 34개에 달했던 서구의 섬은 8개만 남아 있다.

"서해 바다와 인접한 서구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섬들 주변으로는 여느 인천 앞바다처럼 드넓은 갯벌이 펼쳐졌다."
▲ 천마산 말발굽 모양 바위. /사진제공=서구문화원

<믿거나, 말거나 '철마산(천마산)' 이야기>에서는 "부모님 손을 잡고 뒷산을 오르던 어린 시절 추억"을 돌아본다. 천마산 또는 철마산으로 불린 한남정맥 줄기에는 '아기장수'에 얽힌 설화도 전해진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 산줄기에는 도시 정체성과 지역사, 생태가 살아 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개발로 인한 훼손 위협도 무수히 받고 있다."

서구편 - 이순민 기자

어린 시절에 들었던 본적지는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주안·만수동에서 살다가 고향 옆 동네, 검암동으로 이사해서 20대와 30대를 보냈습니다. 젊은 날의 추억은 서구에 머물러 있습니다.

서구편 - 이아진 기자

미나리꽝 냄새에 코를 부여잡고 등교하던 중학생이 향긋한 미나리를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라 기자가 됐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구와의 여정, 그 변화를 함께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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