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내 친일 행적 인물 비석 철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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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정신의 상징적인 공간인 진주성에 친일 관련 인사들 비석이 있어서 처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20일 낸 자료에서 "올해는 해방 8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호국성지 진주성에는 여전히 친일 잔재가 버젓이 남아 있다"면서 "일제강점기 시민들을 괴롭히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지원한 매국노 친일파들을 기념하는 비석들이 호국성지에 있어서 호국영령들을 비웃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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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정부 차원 조사 거쳐 지역 여론 모아 처리 필요

호국정신의 상징적인 공간인 진주성에 친일 관련 인사들 비석이 있어서 처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20일 낸 자료에서 "올해는 해방 8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호국성지 진주성에는 여전히 친일 잔재가 버젓이 남아 있다"면서 "일제강점기 시민들을 괴롭히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지원한 매국노 친일파들을 기념하는 비석들이 호국성지에 있어서 호국영령들을 비웃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진주성 내에는 1973년 도시 개발 과정에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둔 비석군이 있다. 비석군을 포함해 진주성 내에는 친일파로 알려진 인물들의 이름(7명)과 공적 등이 새겨진 비석 8기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가 밝힌 이 비석 인물들의 친일 행적을 살펴보면, 지주였던 정태석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당시 진주 최고액 1만 188원을 기부했다. 1938년 진주 유지들의 모임인 '연재계' 회장으로 300원의 국방성금도 헌납했다. 1938년 <조선시보>에 '전승신년'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5년과 1938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상장을 하사받았다.
면장을 지냈던 정봉욱은 1933년 '기원절'에 일장기 게양을 독려하고, 1940년 '동아의 건설에 유도(儒道)정신을 발휘'라는 경남유도연합회 결성식에 진양군 대표로 참가했다.
진주성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 앞쪽 3.1독립운동기념비 아래에는 '정표환 시혜불망비'가 있다. 정표환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1914년 12월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木杯)와 밭 130평을 하사받았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5000원을 기부하고, 1939년 1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황군의 무운을 바라는'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대지주였던 정상진은 1937년 8월 애국비행기 '진주호' 헌납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진주호' 구입비 5000원과 국방헌금 등을 헌납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 활동에 앞장섰다. 비석에 새겨진 인물 중에 유일하게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심인경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은 "진주성 내에 있는 친일인사 관련 비석을 조속히 정리하고, 정리하기 전까지 비석 관련한 안내문을 시민이 확인할 수 있는 크기로 설치해야 한다"고 진주시에 촉구했다.
이에 대해 진주시 관계자는 "진주성 내에 있어서 국가유산청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당장 철거는 어렵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현황 조사를 한 후 철거 또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할지 등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어서 지역 여론을 취합해 처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견해를 밝혔다.
/허귀용 기자